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니콜라스 황제

커피와 버터는 사치품

정준극 2010. 1. 2. 05:23

16. 커피와 버터는 사치품

 

1917년 2월 봉기가 성공하여 니콜라스가 퇴위하고 케렌스키(Kerensky)가 이끄는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임시정부는 그해 8월 니콜라스와 가족들을 우랄지방의 토볼스크로 피난시켰다. 전국적인 혁명의 기운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로마노프 사람들을 보호해야한다는 구실이었지만 실은 유배나 다름없었다. 니콜라스와 가족들은 토볼스크의 총독관전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달 뿐이었다. 10월에 접어들자 볼셰비키가 정부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니콜라스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레닌의 영향력에 대하여는 계속 과소평가하였다. 다만, 니콜라스가 깨달은 것은 하나 있었다. 자기가 폐위당한 것이 러시아의 앞날에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집밖에서는 니콜라스를 재판에 회부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돌고 있었다. 가족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볼셰비키의 병사들이 니콜라스와 가족들을 밤낮으로 감시하였다. 니콜라스는 견장이 붙어 있는 군복을 입지 못하도록 제지를 당하였다. 병사들은 담장에 니콜라스의 딸들을 겨냥한 외설스런 그림이나 글씨를 써넣고 좋아했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연금되어 지낼 때 땔감을 준비하는 니콜라스 황제와 알렉세이 황태자. 1917년

  

해를 넘겨 1918년이 되었다. 두어달은 별일 없이 지났다. 그러다가 3월 1일부터는 평상시의 식품을 제공하는 대신 군대의 레이션을 배급하였다. 식사 시중을 드는 하인들이나 요리를 돕는 하인들이 필요없게 되었다. 10여명의 하인들이 떠났다. 날이 갈수록 식품배급에 어려워졌다. 커피나 버터는 사치품이어서 아예 포기해야 했다. 가족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자기들을 갇힌 생활에서 구해줄 것으로 믿는 정신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더 곤혹스런 생활을 해야 했다. 그해 4월 말, 니콜라스와 가족들은 예카테린부르크로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육군공병장교였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의 저택인 2층의 이파티에프(Ipatiev) 하우스에 연금되었다. 오늘날 이파티에프 하우스가 있던 자리에는 니콜라스와 가족들이 흘린 피를 기억하여 ‘보혈의 교회’(Church of the Blood)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해 7월 17일 아침에 이들은 볼셰비키의 총탄에 모두 희생되었다. 이들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장면에 대하여 조금 더 설명코자 한다.

 

예카테린부르크의 니콜라스와 가족들이 죽임을 당한 장소에 세워진 '보혈의 교회'. 2007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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