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계의 연인: 마거릿

세계의 연인 마거릿 공주

정준극 2009. 12. 31. 17:15

세기의 로맨스 마거릿(Margaret)공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

타우센드 대령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

 

1. 세계의 연인 마거릿 공주

 

1950년대 후반이나 1960년대 초반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영국 마거릿공주와 피터 타운센드 대령과의 세기적인 로맨스를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하나뿐인 동생인 마거릿공주와 그의 경호원인 타운센드 대령과의 이루지 못한 로맨스였다. 아름답고 우아한 마거릿공주는 온 세상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꿈 속에서라도 한번 만나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실로 세계의 젊은이들은 마거릿 공주의 사진만 보고도 사모의 심정에 가슴을 설레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거릿 공주는 세계의 연인이었다. 마거릿공주의 이름은 마거릿 로즈(Margaret Rose)이다. 마거릿공주는 이름만큼이나 장미처럼 매혹적이면서도 진주처럼 고귀했다. 그 마거릿 공주가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고 아들이 둘이나 있는 16살 연상의 피터 타운센드라는 사람을 대단히 사랑하여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타운센드는 마가렛 공주의 아버지인 조지 5세의 시종무관으로서 마거릿 공주 담당이었다. 그러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나서자 주위의 반대가 장난도 아니었다. 영국교회(성공회)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혼남과의 결혼은 불가하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그 이혼남의 전처가 아직 살아 있으면 더 곤란했다. 마거릿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혼전의 마거릿 공주 

 

마거릿은 왕실이 승낙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암스트롱 존스라는 이름의 왕실 전속 사진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결혼식이었지만 마거릿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거릿 공주가 사랑하는 타운센드와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뉴스를 들은 세계의 젊은이들은 ‘아, 비운이로다! 도대체 사랑에 신분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면서 마거릿 공주의 심경을 적극 위로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니,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라면서 마거릿 공주의 행동을 한심하게 보았다. 과연! 중매에 의한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마거릿은 결국 남편 암스트롱 존스와 1978년에 이혼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렇게도 매력적이던 마거릿 공주의 모습은 점점 압구정동 복부인 스타일로 변하더니 60이 넘으니까 ‘아니, 이 아줌마는 누구시더라?’라고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 되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면 필리핀의 이멜다여사, 또는 태국의 시리키트왕비를 연상하면 된다. 마거릿은 심장마비로 2002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였다. 전남편 스노우던 경과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다. 이제 마거릿이 어떤 여인이었는지, 피터 타우센드와의 로맨스는 어떠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마거릿 공주. 결혼전. 생기기도 시원하게 잘 생겼지만 공주가 아니던가?

                   

마거릿의 어린 시절은 언니 엘리자베스와 함께 비교적 평온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와의 나이 차이는 네 살이었다. 그러던중 1936년, 삼촌인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부인(월리스)이라고 하는 웃기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대영제국의 왕관을 포기하자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의 아버지인 알버트가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아이들의 생활은 크게 변하였다. 아버지 알버트가 조지 6세로서 대영제국의 국왕에 오르자 마거릿은 언니 엘리자베스에 이어 왕위 계승권자 2위가 되었다. 그후 엘리자베스가 결혼하여 철수인지 찰스인지를 생산하였고 이어 영국의 왕위에 오르지 왕위 계승권자 2위는 철수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마거릿이 이미 오래전인 2002년에 요단강을 건너갔으므로 왕위 계승 순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중에 만일 병약한 아버지 조지 6세가 어떻게 되고 또한 언니 엘리자베스가 전쟁 중에 어떻게 잘못된다면 마거릿이 당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영제국의 여왕이 되어야 하는 판이었기 때문에 당시 마거릿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지대했었다. 그런데 정작 마거릿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고조되었던 것은 2차 대전이 끝난 후부터였다. 피터 타운센드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때문이었다.

 

빌리 프리사유어가 쓴 '마거릿: 사랑스런 공주'의 표지

 

마거릿은 간혹 왕실에서 문제의 인물로 부각되었다. 우선 여왕의 동생으로서 평민들과 로맨스를 뿌리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얼마 후에 이혼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이혼을 했다는 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게다가 마거릿은 이혼 후에 몇 사람들과 로맨스를 가졌다. 말이 좋아서 로맨스이지 실은 무절제한 애정행각이었다. 마거릿은 무절제한 생활로 건강이 점차 악화되었다. 더구나 심한 흡연자였다. 아마 우리나라 같았으면 담배인삼공사로부터 감사장을 두어번 이상 받았을 정도로 우수흡연자였다. 마거릿은 결국 폐에 이상이 생겨서 1985년 수술을 받았다. 1993년에는 다시 폐렴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는 끝내 심장마비로 2002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였다. 언니인 엘리자베스는 2010년 현재에도 아직 정정하여 미안하지만 도무지 요단강을 건너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동생 마거릿은 절제하지 못한 생활 때문에 일찍 세상을 하직하였다. 마거릿의 시신은 화장되었으며 유분(遺粉)은 윈저성의 성조지채플에 안치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석관에 함께 안치되었다. 인생무상! 이제 그 마거릿공주에 대한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마거릿 공주: 요란하지 않는 생활' 책자 표지. Unrevelled를 번역하기가 어렵다. 소란스럽지 않다는 뜻인데...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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