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니콜라스 황제

차레비치 알렉세이와 요승 라스푸틴

정준극 2010. 1. 2. 05:16

10. 차레비치 알렉세이와 요승 라스푸틴

 

니콜라스 2세의 치하에서는 의회(Duma)와의 갈등, 백성들의 시위, 볼셰비키의 대두 등으로 국내정세가 혼미를 거듭하였다. 그런 중에 로마노프 왕조에 또 하나의 걱정꺼리가 생겼다. 후계자에 대한 문제였다. 알렉산드라 왕비는 니콜라스 2세와의 사이에서 네 딸을 연속으로 두었다. 1895년에 올가를, 1897년에 타티아나를, 1899년에 마리아를, 1901년에 아나스타시아를 생산하였다. 하지만 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들을 낳아야 했다. 드디어 1904년 8월 12일 대망의 아들 알렉세이가 태어났다. 축하의 분위기가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꾸만 병약하여서 정밀진찰을 해 보았더니 혈우병(헤모필리아)의 증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면 멈추지 않는 질병이었다.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질환이었다. 당시 혈우병은 고칠수가 없었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통의 질병이었다. 상처가 나서 피가 조금이라도 흐르면 안된다. 그래서 정말 불면 날라갈까 쥐면 부서질까 걱정을 하며 키웠다.

 

황태자 알렉세이와 어머니 알렉산드라. 1914년.

 

알렉세이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왕비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가 된다.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인자를 지니고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인 스페인과 프러시아 왕가에서도 혈우병이 발견된 것을 보면 알렉산드라도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혈우병은 여자들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으므로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유럽의 여러 왕실에서 혈우병 증세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혈우병은 ‘왕가의 질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알렉산드라 왕비가 낳은 네 딸은 모두 결혼하기 전인 1918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네 딸 중에 누가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왕비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는지 알수 없다. 다만, 하필이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알렉세이에게 혈우병 유전인자가 전해져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니콜라스와 황태자 알렉세이. 1914년. 흑해의 휴양지에서.

 

당시에는 국내외 정세로 인하여 로마노프 왕조의 존립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니콜라스 2세와 알렉산드라 왕비는 아들 알렉세이에게 무서운 혈우병 증세가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다. 후계자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면 가뜩이나 혼미한 정세에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왕족 중에서도 황태자 알렉세이가 어떤 질병에 걸려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무언지 모르지만 심각한 악성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왕비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의 병을 고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러시아에 있는 용하다는 의사들을 초청하여 치료토록 해 보았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알렉산드라 왕비로서 할수 있는 일은 종교의 힘에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성자라고 하는 여러 사람에게 의지하여 보았다. 역시 소용이 없었다. 이때에 자칭 성자인척 하는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등장하였다. 라스푸틴이 몇 사람들의 질병을 기도로서 고쳤다는 소문이 들렸다.

 

1912년 10월의 어느날, 니콜라스를 비롯한 가족들이 현재의 폴란드에 있는 비아로비에차(Bialowieza)와 스팔라(Spala)의 황실 사냥숙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알렉세이가 뜻밖에 큰 부상을 입었다. 알렉세이는 흐르는 피를 멈출수 없어서 거의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니콜라스는 어쩔수 없이 신부들을 불러 마지막 병자성사를 치루게 했다. 1912년 10월 10일이었다. 절망한 왕비는 마지막 수단으로 기도로서 병든 사람을 고쳤다는 라스푸틴에게 연락하였다. 라스푸틴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눈물을 보았고 그대의 기도를 들으셨도다. 슬퍼하지 말지어다. 어린 아이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이 너무 그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알렉세이의 혈우병은 기적적으로 나았다. 알렉세이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회복되었다.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이 성자라는 증거라고 확신했다. 왕비는 하나님이 라스푸틴과 함께 하고 있다고 믿었다. 왕비는 라스푸틴을 궁전으로 초청하여 되도록이면 함께 지내게 하고 극진하게 모셨다. 그로부터 누구든지 라스푸틴에 대하여 비난성 발언을 한다든지 또는 그의 도덕성에 대하여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왕비의 분노를 샀다. 라스푸틴이 알렉산드라 왕비와 니콜라스 2세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아, 못 말리는 모정이여!

 

요승 라스푸틴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모임. 1914년. 이들은 라스푸틴을 성자로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