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기적 로맨스: 심슨

첫번째 결혼: 스펜서

정준극 2009. 12. 31. 06:23

3. 첫번째 결혼: 스펜서

 

1916년 5월, 월리스는 스므살이 되던 해에 사촌 코린 머스틴(Corinne Mustin)을 만나러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 갔다가 우연히 미해군 조종사인 얼 윈필드 스펜서(Earl Winfield Spencer)를 만나서 사귀기 시작했다. 이때 월리스는 역시 우연히 펜사콜라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광경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그로부터 월리스는 평생을 비행기 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얼과 월레이스는 우선 결혼부터 하자고 생각하여 반년 후인 그해 11월 볼티모어의 그리스도감독교회(Christ Episcopal Church)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윈(Win: 남편 얼 윈필드 스펜서의 애칭)은 알콜중독자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도 술을 마셨다. 한번은 술에 취하여 비행하다가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한 일도 있다. 요행으로 윈은 다치지도 않았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윈은 캘리포니아 주 산디에고의 조종사훈련소에 배치되었다. 월리스는 남편을 따라 산디에고로 가서 1920년까지 살았다.

 

첫남편 스펜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1920년에 당시 영국 황태자인 에드워드(웨일스공)가 산디에고를 방문하였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알지도 못했고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해 말에 월리스는 술에 절어 있는 남편 윈을 도저히 묵과할수 없어서 별거에 들어갔다. 월리스는 워싱턴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다. 월리스에게는 워싱턴이 생리에 맞았다. 그런데 4개월 후인 1921년 봄에 윈이 워싱턴의 국방성으로 배속되었다. 별거는 유야무야가 되어 월리스는 윈과 다시 합하여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1923년 윈이 극동지역 미공군 편대장으로 배속되자 워싱턴의 사교계에 겨우 발을 디뎌 놓은 월리스는 남편을 따라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극동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워싱턴에 혼자 남아 살게 된 월리스는 자유분방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아르헨티나의 외교관인 펠리페 에스필(Felipe Espil)과 어페어를 가지며 쾌락의 생활을 했다.

 

월리스는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다. 마침 플로리다에 살고 있던 사촌언니 코린 머스틴이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몸이 되자 월리스에게 기분도 그렇지 않으니 파리여행이나 가자고 제안했다. 월리스와 사촌언니 머스틴은 의기투합하여 1924년 1월 유럽으로 떠나기로 했다. 월리스는 내친 김에 남편을 만나 아예 헤어지는 담판을 가지려고 생각했다. 그후에 유럽으로 가서 만고강산 유람할 생각이었다. 마침 극동으로 가는 미해군함정에 장교가족으로서 탑승할수 있었다. 월리스는 필리핀으로 가서 남편 윈을 만났다. 하지만 하루밤을 함께 지낸 젊은 두 사람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라며 다시 합치기로 합의했다. 월리스는 파리여행이고 무어고 집어치우고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당분간 지냈다. 그러던중 월리스는 오염된 물을 잘못 마셔서 병에 걸리게 되었다. 월리스는 홍콩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또 다시 남편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기왕에 홍콩에 머물게 된 월리스는 내친김에 중국 여행에 나섰다. 월리스는 베이징으로 갔다. 이곳에서 월리스는 갈레아쪼 치아노(Galeazzo Ciano)백작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치아노백작은 나중에 무쏠리니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이탈리아 외무장관을 지냈다. 아무튼 월리스와 치아노는 베이징에서 정염을 불살랐다. 월리스는 임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비록 사랑의 씨앗이지만 사생아를 낳을 형편은 아니었다. 중절수술을 받았지만 매우 어설픈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월리스는 평생 임신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치아노백작과의 불륜은 나중에 유럽의 사교계에서 가십이 되었으나 치아노와 결혼한 에다 무쏠리니는 남편이 베이징에서 월리스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대영제국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와 결혼한 월리스에게 누가 되는 소문이 나면 피차 곤란하기 때문인듯 싶었다. 1925년 9월, 월리스와 남편 윈은 일단은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별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결국 1927년 12월에 이혼하였다.

 

1938년 뮌헨조약 체결시. 좌로부터 영국 수상 네빌 아더 챔벌린(Neville Arthur Chamberlain), 프랑스 수상 에두아르 달라디어(Edouard Daladier),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쏠리니, 이탈리아 외무장관 갈레아쪼 치아노(Galeazzo Ciano). 북경에서 심프슨부인과 스캔들이 있었던 사람이 무쏠리니의 사위로서 이탈리아 외무장관을 지낸 치아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