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계의 연인: 마거릿

마거릿의 어린 시절

정준극 2009. 12. 31. 17:16

2. 마거릿의 어린 시절

 

마거릿은 1930년 8월 21일, 스코틀랜드의 앙거스(Angus)에 있는 글라미스(Glamis) 성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나중에는 Queen Mother라고 부름)의 고향집이었다. 마거릿은 태어나자마자 영국의 왕위 계승권 4위가 되었다. 당시 국왕은 마거릿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에게는 아들이 넷이 있었다. 에드워드, 알버트, 조지 그리고 또 하나였다. 마거릿의 큰 삼촌인 에드워드는 미장가였다. 둘째인 알버트가 먼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의 아버지이다. 작은 삼촌인 조지 역시 미장가였다. 그러므로 조지 5세의 뒤를 이을 순서는 1순위 삼촌 에드워드, 2순위 마거릿의 아버지 알버트, 3순위 마거릿의 언니 엘리자베스, 그리고 4순위 마거릿이었다. 만일 큰삼촌인 에드워드가 결혼하여 자녀를 갖게 되면 그들이 우선이므로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은 순위에서 멀어진다. 마거릿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새로 태어난 딸의 이름을 앤 마가렛(Ann Margaret)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되는 메리 왕비, 즉 조지 5세의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뢰옵기 죄송하오나 저의 둘째 딸 이름을 앤 마거릿으로 했으면 좋겠사옵나이다. 그 아이를 요크의 앤(Ann of York)라고 부른다면 우선 이름이 예뻐서 듣기에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언니 이름인 엘리자베스와 앤’은 잘 어울립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조지 5세는 앤이라는 이름을 싫어했다. 헨리8세의 두번째 부인으로 참수형을 받았던 앤 볼레인을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마거릿 로우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린시절의 마거릿 공주

 

마거릿은 어린 시절에 주로 런던의 피카딜리에 있는 요크공(아버지의 직분)의 저택에서 지냈으며 그렇지 않으면 윈저성의 왕실 숙소(Royal Lodge)에서 지냈다. 백성들은 요크공의 가정을 부모와 아이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새로 태어난 마거릿이 귀머거리에 벙어리라는 소문이었다. 마거릿은 4살 때에 작은 삼촌인 조지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벙어리도 아니고 귀머거리도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줌으로서 그런 소문은 사라졌다. 아마 마거릿이 부족한 것이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배가 아파서 그런 소문을 낸 것인듯 싶다. 하여튼 영국 사람들은 못 말린다.

 

마거릿이 다섯 살 때에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세상을 떠났다. 예정대로 큰 삼촌이 에드워드 8세로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로부터 1년도 안된 1936년 12월 11일 에드워드 8세는 두 번이나 이혼한 경력이 있는 미국인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였다. 영국교회와 영연방 정부들이 심프슨부인을 왕비로서 받아들일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에드워드 8세는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렸던 것이다. 영국교회는 전남편이 살아 있는 이혼녀와의 결혼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마거릿의 아버지는 한마디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마지못해 국왕이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하여 마거릿은 하루아침에 왕위 계승권자 4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세계의 사랑을 받은 마거릿 공주

 

마거릿은 브라우니(Brownie)였으며 그 후에는 걸 가이드(Girl Guide)로 활약했고 또 그 이후에는 씨 레인저(Sea Ranger)였다. 브라우니는 스코틀랜드의 전설에 나오는 작은 요정으로 밤에 몰래 나와서 농가의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걸 가이드가 되기 전의 어린이들을 브라우니 부대로 편성하여 단체 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마거릿은 어린 시절부터 브라우니와 걸 가이드 등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1965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걸 가이딩 유케이(Girl Guiding UK)의 회장을 맡아했다. 2차 대전 중에 마거릿은 언니 엘리자베스와 함께 걸 가이드로서 국방의 일을 도왔다. 엘리자베스는 주로 운전병으로 봉사했지만 마거릿은 아직 어려서 잡일을 하였다. 자매는 전쟁 중인 1939년 크리스마스까지 발모랄(Balmoral)성에 머물고 있었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이지만 넉넉한 난방을 할수 없었다. 침실이 어찌나 추웠던지 침대 옆 탁자에 놓아두었던 마시는 물이 자주 얼었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조지 5세에게 두 공주들의 안전을 위해 잠시 캐나다로 보내자고 제안하였다. 왕비인 엘리자베스(훗날 퀸 마더)의 답변이 유명했다. “아이들은 엄마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않습니다. 엄마인 저는 왕을 혼자 있게 두고 아무데도 가지 않습니다. 왕은 영국을 두고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와 함께 윈저성에서 즐거운 한때. 1935년.

 

1942년, 마거릿이 12살 때에 작은 삼촌인 조지공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이후로 직계의 왕족들은 전쟁 중에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여행을 다닌다든지 등의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왕위 계승 1, 2순위인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은 함부로 외출하지 못했다. 언제 독일의 폭탄이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거릿은 집에 있으면서 노래 부르기와 피아노를 부지런히 공부했다. 아버지 조지 6세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거릿의 응석이라면 거의 모두 받아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버지 때문에 마거릿이 버릇이 없는 아이가 될 것 같아 걱정들이 많았다. 마거릿은 그때그때의 상황을 잘 파악하여 순간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재치가 많았다. 말도 어찌나 똑똑하고 재미나게 하던지 마거릿의 주변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차별이 있을수 없지만 그래도 굳이 무게를 잰다면 조지 5세는 엘리자베스보다 마거릿을 더 사랑했다고 한다. 조지 5세가 ‘엘리자베스는 나의 자랑(Pride)이요 마거릿은 나의 기쁨(Joy)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언니와 함께 어린이 책 표지에 실린 마거릿.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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