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니콜라스 황제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서

정준극 2010. 1. 2. 05:08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

 

1.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서 가족과 함께 피살

 

어느 나라든지 마지막 군주는 불쌍한 최후를 맞는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칼 황제가 그렇고 중국 청나라의 부의가 그러하며 이란의 샤 팔라비가 그렇다. 니콜라스 2세는 제정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러시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러시아는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차르)인 니콜라스 2세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참으로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 모두가 볼셰비키에 의해 총살을 당하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아무리 마지막 임금이라고 해도 이토록 처참하게 전가족이 몰살 당하는 예는 없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때문에 니콜라스 황제를 더 기억하게 한다. 니콜라스 2세는 1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7년 2월 볼셰비키에 의해 폐위되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사회민주노동당원들을 말한다. 다시 말하여 공산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잔인하고 과격했다. 그래서 볼셰비키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과격주의자를 뜻하게 되었다.

 

제정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2세

 

볼셰비키 혁명분자들은 니콜라스 2세와 가족들을 체포하여 생페터스부르크 교외의 차르스코에 셀로(Tsarskoe Selo)에 있는 알렉산더 궁전에 연금하였다. 차레스코에 셀로는 차르(황제)의 마을이란 뜻이며 오늘날의 푸쉬킨 시이다. 니콜라스 2세와 가족들은 얼마 후에 토볼스크(Tobolsk)에 있는 총독관저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인 7월에는 마지막으로 예카테린부르크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니콜라스 2세, 알렉산드라 왕비, 황태자 알렉세이, 네 명의 딸(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시아), 전속요리사, 전속운전사, 주치의, 왕비의 시녀 등이 볼셰비키에 의해 같은 방에서 모두 총알 세례를 받고 죽임을 당했다. 1918년 7월 17일 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1913년의 니콜라스 2세 가족.

 

이로써 제정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가장 나이어린 공주인 아나스타시아는 극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10여년 후에 파리에서 할머니인 마리아 페도로브나 황비와 만나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그가 진짜 아나스타시아인지 알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아나스타시아 문제는 끝내 미궁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율 브린너가 주연한 ‘아나스타시아’라는 영화의 줄거리가 된바 있다. 그건 그렇고 로마노프 왕조 최후의 황제인 니콜라스 2세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살펴보자.

 

니콜라스 2세의 풀 네임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이다. 1868년 5월 18일 생페터스부르크 교외의 차르스코에 셀로(현재의 푸쉬킨시)에서 태어났으며 1918년 7월 17일 향년 50세로 우랄 지방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니콜라스 2세의 공식 타이틀은 황제 및 전러시아 군주(Emperor and Autocrat of All the Russia)이며 핀란드 대공과 폴란드 왕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었다. 니콜라스 2세는 혁명의 와중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러시아정교회는 그의 죽음을 순교로 간주하여 성니콜라스로 시성하였다. 니콜라스 2세는 1894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황제에 올라 1917년 3월 15일 공식적으로 폐위될 때까지 23년간을 통치했다. 그의 통치기간 중 한때 세계의 강국이었던 제정러시아는 경제적, 군사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어 국운이 쇠퇴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니콜라스 2세를 ‘블라디 니콜라스’(Nikolas the Bloody)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의 재임 기간 중에 유명한 코딘카(Kohdynka) 비극, 블라디 선데이, 유태인 포그럼(집단학살) 등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결정적으로 실정을 기록한 것은 1914년 8월, 1차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전국민의 징집을 강행했던 것이다. 러시아가 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 간 것이 결국 혁명을 불러오게 되었고 이로서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제 니콜라스 2세의 가정 배경부터 알아보자.

 

생페터스부르크의 베드로-바울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니콜라스와 가족들의 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