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왕실은 후계자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다. 태국의 챠크리왕조의 면면을 알아본다.
기로에 선 태국 왕실
국민들은 시리도른을 원한다!
1. 잠 못 이루는 국왕
저 먼 남쪽에 있는 어떤 왕국에는 오래전부터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점잖은 임금님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온 백성들이 임금님에게 충성하기를 부처님에게 충성하듯 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에선 길거리의 조그만 포장마차 식당에도 임금님의 사진이 걸려있을 정도로 임금님에 대한 존경심이 국민 모두의 몸에 배어있다. 이 나라에서 임금님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존경의 대상이다. 임금님이 시골에 행차라도 하는 날에는 온 마을이 며칠 전부터 술렁이며 환영 차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런 임금님이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누가 내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올라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다. 임금님에게는 왕자 한 명과 공주 세 명이 있다. 문제는 하나뿐인 왕자가 도무지 미덥지 않다는 데에 있다. 더구나 바람둥이라는 소문도 있다.
라마 9세 부미볼 아둘라야데이(푸미폰 아둘야뎃) 국왕. 2003년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함이 당연 하지만 어쩐지 제대로 왕 노릇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눈치이다. 물론 왕자에게 다음 왕위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은 조상님들에게 송구스런 일이다. 게다가 왕자는 이미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서 왕자보다는 둘째 공주를 다음 국왕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자꾸 나오고 있다. 첫째 공주는 미국에 유학을 보냈더니 거기서 웬 서양 사람을 만나 그만 결혼해 버렸다. 임금님과 왕비는 너무나 속상해서 첫째 딸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둘째 딸이 큰 딸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공주는 사람이 아주 관찮다.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서는 둘째 공주가 국왕에 오르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만일 공주에게 왕위를 넘겨주려면 나라의 법을 고쳐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왕국에서는 여왕이 태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관례를 깨트릴 수는 없다. 왕세자를 다음 번 국왕으로 밀고 나가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바람은 그렇지 않으니... 임금님은 고민에 빠져있다. (고민할 것도 없다. 왕이 2016년 10월에 세상을 떠나자 당연히 왕세자가 다음 왕이 되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다.)
둘째 공주 시린도른의 얌전한 모습
왕자가 적격 후보자가 아니라면 누가 후보자인가? 세 명의 공주중에서 누구를 꼽으란 말인가? 첫째 공주는 이미 오래 전 왕궁을 떠났다. 명예도 싫고 부귀도 싫다고 하면서 자기만의 생활을 위해 훌쩍 왕궁을 떠났다. 왕실과는 인연을 끊고 산지 오래이다. 임금님도 첫째 딸을 더 이상 왕실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다음 순서는 둘째 공주이다. 둘째 공주는 과연 누구이기에 국민들이 그렇게도 좋아한단 말인가? 나이가 웬만하지만 아직 혼인은 하지 않았다. 결혼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회봉사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사람이 아주 관찮다. 덕이 있다. 공부도 할 만큼 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하여는 특별히 조예가 깊다. 아버지 국왕을 대신해서 외교 사절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다. 국민들은 공공연히 둘 째 공주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젊은 시절 국제회의에 나가서 발표하는 둘째 딸 시린도른
2. 돌쇠 왕세자와 둘째 공주
둘째 공주를 다음 번 국왕으로 삼는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아무래도 걱정은 왕자이다. 왕자는 근위대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이 왕국에서는 과거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심심찮게 일어난 일이 있다. 만일 왕자가 군부와 결탁하여 자기를 후계자로 삼지 않는데 대하여 반항한다면 문제는 것잡을수 없이 복잡해진다. 현재의 국왕이 살아 있는 한 부왕의 명령에 복종은 하겠지만 그 속셈을 알 수가 없다. 국민들이 왕자를 제쳐두고 공주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왕자라는 녀석이 돌쇠처럼 힘깨나 쓰게는 생겼지만 아무래도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이다. 이 녀석은 한때 젊은 혈기에 바람깨나 폈다. 성격이 과격한 편이어서 부하들조차 은근히 싫어하고 있다. 머리는 단순하면서도 좀 나쁜 것 같다. 조종사 시험에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탱크 운전을 훈련받도록 한 것은 좋은 예이다. 반면 둘째 공주는 아주 야무지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수년 전, 왕실 사람으로서 국가원자력청(OAP)을 처음 방문한 것도 왕자가 아니라 둘째 공주였다. 이날 원자력청 전 직원은 아침 일찍부터 의관을 정제하고 둘째 공주님 행차를 마지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 쏟았다. 둘째 공주가 도착하자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연구원도 있었다.
둘째 공주 시린도른. 둔둔하다.
여기서 잠시 현 태국 국왕의 자녀들을 소개코자 한다. 1946년에 태국 국왕에 즉위하였으며 1950년 방콕에서 대관식을 가진 부미볼 아둘리야데즈(Bhumibol Adulyadej)국왕과 시리키트 키티야카라(Sirikit Kitiyakara)왕비는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자녀들의 결혼 생활이 하나같이 순탄치 않아서 부미볼 국왕의 가정에는 바람잘 날이 없다.
첫째 딸 우볼라타나 라자카니야(Ubolratana Rajakanya)는 1951년에 스위스의 로잔느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MIT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이어 UCLA에서 공중보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MIT 다닐 때에 동급생인 피터 라드 젠센(Peter Ladd Jensen)을 만나 1972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결혼하여 3자녀를 두었으며 1998년 이혼하였다. 아들 데이빗은 2004년도 12월 동남아를 덮친 츠나미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유일한 아들로서 왕세자인 마하 바지랄롱코른(Maha Vajiralongkorn)은 1952년 태어났으며 2010년으로 58세가 된다. 호주 왕립군사학교를 졸업하고 태국군의 장교로서 복무하고 있다. 그는 세번이나 결혼하였고 슬하에 2녀 5남을 두었다. 못말리는 한량이다.
둘째 딸은 마하 챠크리 시린도른(Maha Chakri Sirindorn)으로 1955년에 태어났으며 아직 미혼이다. 2010년으로 55세가 된다. 출라롱코른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국민들은 그를 존경하여서 프라 테프(Phra Thep)라고 부른다. 천사 공주라는 의미이다.
셋째 딸은 출라보른 왈라이라크(Chulaborn Walailak)로서 1957년에 태어났다. 역시 출라롱코른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1982년에 결혼하였으나 1984년에 이혼하였다. 두명의 딸을 두었다.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출장가는 시린도른 공주가 비행기 트랩을 오르고 있다.
[참고자료] 챠크리 왕조의 군왕들
1. 라마 1세. 프라 푸타요프파 출라로크(Phra Phutthayotfa Chulakok)
2. 라마 2세. 프라 푸탈로에틀라 나팔라이(Phra Phutthaloetla Naphalai)
3. 라마 3세. 낭크라오(Nangklao)
4. 라마 4세. 몽쿳(Mongkut)
5. 라마 5세. 출라롱코른(Chulalongkorn)
6. 라마 6세. 바지라부드(Vajiravudh)
7. 라마 7세. 프라자디포크(Prajadipok)
8. 라마 8세. 아난다 마히돌(Ananda Mahidol)
9. 라마 9세. 부미볼 아둘랴데이(Bhumibol Adulyadej)
[10. 라마 10세. 바지랄롱코른(Vajiralkongkorn)]. 와지랄롱꼰
* 후기: 푸미폰 아둘야뎃 국왕은 2016년 10월 13일 서거했다. 1927년 생이므로 향년 88세였다. 왕세자인 마하 와지랄롱꼰은 부왕의 서거에 대한 애도로 인하여 당장 즉위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태국정부는 1년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설정하였다. 왕세자는 세번 결혼했고 플레이보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리고 도박에 탐닉하여서 도박 빚이 많다고 한다. 그 빚을 부정축재의 장본인인 전총리 탁신이 상당액을 갚아 주었다고 한다.
태국 왕세자 와지랄롱꼰. 2016년으로 벌써 64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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