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미스터리의 아나스타시아

페름의 이상한 소문

정준극 2009. 12. 21. 14:21

[페름의 이상한 소문]

 

아나스타시아를 처형한지 2-3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아나스타시아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볼셰비키 공산당 당국은 입장이 난처해져서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당국은 군인이나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기차들을 조사하고 수상한 집들을 뒤졌다. 아나스타시아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잠시 페름(Perm)이라는 도시에 감금된 일이 있다. 페름은 우랄 산맥의 유럽 쪽에 있는 카마(Kama)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서 러시아 발레로서 유명한 곳이다. 당시 페름에는 아나스타시아의 먼 사촌인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Ioann Konstantinovich)가 살고 있었다.

 

1918년의 어느 여름날, 어떤 경비병이 어떤 다 큰 소녀를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의 집에 데리고 와서 ‘이 아가씨가 자기가 아나스타시아 로마노프라고 하는데 맞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마침 집에는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의 부인밖에 없었다. 그 부인은 아나스타시아를 어렸을 때 두어번 본 일이 있기 때문에 경비병이 데리고 온 아가씨를 자세히 보았으나 도무지 아나스타시아라고 생각할 만한 점이 없기 때문에 ‘아닙니다’라고 말해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남편인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기 집에 돌아와서 그 얘기를 듣고 ‘로마노프라고 하면 무조건 받아 들여야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서 쫒아 보냈다니 그게 말이냐 되는 것인가?’라면서 크게 역정을 냈다고 한다.

 

1910년대의 페름 중심가. 이곳에 아나스타시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페름에 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예카테린부르크에서의 비극 이후에 아나스타시아와 그의 언니들과 그의 어머니인 왕비를 페름의 길거리에서 보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나중에 처음에 그런 소문을 낸 사람을 추적하였더니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소문을 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국은 혹시나 해서 페름을 이 잡듯이 뒤진 일이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러시아에서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소문이 자꾸 나오는 것은 아나스타시아와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나왔었다. 아나스타시아와 가족들이 처형당한지 며칠 후에 독일은 러시아에 공한을 보내어 ‘러시아에 있는 독일 혈통의 공주들에 대한 안전’을 요구했다. 독일 혈통이라고 한 것은 아나스타시아의 어머니, 즉 니콜라스 황제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왕비가 독일 헤쎄공국의 출신임을 강조한 것으로 따라서 아나스타시아를 비롯한 네명의 딸들도 독일 혈통이므로 독일로서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독일에 살고 있는 아나스타시아의 먼 친척들이 염려가 되어 독일 정부를 움직여서 그런 공한을 보내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는 당시 독일과의 평화조약 체결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목적으로 독일이 말하는 독일혈통의 공주들, 즉 로마노프의 공주들이 현재 모두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회신을 보냈다. 실은 모두 처형한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페름 스토리’가 튀어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었다. 그런데도 페름 스토리는 계속 꼬리를 물고 변형되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은 시딩(Siding) 소문이었다.

1918년 9월, 예카테린부르크에서의 처형이 있은지 한 달후, 페름의 북서쪽에 있는 시징이라는 마을에서 어떤 젊은 아가씨가 거리를 방황하다가 백군당국에 체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아가씨가 체포되는 장면은 무려 여덟 명의 시민이 목격했다고 한다. 목격자는 막심 그리고예프, 타티아나 시트니코바와 그의 아들 표도르 시트니코프, 라벨 우트킨 박사 등이었다. 의사인 우트킨 박사는 체포된 아가씨의 상처를 돌봐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백군의 조사관들은 아나스타시아를 체포할 때에 주위에 있었던 우트킨 박사들 여덟 명을 불러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 사진의 주인공이 조금 전에 체포당한 아가씨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라고 했다고 한다.

 

토볼스크에서 독서하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1917년

 

두어명의 목격자들은 ‘그런것 같다’고 대답했으며 나머지 목격자들은 ‘틀림없는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국(체트카: KGB의 전신)의 취조실에서 체포된 아가씨의 상처를 직접 치료해준 우트킨 박사는 그 아가씨가 자기는 황제의 딸 아나스타시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트킨 박사는 그 아가씨를 치료한 서류, 그리고 약국의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비밀경찰이 별도로 보관하겠다며 압수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아나스타시아와 가족들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여러명 있었다. 그중에는 악명높은 라스푸틴(Rasputin)의 사위인 보리스 솔로비에프(Boris Soloviev)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예카테린부르크의 참사가 있은지 얼마후 로마노프의 가족이라는 여자가 찾아와 중국으로 도피코자 하니 돈을 주선해 달라고 하기에 ‘이 사기꾼아! 로마노프 사람들은 다 죽었단 말이다!’라고 말한후 쫒아냈다고 주장했다.

 

* 백군(White Army)은 볼셰비키에 대항하기 위해 조성된 군대를 말한다. 하지만 볼셰비키에 대한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볼셰비키의 공산군은 적군(Red Army)라고 불렀기 때문에 반볼셰비키 군대를 백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군은 러시아어로 벨라야 아르미야(Belaya Armiya)라고 부른다. 백운은 White Guard, 또는 간단히 The Whites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적군도 간단히 The Reds라고 부른다. 월드컵 때에 붉은 악마인지 뭔지를 The Reds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래도 수상하다. 볼셰비키 공산군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의 선전 포스터. 백군을 정의의 십자군으로 표현했으며 볼셰비키 도당을 죽어가는 용에 비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