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욕의 마사코

아카사카의 다과회

정준극 2009. 12. 24. 15:00

아카사카의 다과회

 

1986년 10월 18일. 동경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왕실 저택(御所).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초가을 저녁이었다. 스페인 왕실의 엘레나 공주를 환영하는 다과회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측에서는 외무성 고위 관리들이 다수 참석하였다. 그 중에는 조약국장 오와다 히사시(小和田 桓)씨의 모습도 보였다. 오와다 국장은 어떤 젊은 여성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와 딸처럼 다정스러웠다. 여자는 빨간 투피스를 입고 핑크빛 스카프를 어깨 위에 살짝 걸친 둥그스럼한 얼굴, 하얀 피부에 눈썹의 윤곽이 짙은 미인형이었다. 일본 여성으로서는 키가 큰 편이었고 체격도 서구적이었다. 명랑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과연! 오와다 국장의 딸 마사꼬(雅子)였다.

 

황태자(왕세자)와 마사꼬 사마의 결혼 기념


오와다 마사꼬

잠시후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손자인 나루히토(德仁) 왕자가 다과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다과회의 호스트였다. 이어 엘레나 공주가 화사한 맵시를 자랑하며 등장하였다. 다과회장에는 여성 참석자가 몇 명되지 않았다. 엘레나 공주는 활달한 모습의 마사꼬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사꼬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공주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다과회장에 있던 외무성 고위 관리들은 ‘젊은 사무관이 대단하네....’ 라면서 관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엘레나 공주와 마사꼬의 대화에  나루히토 왕자가 참여하였다. 마사꼬는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왕자에게 인사하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이번에 외무 고등고시에 합격한 오와다 마사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왕자 전하!’...나루히토 왕자는 마사꼬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영국과 스페인의 경제에 대하여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서 두 사람의 얘기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오와다 국장의 눈가에는 어느새 감격의 이슬이 맺혀졌다. 귀엽기만 하던 딸이 어느덧 저렇게 장성하여 일본 왕실의 왕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마사꼬와 나루히토 왕자가 처음 만나게 된 인연을 제공한 스페인의 엘레나 공주(당시 22세).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장녀.

  

마사코가 나루히토 왕자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 마사코의 아버지 오와다 히사시는 외무성 차관이었다. 하지만 마사코가 나중에 황족과 결혼했기 때문에 마사코의 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코는 결혼과 동시에 오와다 가문의 호적에서 제외되었다. 참고자료: 마사꼬 황태자비의 친정아버지인 오와다 히사시(1932-)는 2003년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2년까지 임기이다.

 

번뇌의 세월

 

약혼발표후의 마사코 기자회견

 

이날 이후로 나루히토 왕자의 머리 속에는 마사꼬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참 활달하고 명랑한 여자야! 외국어도 잘하고! 5개국어를 한다고 했지? 외무성이라고 했겠다. 한번 조용히 만나 봤으면 좋겠네...’ 며칠 후, 나루히토 왕자는 마음을 굳히고 시종에게 마사꼬의 연락처를 알아보도록 했다. 그리고 시종을 통하여 잠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첫 번째 만남을 가졌다. 아카사카 어소(御所)에서였다. 나루히토 왕자는 마사꼬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사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조심해야 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린다면.....매스콤이 문제였다. 아무튼 마사꼬는 나중에 연락하겠노라고 말하고 곧 바로 떠났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 마사꼬는 지하철을 타고 메구로구(目黑區)의 집으로 향했다. 이사간지 얼마 안 되는 2층 현대식 양옥집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2005년 12월 23일 덴노(그들이 말하는 천황) 아키히토의 72회 생일(단조비) 기념. 도쿄의 교코 규덴에서. 가운데가 미치고와 아키히토 일왕(천황). 맨 왼쪽이 마사코 왕자비.

 

그 날 이후로 왕자는 마사꼬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도 없고, 만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형편이었으므로 편지로나마 마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마사꼬도 간혹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마사꼬로서는 도무지 당황스런 일이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일본의 왕자님이라니...말도 안 돼! 난 말단 외무공무원일 뿐이야! 훌륭한 외교관이 될꺼야! 교제라니! 말도 안 돼!...’ 마사꼬는 자꾸만 ‘말도 안 돼!’라는 말만 뇌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루히토 왕자의 구애는 조용하면서도 집요하였다. 처음 만난 1986년으로부터 1992년까지 무려 6년이란 세월동안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마사꼬는 장래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마사꼬는 그 6년 동안 ‘말도 안 돼!’라는 말만 수없이 뇌까렸을 뿐이었다. 결심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문제였다. 앞으로 언젠가는 천황(일왕)이 될 나루히토 왕자의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일왕의 외국출장을 환송하는 나루히토 왕자 부부


당황스런 매스콤의 보도

1992년 봄. 일본의 도하 신문들은 나루히토 왕자가 외무성의 오와다 마사꼬 외무사무관과 교제하고 있다는 내용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주간지들은 두 사람의 교제 기사를 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방송사도 온통 그 소식뿐이었다. 당황한 것은 왕실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궁내청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당사자인 나루히토 왕자와 마사꼬는 오히려 태연하였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왕자의 어머니 미치꼬 왕비가 아들을 불렀다. ‘어찌 된 일이냐?’...왕자는 솔직히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마사꼬가 좋습니다. 이해해주세요!’....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장차 일왕의 자리에 오를 나루히토의 결혼 문제가 아니던가? 그리고 마사꼬는 평민이 아니던가! 미치꼬(美智子) 왕비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시어머니인 나미꼬(良子)의 의중이 문제였다.

 

노인네들

                             
인내의 미치꼬 


결혼후을 마치고 시내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나루히토와 마사코

              

다음날 아침, 왕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간 미치꼬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대화가 없었고 인사만 나누던 처지였지만 미치꼬로서는 아들의 혼사 문제이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미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탐탁치 않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자기 아들 문제이니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너는 언제나 네 맘대로 하지 않았냐? 하지만 잘 못하기만 해 봐라! 가만있지 않겠노라!' 이런 뜻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었다. 결국, 시어머니의 확답을 듣지 못한 어머니 미찌꼬는 아들 나루히토에게 ’참아라, 참아! 참는 것이 약이다. 제발 서두르지 마라!‘라고 얘기해 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말을 극진히 순종하는 나루히토는 참기로 했다. 그리고 이같은 자기의 뜻을 궁내청에 전달했다. 궁내청은 즉각 전 언론사에게 통보했다. ’나루히토 왕자 교제 문제는 보도를 자숙하여 달라‘는 요청이었다. 일본의 언론들은 관례적으로 왕실 문제에 대하여 ‘이러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언제라도 보도를 자제하는 착실한 입장이었다. 나루히토 왕자와 마사꼬와의 교제 소문은 어느덧 잠잠해졌다.

              

나루히토와 마사꼬의 결혼식을 마치고 기념사진


실어증에 걸린 미치꼬

 

아무리 왕실이라고 해도 가정 문제는 일반 집이나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왕실의 혼사는 왕족 간에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만세일계(萬歲一系). 일본의 왕실에서는 왕족과 일반 서민과의 결혼 사례가 거의 없었다. 왕족이 아니라면 최소한 귀족 가문은 되어야 했다. 근세에 들어와서 그런 왕족간 결혼 체계가 흔들린 일이 있다. 바로 현재 아키히토 일왕의 부인이며 나루히토 왕세자의 어머니 미치꼬는 왕족 출신도 아니고 사회저명 인사 집안 출신도 아니었다. 평범한 일반 중류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만, 미치꼬의 아버지는 제분공장 사장으로서 돈을 많이 벌어서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쇼다 미치꼬(正田美智子: 1934-)는 우연한 기회에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아들 아키히토(明仁: 1933-)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테니스 경기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미치꼬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아주 복스럽게 생겼다. 신랑보다 키도 큰 편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되는 고준(香淳: 나미코) 왕비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우선 왕족이나 귀족 가문이 아니어서 그랬다. 생긴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기야 아키히토 왕세자의 어머니인 고준왕비로 말하자면 아무리 왕족 출신이지만 '아니올시다'로 생겼다. 그러므로 며느리 될 사람이 아주 미인이기 때문에 정했노라고 밀히면 은근히 거부감을 가질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왕비에게 미치고를 칭찬하는 일은 입만 아픈 일이었다. 나중에 나온 얘기이지만 고준 왕비는 왕족간의 결혼 관례가 자기 아들 대에서 깨어지는데 대한 불쾌감이 크게 내보였다는 얘기가 있다. 고준 왕비는 아들 아키히토가 미치꼬와 결혼하겠다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승낙은 했지만 며느리 미치꼬가 모든 면에서 못 마땅했다.

 

미찌꼬와 아키히토 황태자의 결혼 기념 (왼쪽이 대동아전쟁의 주범 히로히토 당시 천황, 오른쪽 끝이 미찌꼬의 시어머니인 고준황후)

 

미치꼬는 왕실 법도에 익숙하지 않은 왕자비로서, 그리고 나중에 왕비가 되어서도 무던히 마음 고생을 하였다. 시어머니는 새로 시집온 며느리에 대하여 기회만 있으면 트집을 잡았다. 주위 사람들이 이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눈치를 주어도 계속 미치꼬를 무시하고 못 마땅해 했다. 그런 무시는 나중에 아들 아키히토가 왕세자(황태자)로 책봉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느 해, 대동아전쟁의 전범괴수인 히로히토가 왕비와 함께 포드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연히 아들 왕세자 내외가 공항에 출영을 나갔다. 그런데 시어머니 고준왕비는 비행기에 오르면서 출영 나온 미치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마치 보기도 싫다는 듯이....고개 숙여 인사하는 미치꼬의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비행기 트랩에 오른 시어머니! 참으로 민망스런 장면이었다. 미치꼬가 받은 충격은 컸다. 만인 앞에서 노골적으로 무시를 당한 것이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으랴? 평소 왕실 내에서 무시 당하고 이러쿵 저러쿵 트집 잡히는 일은 참을 만 했다. 그러나 수상을 비롯한 내각 대신들과 왕실 사람들이 도열한 앞에서 공공연하게 모욕을 당하였으니 가슴이 메어질  지경이었다. 미치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 내가 누구인가? 앞으로 천황의 부인이 될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해?'... 그 이후로 미치꼬는 실어증에 걸렸다. 시어머니가 무서웠다. 말만 많은 왕족들이 무서웠다. 누구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실어증이라는 병으로 옮겨진 것이다. 미치꼬의 얼굴은 근심걱정으로 주름살만 늘어났다.

 

미치코는 장남을 결혼시킨후부터 웃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치코는 2018년으로 84세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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