왕실 이야기/미스터리의 아나스타시아

즐거웠던 어린 시절

정준극 2009. 12. 21. 14:08

[즐거웠던 어린 시절]

 

아나스타시아는 1901년 6월 19일 페터호프(Peterhof)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태아의 성별 감별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아들인지 딸인지 알수 없었다. 아나스타시아의 부모들과 친척들은 알렉산드라 왕비가 또 딸을 낳자 ‘또 딸이야?’라면서 여간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버지 니콜라스 2세는 이미 딸만 셋을 낳았고 아들은 없었기에 아들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인 니콜라스 2세는 정원을 걷고 있다가 또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정원을 걸었다. 정원을 계속 걸었다는 것이 뭐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답답한 심정은 헤아릴수 있다. 한참 후 니콜라스는 산모와 새로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니콜라스는 그래도 산모가 순산한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산모를 위로하였으며 기쁨으로 넷째 딸을 쳐다보았다.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은 ‘쇠사슬을 끊은 사람’ 또는 ‘감옥 문을 연 사람’라는 뜻이다. 니콜라스가 딸의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는 넷째 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감옥에 갇혀 있던 정치범 학생들을 모두 사면 석방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900년 겨울에 생페터스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여서 구금되어 있었다.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의미는 ‘부활’이다. 비록 소문에 불과했지만 훗날 아나스타시아가 죽음 속에서 부활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었다는 해석이었다.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호칭은 Grand Duchess이다. 직역하면 대공부인이라고 할수 있지만 황실에서는 공주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Grand Duchess라는 호칭은 유럽의 일반 왕국에서 공주를 Royal Highness라고 호칭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존칭이다.

 

생페터스부르크의 궁전에서 언니 마리아와 함께 손수레를 타고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차르의 아이들은 일반인들의 아이들보다 더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양육되었다. 아이들은 마치 군인 침대와 같은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서 베개도 없이 잠을 잤다. 단, 몸이 아플 때만은 일반 침대에 눕혔다. 아이들은 추운 아침이라고 해도 차가운 물로 목욕을 했다. 각자 자기의 방과 침대는 스스로 정돈을 해야 했다. 학과 공부를 하지 않을 때에는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는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하여 만든 앞치마, 손수건, 테블보 등은 자선행사에서 팔았다. 집안에서는 하인들이 ‘공주마마’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호칭에 얽매이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Her Imperial Highness라는 호칭 대신에 친구들 사이처럼 ‘아나스타시아 니콜라에브나’라고 불렀다. 가족들은 아나스타시아를 프랑스 버전의 애칭인 아나스타시(Anastasie)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언니들은 러시아식의 별명인 나스티아(Nastya) 또는 나스타스(Nastas) 또는 나스텐카(Nastenka)라고 불렀다. 가족들은 아나스타시아를 경우에 따라서 말렌카야(Malenkaya)라고 불렀다. ‘꼬맹이’ 또는 ‘막내’라는 뜻이다. 슈비브지크(Shvibzik)라고 불르기도 했다. 러시아어로 ‘요정’이라는 뜻이다. 아나스타시아는 왼쪽 발이 기형적으로 생겼다. 엄지발가락이 곧바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히 자랐다. 훗날 자기가 아나스타시아라고 주장한 안나 앤더슨의 왼쪽 발도 엄지발가락이 옆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군복을 입은 알렉세이 1914년.

 

어린 아나스타시아는 활발하고 지칠줄 모르는 아이였다. 파란색 눈에 딸기빛 금발 머리였다. 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날씬한 편이 아니었다. 네 딸의 가정교사였던 마르가레타 이가르(Margaretta Eagar)는 네딸 중에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나스타시아가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했다. 다른 가정교사들도 아나스타시아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못말리는 장난꾸러기지만 어떤 때는 아주 천연덕스러운 배우와 같아서 깜빡 속아 넘어가는 일도 많았다. 어린 아이인데도 말하는 것이 어찌나 센스가 있고 핵심을 찌르는지 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가족의 주치의인 예프게니 보트킨(Yevgeny Botkin)은 ‘아나스타시아야 말로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말썽을 많이 일으켜 벌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머리가 좋은 재미난 장난꾸러기였다’고 말했다. 예프게니 보트킨은 나중에 니콜라스 가족과 함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나스타시아의 어린 시절. 아주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였다.

 

아나스타시아는 악의 없이 하인들을 골탕 먹이면서 즐거워했고 가정교사들에게 장난을 걸어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아나스타시아는 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했는데 내려오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때는 눈싸움을 했는데 아나스타시아가 눈덩이 속에 돌맹이를 넣어 둘째 언니인 타티아나에게 던지는 바람에 큰일 날뻔한 일도 있었다. 아나스타시아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얘기들은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일일이 소개할 여유는 없다. 다만, 주위 모든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나스타시아는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당돌하고 명랑하며 재치 있고 머리가 좋아 임기응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제정러시아의 공주이기 때문에 엉뚱한 말을 한마디만 해도 ‘와, 어쩌면!’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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