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니콜라스 황제

약혼, 즉위, 결혼

정준극 2010. 1. 2. 05:11

4. 약혼, 즉위, 결혼

 

니콜라스와 알릭스는 1894년 4월에 약혼하였다. 니콜라스가 26세 때였다. 그런데 실상 알릭스는 니콜라스와의 결혼을 주저주저하였다. 왜냐하면 니콜라스와 결혼하려면 루터교를 버리고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궁리 끝에 알릭스에게 만은 종교의 예외를 두도록 했다. 즉, 루터교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토록 하였다. 알릭스는 약혼한 해의 11월에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식의 알렉산드라 페도로브나(Alexandra Fedorovna)라는 이름을 가졌다.

 

니콜라스와 알릭스가 약혼한지 얼마후 알렉산더 3세가 신장염이 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때 알렉산더 3세는 49세였다. 니콜라스는 26세로 제정러시아의 황제(차르)의 자리에 올랐다. 니콜라스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황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알렉산더 3세가 적어도 30년 정도는 더 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황태자로서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황제교육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물론 조기교육에 대한 건의도 있었다. 재무장관이었던 세르게이 위테(Sergei Witte)는 알렉산더 3세에게 니콜라스에 대한 황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경험을 위해 시베리아철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렉산더 3세는 니콜라스가 아직 젊으니 앞으로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조기교육을 묵살하였다. 그래서인지 니콜라스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사촌들에게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러시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자주 물었다.

 

니콜라스와 헤쎄의 알릭스의 결혼. 1894년

 

니콜라스가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맡았던 공직은 기아구조위원장, 재정위원회 위원, 군사위원회 위원 정도였다. 러시아는 1891-92년 극심한 가뭄으로 흉작이 되어 전국이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기아로 죽어가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 니콜라스가 기아구조의 책임을 맡은 것이 그나마 좋은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보면 니콜라스는 황제로서 준비가 안되었다. 아버지인 알렉산더 3세가 이루어 놓은 커다란 테두리의 정책을 답습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니콜라스와 알릭스(알렉산드라)의 결혼은 1895년 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갑자기 황제로 즉위하게 되자 누군가는 옆에서 자기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하여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결혼식은 1894년 11월 26일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니콜라스는 러시아 경기병 장교의 복장이었으며 알렉산드라(알릭스)는 전통적인 로마노프 신부(新婦)의 드레스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