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니콜라스 황제

노일전쟁의 여파

정준극 2010. 1. 2. 05:13

6. 노일전쟁(Russo-Japanese War)의 여파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분과 러시아의 충돌은 거의 불가피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발칸반도로의 남진정책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자연히 시선을 동쪽으로 돌려 영토를 확장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켜 정착토록 했다. 결국 중국을 비롯한 극동지역에 욕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과 대치하지 않을수 없었다. 노일전쟁은 1904년 일본이 아르투르(Arthur)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함으로서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발틱함대를 급히 동쪽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발트함대는 츠시마(Tsushima: 대마도)해협에서 일본해군에 의해 전멸 당했다. 육지에서는 러시아군이 보급품의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작전명령과 군수물자는 서쪽 끝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동쪽 끝의 아르투르항으로 보내졌다. 유일한 운송수단은 시베리아철도였다. 전장 6천 마일의 철도운송은 수십일이 걸리기도 했다. 더구나 단선 철도였다. 제대로 전투가 이루어질수 없었다. 아르투르항은 9개월이나 저항을 했지만 결국 일본군의 손에 함락되었다. 1905년 중반, 니콜라스는 미국의 중재를 받아 들여 포츠마우스조약을 체결하였다. 노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니콜라스와 가족들. 1904년 노일전쟁이 일어나던 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나스타시아, 알렉세이(예전에는 아들의 장수를 위해 여자 옷을 입혀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왕실에서), 마리아, 어머니 알렉산드라 왕비, 타티아나, 올가(서있는 소녀) 

 

노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사람들은 니콜라스의 전쟁관에 대하여 실망을 금치 못했다. 니콜라스는 순진해서 그런지 또는 무얼 몰라서 그런지 러시아에는 애국심이 충만한 병사들이 있음으로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다고 믿었다. 니콜라스는 러시아의 동쪽 끝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리적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군비를 투입해야 승리할수 있다는 간단한 사항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설마 일본이 대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겠느냐는 신념만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르는 하나님이 맡긴 신성한 직분이므로 하나님께서 러시아를 보호해 주신다고 믿었다. 전쟁이 터지고 러시아군이 계속 패배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는 병사들의 애국심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할 것으로 믿었다. 사람들은 니콜라스의 고집과 무식과 편견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니콜라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겼지만 의외로 사리에 맞지 않는 고집은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백성들은 니콜라스를 바보천치라고 생각했다. 러시아가 계속 전쟁에서 패전하자 니콜라스의 어머니와 독일의 빌헬름 황제는 니콜라스에게 일본과 평화회담을 가지라고 설득했다. 처음에 니콜라스는 평화회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주저했다. 그러다가 발트함대가 일본군에 의해 전멸 당하자 어쩔수 없이 평화회담을 추진토록 했다.

 

일본의 함포사격으로 화염에 싸인 러시아 아서항의 정유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