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욕의 마사코

일왕의 차남 후미히토

정준극 2009. 12. 26. 15:01

[참고자료 2]

일왕의 차남 아키시노친왕(秋조宮文仁親王)

왕위 승계 서열 2위, 아들 히사히토는 3위

 

2019년 5월 1일로 후미히토는 일왕의 친동생으로 왕위계승 서열 1순위가 되었다. 그의 아들 히사히토는 왕위계승 서열 2위에 올랐다.

 

일본에는 왕이 있다. 일왕이다. 일본인들은 그를 천황(天皇: 덴노)라고 부른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문명시대에 하늘이 낸 황제라는 뜻의 천황은 얼마나 전근대적인 표현인지 모르겠다. 2018년 현재 일왕은 아키히토(明仁)이다. 그는 미치코 왕비(황비)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큰 아들은 당연히 왕세자(황태자) 신분이고 둘째 아들인 후미히토(文仁)는 왕위(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저 자기 할 일이나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근자에 극우적인 망상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관심을 상당히 받고 있다. 왜 그럴까? 근사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고 형인 나루히토(德仁)보다 키가 커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몇년 전에 그 집에서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히사히토라는 아들이다. 후미히토는 한때 항간에서 플레이보이 사촌쯤 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역시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근자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아주 착실하다'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있다. 후미히토 왕자는 가쿠슈인대학교에 다닐 때 아주 똘똘하고 지성적이며 재능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미모까지 겸한 키코(紀子)라는 여학생을 만나 남모르게 연애를 한 끝에 1990년에 결혼에 골인하였고 그 후로는 속으로야 어쨋든 상당히 성실한 남편 및 자상한 아버지로서, 그리고 일본국의 왕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일단은 찬사를 받고 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일본 황실에서도 큰 아들(장자)인 황태자 나루히토가 우선이며 둘째 아들 후미히토는 찬밥 처지였다. 그런데 나루히토보다 후미히토가 국민적인 관심을 더 받게 된것은 그가 잘 생겼기 때문도 아니며 콧수염을 길렀기 때문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몇년 전에 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키코 왕자비

 

현 일왕인 아키히토와 왕비인 미치코(美智子)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큰 아들은 키는 작지만 비교적 착하게 생긴 나루히토로서 다음 왕위 계승자인 왕세자(황태자)이며 둘째 아들은 콧수염을 기른 후미히토이고 딸은 엄마 미치코와는 거리가 멀게 생긴 사야코인데 그래도 얼마전에 쿠로다(黑田)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미세스 쿠로다가 된 여자이다. 문제는 어떤 아들이 누구와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두 아들이 결혼해서 아들을 두었느냐 또는 딸만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왕세자인 나루히토는 외무공무원이던 마사코(雅子)와 결혼한 후 자식이 없어서 무척이나 마음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첨단 과학의 도움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아무튼 결혼 12년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다. 이름은 아이코(愛子)라고 했다. 아이코는 2001년에 태어났으므로 2010년으로 벌써 아홉 살이 된다. 그런데 동생이 아직 없다.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다음번 왕위 계승자는 누가 되는 것일까? 현 일왕인 아키히토는 2010년으로 어느덧 77세의 고령이 되었다. 게다가 몸도 허약한 편이다. 이젠 완전히 '구부정 노인'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언제 요단강을 건너게 될지 장담할수 없는 처지이다. 다음번 왕위 계승자는 당연히 나루히토 왕세자이다. 나루히토는 2010년으로 50세가 된다. 항상 어리게만 보이던 작달만한 그가 벌써 50이라니 참으로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다. 아무튼 아키히토 현일왕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루히토가 새로운 일왕이 된다면 그 다은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후미히토와 키코. 약혼발표

 

현행 일본 황실전범(皇室典範: 고시츠템판)에 의하면 왕위(황위)는 아들만 이어 받을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남계친(男系親)이라고 한다. 헌법과 마찬가지인 황실전범이 딸도 황위를 이어 받을수 있다고 개정되지 않는한 나루히토 다음의 일왕(천황)은 콧수염을 기른 남동생 후미히토가 맡게 되어 장자가 대통을 이어간다는 규율이 지켜지지 않게 된다. 그거야 지키던 말던 큰 문제는 아니며 정작 문제는 만일 후미히토가 형인 나루히토의 뒤를 이어 일왕이 된다면 그로부터는 후미히토의 가계가 대를 이어 받게 되어 2006년에 태어나 2010년 현재 네 살을 기록하는 히사히토(悠仁)가 다음번 일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 후미히토는 형인 나루히토보다 8년 먼저 결혼했다. 그래서 아들 히사히토를 갖기 전에 이미 두 딸을 두었다. 큰 딸은 마코(眞子)로서 1991년에 태어났으며 2009년으로 가쿠슈인여고 3학년의 어엿한 처녀이고 둘째 딸은 1994년에 태어난 가코(佳子)로서 2009년에 가쿠슈인여중 3학년이다. 아무튼 남계친의 규정에 의해 현재로서는 아들만이 왕위를 이어 받을수 있으므로 나루히토와 마사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코를 비롯하여 둘째 아들 후미히토와 키코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인 마코와 가코는 ‘해당사항 없음’이 된다. 물론 딸들로서는 ‘귀찮은데 잘 되었도다!’라면서 은근히 좋아할지 모르지만 특히나 나루히토의 입장은 ‘아, 하늘도 무심하지! 어찌하여 우리의 가계로부터 황위가 다른 가계로 이전되는가?’라면서 애석해 할 것이다. 얼마전 일본 정부의 일각에서는 황실전범을 개정하여 딸도 왕위(황위)를 이어 받을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강력히 나왔었다. 일본 역사를 볼때에 여자가 일왕(천황)이 된 경우가 여덟번이나 있었으므로 아이코가 일왕(천황)이 되는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참으로 예상치도 않았는데 2006년에 후미히토에게 아들 히사히토가 생기자 그런 논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리하여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후미히토, 즉 아키시노왕자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보자.

 

후미히토의 가족 나들이. 2009년. 둘째 딸 가코는 피겨 스케이팅에 열심이다.

 

아키시노 왕자인 후미히토는 1965년 11월 30일에 태어났다. 현재의 일왕인 아키히토와 미치코 왕비의 둘째 아들이다. 후미히토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카와시마 다츠히코의 장녀인 카와시마 키코를 학교에서 만나 좋아하게 되어 또 다시 평민결혼에 성공했다. ‘또 다시’라고 언급한 것은 어머니인 미치코가 평민이어서 평민결혼의 전례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치코였기 때문인지 둘째 아들 후미히토가 키코라고 하는 평민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래! 나도 했는데 너라고 못할 것도 없지!’라는 생각으로 적극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혹자는 미치코의 그러한 전략이 자기의 결혼을 반대했고 결혼 후에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무시하던 시어머니를 비롯한 왕실에 대한 일종의 ‘이유없는 반항’이라고 해석하였다. 아무튼 후미히토는 어머니 미치코의 지원을 받아 형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후미히토의 큰딸 마코 공주. 2014년. 만일 마코의 아버지 후미히토가 차차기 일왕이 되고 그가 일왕으로 재직 중에 황실전범을 고쳐서 딸도 왕위를 계승할수 있도록 한다면 마코가 차차차기 일왕이 될수도 있다. 그때 쯤이면 세상은 발전하여서 남녀차별 철폐가 완전 성사될 것이므로 마코가 일왕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후미히토는 결혼과 동시에 아키시노 노 미야 후미히토 신노(秋조宮文仁親王)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타이틀은 아키시노 왕자(친왕)이며 일반적으로 부를 때는 후미히토라고 부른다. 어릴 때엔 아야(札宮: 아야 노 미야)라고 불렀다. 후미히토는 1984년 가쿠슈인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법률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후 1988년부터 1990년 6월까지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세인트존스칼리지(St John's College)에서 독성학을 공부했다. 1989년 1월 할아버지인 대동안전쟁의 전범 히로히토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나루히토 왕세자에 이어 황위 서열 제2위에 올랐다. 1990년 6월 29일, 마침내 그는 영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천신만고 끝에 교제하던 가와시마 키코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결혼후에도 계속 조류의 종족학을 공부하여 1993에는 인도네시아에서, 1994년에는 중국 운남성에서 각각 현장연구를 마쳤고 1996년에는 국립종합연구대학교에서 조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야생(특히 정글)의 조류가 어떻게 하여 집안에서 기르는 조류가 되었는지를 분자생물학적 입장에서 연구하였다. 일왕의 딸, 즉 나루히토와 후미히토의 유일한 여동생인 사야코도 무슨 희귀한 새(실은 물총새)를 연구하였는데 오빠인 후미히토도 새를 연구하였으니 이 집안은 새 집안인 것 같다.

 

후미히토 가족. 2011년. 카코 왕자비, 가코 공주, 마코 공주, 히사히토 왕자

 

후미히토는 태국과도 특별한 관계에 있다. 현재의 일왕인 아키히토가 아직 왕세자였을 때 아키히토는 태국에 틸라피아(Tilapia)라는 생선을 양식토록 소개했다. 틸라피아는 중요한 단백질원이었다. 틸라피아 생선은 쉽게 양식할수 있어서 어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후미히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국의 수산물 양식 사업에 많은 자문을 했다. 후미히토는 새전문가이기도 하지만 메기(Catfish)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후미히토는 비틀즈의 열렬 팬이며 테니스는 프로급이다. 후미히토는 학생시절에 간토(관동)지역 테니스 복식의 10위권 이내에 들 정도였다. 그는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다. 후지와라 시대의 오노노도푸의 서체를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아키시노왕자는 현재 야마시나조류연구소의 회장이며 일본동물원협회-수족관협회 회장이다. 그는 또한 일본자연보호를 위한 세계기금과 일본테니스연맹의 명예회장이다. 그리고 일화(일본-네덜란드)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2009년은 일본이 화란(오란다)과 무역을 개시한지 4백주년이 되는 해로서 아키시노왕자는 키고왕자비와 함께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는 후미히토와 키코. 후미히토는 테니스 선수로서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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