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기적 로맨스: 심슨

덧 없는 인생

정준극 2009. 12. 31. 06:37

10. 덧 없는 인생

-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말년과 죽음 -

 

에드워드와 월리스의 죽음에 대하여 얘기하기 전에 1946년에 에드워드 부부의 보석이 도난 당한 얘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1946년의 어느 여름날 에드워드 부부는 더들리경의 저택인 에드남 롯지(Ednam Lodge)에 묵고 있었다. 그날밤 도둑이 들어서 월리스의 보석을 훔쳐갔다. 영국 왕실에서 배후를 조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에드워드 부부가 가져간 영국 왕실 소장의 보석들을 되찾기 위해서 도둑을 시켜 찾아오게 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에드워드는 영국 왕실 소유의 귀중한 보석들을 다량으로 가져갔으며 상당량의 세팅하지 않은 보석은 파리의 캬르티에(Cartier)에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월리스의 보석 도단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가 1960년 우연한 기회에 리챠드 던피(Richard Dunphie)라는 사람이 자기가 도둑이라고 자수했다. 경찰 조사결과, 영국 왕실의 배후사주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때 도둑맞은 보석들은 실은 에드워드 부부가 가지고 있던 전체 보석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난리를 필 사거니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난 당한 보석들은 그나마도 에드워드가 개인적으로 샀거나 황태자일 때에 선물 받은 것이 대부분이며 영국 왕실이 소유했던 것은 없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

 

에드워드와 심슨부인(월리스)의 로멘스를 그린 영화

 

1952년에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며 에드워드의 남동생으로 대영제국의 국왕이 된 조지 6세가 서거했다. 에드워드는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모처럼 런던을 방문하여 가족들을 만나볼수 있었다. 월리스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 전해의 10월에 에드워드 부부가 비공식적으로 런던에 잠시 머물렀을 때 월리스는 남편 에드워드에게 ‘난 정말이지 이 나라가 싫어요. 죽을 때까지 싫어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정말로 에드워드 부부는 이후 영국을 거의 찾지 않았다. 1952년 말에 파리 시당국은 무슨 생각을 했던지 에드워드 부부에게 파리 교외의 뉠리(Neuilly)에 있는 어떤 저택을 사용하도록 했다. 에드워드 부부는 샹당트렌망(Champ d'Entrainement) 4번지에 있는 이 저택에서 말년을 보냈다. 에드워드 부부는 시골에 집을 하나 샀다. 에드워드 부부는 시골집의 이웃인 오스왈드 모슬리 부부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에드워드 부부는 모슬리 부부와 함께 지구상에서 공산주의가 사라져야 한다는데 대하여 뜻을 같이하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몸이 된 윈저공부인 월리스

 

1965년에 에드워드와 월리스는 다시 런던을 방문했다. 사실 파리에서 런던이야 비행기로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에드워드로서 여러 사연이 묻혀 있는 런던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65년의 방문은 에드워드가 눈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무닝었다. 그때 에드워드 부부의 숙소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에드워드의 숙모가 되는 마리나 공주가 깜짝 방문하였다. 왕실에 훈풍이 불지 않느냐는 추측이 난무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67년, 에드워드 부부는 다시 런던을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퀸 마더(엘리자베스 왕비)의 탄생 100주년 기념 명판을 제막하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퀸 마더는 에드워드의 제수(弟嫂)이며 월리스에게는 손아래 동서(同棲)가 된다. 1972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챨스 황태자는 파리에 살고 있는 에드워드를 방문하였다. 윈저공인 에드워드는 그로부터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

 

심프슨부인 때문에 대영제국의 왕비가 된 엘리자베스(퀸 마더). 엘리자베스 2세 현여왕의 어머니이다. 사진은 '퀸 마더' 자서전

 

197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윈저공 에드워드의 장례식은 런던에서 거행되었다. 윈저공부인인 월리스는 런던의 장례식에 미망인으로서 참석하였다. 월리스는 런던 방문 기간 중에 버킹엄 궁전에서 머물렀다. 그 팔팔하던 월리스는 이제 노쇠하여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쇠약해 있었다. 월리스는 말년을 에드워드가 남긴 재산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원해 주는 경비로 파리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지냈다. 1976년 10월, 퀸 마더(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가 파리를 방문하여 월리스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손아래 동서로서 형님이 병중에 있으므로 병문안 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 월리스는 치매가 심하여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역사적인 퀸 마더의 방문은 갑자기 취소되었다. 퀸 마더는 꽃다발을 보냈다. 카드에는 ‘우정으로서, 엘리자베스 드림’이라고 적었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 오락가락했던 이상한 소문들은 모두 불식되었다. 월리스는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난 후에 모든 재산권을 프랑스인 변호사인 수잔느 블럼(Suzanne Blum)에게 일임하였다. 1980년에 들어서서 월리스는 치매 증세가 더욱 심각해 졌다.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진 그는 이후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외부 사람으로서 월리스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뿐이었다.

 

세기의 여인 월리스(심슨부인)는 1986년 4월 24일 파리의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에 있는 자택에서 자는 듯 숨을 거두었다. 월리스의 시신은 런던으로 옮겨져 윈저성의 성조지채플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에는 두 사람의 손아래 동서, 즉 퀸 마더와 글라우체스터공부인(Duchess of Gloucester)인 알리스가 참석하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군인 필립공, 챨스 황태자와 다이아나 황태자비 등이 참석했다. 월리스는 윈저성의 왕실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간단히 ‘Wallis, Duchess of Windsor’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에드워드와 월리스는 죽으면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그린 마운트 공동묘지(Green Mount Cemetery)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다. 오래전에 월리스의 아버지의 유해가 이장되어 묻혀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윈저성의 왕실묘역에 있는 월리스의 묘지 

 

유산은 모두 파스퇴르연구소에 기증

 

월리스가 세상을 떠나자 월리스가 가지고 있던 보석류등 재산은 거의 모두 파스퇴르연수소의 의학연구재단에 기부되었다.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평소에 자선기부라고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 그런 대단한 기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파스퇴르연구소에는 1차로 4천5백만불(약 5백억원)이 기부되었다. 월리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에 소더비에서 있었던 보석경매를 통해서 조성되니 돈이었다. 프랑스는 에드워드 부부에게 저택을 제공한바 있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월리스는 유언에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루이16세풍의 가구들과 도자가 및 그림들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였다. 영국의 왕족들은 어떤 유산도 받지 못했다. 다만, 해로드백화점의 소유주인 모하메드 알-파예드(Mohammed Al-Fayed)가 에드워드의 부동산을 매입하였다. 예를 들면 파리 맨션의 임대권 등이었다. 모하메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의 미술소장품을 1998년에 모두 매각하였다. 그 해에 그의 아들이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때 자동차에 함께 타고 있던 여인이 다이아나였다. 모하메드의 소장품들은 경매를 통하여 1천4백만 파운드에 팔렸다. 모하메드는 이 돈을 모두 자선활동을 위해 사용키로 했다.

 

파스퇴르 연구소 초기 건물. 현재는 루이 파스퇴르 박물관. 파스퇴르의 영묘가 있으며 파스퇴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결미사를 드렸던 채플이 있다. 심프슨부인 월리스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유산을 모두 파스퇴르 연구소에 기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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