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비엔나 캄머오페라(Kammeroper)

정준극 2010. 1. 2. 11:29

비엔나 캄머오퍼(Wiener Kammeroper) - 실내오페라극장

1구 플라이슈마르크트(Fleischmarkt) 24

비엔나 제4의 오페라하우스

www.wienerkammeroper.at

International Hans Gabor Belvedere Gesangwettbewerb(국제 한스 가보르 벨베데레 성악경연대회 주관)

 

비엔나 캄머오퍼의 솔로오페라 공연. 하이든의 '무인도'(Isola disabitata).

                                                        

캄머오페라는 비엔나 특유의 ‘실내오페라’라고 말할수 있으나 원래의 의미는 1948년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인 한스 가보르(Hans Gabor: 1924-1994)가 창설한 실험적 오페라단(Wiener Opern Studio) 또는 그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장소인 소극장을 말한다. 캄머오페라는 세가지 레퍼토리를 지향하였다. 다른 곳에서 거의 공연하지 않는 바로크 오페라, 비엔나 시민들이 즐겨하는 오페라 부파, 그리고 실험적 성격의 현대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실험적인 공연보다는 실내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개념이 강하여서 1953년부터 '비엔나 오페라 스튜디오'라는 명칭 대신에 ‘비엔나 캄머오페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캄머오페라는 실내악단 스타일의 오페라 공연이라고 보면 된다. 무대 장치도 간단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캄머오페라라는 용어는 비엔나 특유의 소규모 실내오페라를 뜻하는 것이 되었지만 그런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연극으로 보면 소극장 개념이다. [한스 가보르를 기념하여 매년 비엔나에서 벨베데레한스가보르성악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2011년으로 제30회를 맞이했다. 벨베데레한스가보르성악경연대회에는 세계 50여국에서 국내 예선을 마친 약 150-160명의 성악도들이 출전한다. 2011년도 결선은 7월 3일 열렸다.]

 

2011년도 제30회 벨베데레 한스 가보르 국제성악경연대회 입상자. 2등은 한국의 문세훈.

    

캄머오페라단은 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면 어디든지 상관하지 않고 방문하여 공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장을 찾아가서 간단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48년 '비엔나 오페라 스튜디오'로 정식 출범한 이후에는 첫 시즌에 슈베르트링의 뒤편에 있는 콘체르트하우스(로트링거슈트라쎄)의 ‘모차르트 홀’에서 ‘청소년 극장’(Theater der Jugend)이라는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주로 청소년들을 위한 소규모의 오페라/오페레터를 공연했다. 1954년부터는 여름에 쇤브룬궁전의 로코코 극장을 빌려 공연했다. 캄머오페라단은 초창기부터 주로 현대작곡가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면 1956년 보리스 블라허(Boris Blacher)의 The Deluge(대홍수), 해리 버트위슬의 Woman(여인), 조지 앤틸의 Venus in Africa(아프리카의 비너스), 다리우스 미요의 Le pauvre matelot(불쌍한 선원) 등이었다. 물론 오페라 부파, 또는 고전적인 비엔나 오페레타 등도 공연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바로크 오페라를 발굴하여 공연하는 것도 캄머오페라의 역할이었다. 예를 들면 1956년에 무대에 올린 알레싼드로 스칼라티의 Triumph of Honor(명예의 승리), 2010년에 공연된 하이든의 L'isola diabitata(무인도) 등이었다.

 

아리베르트 라이만(Aribert Reimann)의 게슈펜스터소나테(Gespenstersonate: 유령소나타)의 한 장면. 2010년 2월 공연

 

캄머오페라는 전용극장에 대한 꿈을 이루었다. 오스트리아 문교성과 비엔나 시는 만일 캄머오페라가 전용극장을 갖게 되면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땅한 장소가 나타났다. 제1구 인네레 슈타트의 플라이슈마르크트(Fleischmarkt) 24번지/드라헨가쎄의 건물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건물로서 원래는 무도회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그만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용하게도 마땅한 장소를 구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연극을 공연한 일도 있었기 때문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캄머오페라단은 그 장소를 오페라 무대로 개조하였다. 캄머오페라 전용극장이 되어서 처음 공연한 것은 마르티누(Martinu)의 단막오페라인 The Marriage(결혼)이었다. 이어 올란디니(Orlandini)의 The Gambler(도박사: Il marito giocatore), 칼 오르프가 각색한 몬테베르디의 Ariadne's Lament(아리아드네의 탄식)가 공연되었다.

 

비엔나 1구 플라이슈마르크트 24번지와 드라헨가쎄가 만나는 곳에 있는 캄머 오페라의 오디토리움

 

캄머오페라는 작품의 리지널 공연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오스트리아 초연도 여러번 감당함으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1986년에 게오르게 타보리(George Tabori)의 새로운 연출로 레온카발로의 I pagliacci(어릿광대)를 공연한 것은 대단한 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1년후에 베를린 테아터트레펜(Theatertreffen)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캄머오페라의 창설자인 한스 가보르가 오래 동안 맡아왔던 지휘에서 손을 떼었다. 후배에게 지휘봉을 인계하기 위해서였다. 한스 가보르는 캄머오페라의 예술감독과 매니저로 남아 있으면서 그가 1982년에 시작한 ‘국제벨베데레성악경연대회’에 전념하였다. 오늘날 ‘국제벨베데레성악경연대회’는 ‘성악의 월 스트리트’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성악가들을 발굴하고 무대에 소개하는 세계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출연자를 모집하여 참가하고 있다.

 

비엔나 캄머오퍼(실내오페라)극장 입구  

 

캄머오페라는 1983년에 ‘스튜디오 K’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현대작곡가들의 작품을 더욱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톰 존슨,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 루치아노 샤일리(Luciano Chailly), 필립 글라스, 또는 한스 베르너 헨체의 실내오페라가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이때에도 게오르게 타보리의 연출 솜씨가 돋보였다. 다른 나라에서 일부러 비엔나의 캄머오페라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무대연출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달려와서 관람하였다. 캄머오페라는 젊은 층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La Boheme(라 보엠)이나 Carmen(카르멘)과 같은 고전을 록(Rock)음악이라는 현대적인 음악언어로 번역하여 공연하였다.

 

1992년 여름부터 캄머오페라는 쇤브룬궁전의 로마유적지에서 ‘쇤브룬의 모차르트’라는 타이틀로 모차르트의 소규모 오페라를 야외 공연하였다. 몇 년을 그렇게 하였으나 1999년에 문화재관리당국이 로마유적지의 훼손이 우려된다고 하여 ‘쇤브룬의 모차르트’는 중단되었다. 한편, 1994년 비엔나 캄머오페라의 창시자인 한스 가보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루돌프 버거(Rudolf Berger)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2010년에 캄머오페라에서 공연된 하이든의 L'isola diabitata는 하이든이 활동할 당시에 유행했던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1999/2000년 오페라 시즌에 한스 가보르의 미망인인 이사벨라 가보르와 한스 가보르의 친구인 홀거 블레크(Holger Bleck)가 캄머오페라의 운영을 맡았다. 두 사람은 ‘젊은 세대를 위한 오페라’라는 캄머오페라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이들은 ‘국제벨베데레성악경연대회’를 ‘국제한스가보르벨베데레성악경연대회’(International Hans Gabor Belvedere Gesangwettbewerb)로 명칭을 바꾸고 더욱 폭넓은 국제성악경연대회가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캄머오페라는 대극장에서 공연되지 않은 소규모의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으며 또한 잊혀진 오페라를 발굴하여 공연하는 일에도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리하여 비엔나 캄머오페라는 네 개의 큰 기둥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였다. 실내뮤지컬, 바로크 오페라, 현대 뮤지컬극장, 오페라 부파가 그것이다. 비엔나 캄머오페라는 한 시즌에 두 편 이상의 오리지널 공연과 최소 한 편의 오스트리아 초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캄머오페라에서의 공연 안내

 

비엔나 캄머오페라는 2002년의 The Cole Porter Story(콜 포터 이야기)공연을 필두로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작곡가인 레이 레슬리(Ray Leslee)의 뮤지컬 A Good Man(어떤 좋은 사람)의 세계초연은 대단한 갈채를 받은 것이었다. 작곡가인 레이 레슬리가 미국보다도 비엔나에서 더 잘 알려진 것은 2000년에 그의 아카펠라(무반주) 뮤지컬인 Avenue X(애비뉴 X)가 비엔나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후부터였다. 캄머오페라는 2004년으로서 창설 50주년을 맞이하였다. 캄머오페라는 2004/05 시즌에 일련의 바로크 오페라로서 50주년을 자축하였다. 캄머오페라는 존 블로우(John Blow)의 Venus and Adonis(비너스와 아도니스), 그리고 존 게이 및 크리스토프 페푸슈의 The Beggar's Opera(거지 오페라)로서 성공을 거둔 이후 새로운 도전으로서 헨델의 Agrippina(아그리피나)를 무대에 올렸다. ‘아그리피나’는 대성공이었다. 캄머오페라는 이제 바로크라는 새로운 장르에 있어서도 관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캄머오페라의 주류는 역시 현대작품이었다. 2009년 시즌에는 두 편의 현대작품이 각광을 받았다. 원래 TV를 위해 작곡한 조나탄 도우브(Jonathan Dove)의 When She Died: Events following the Death of Diana(그녀가 죽었을 때: 다이아나의 죽음 뒤에 오는 사건들)이 무대에 올려졌고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의 현대적 고전판인 Eight Songs for a Mad King(미친 왕을 위한 여덟 곡의 노래)이 공연되었다.

 

리슨 버트위슬의 Woman에는 신들과 악마들이 등장한다.

 

캄머오페라는 매 시즌 마지막에 오페라 부파를 공연함으로서 이 분야에 대하여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페라 부파의 공연에는 관중들이 함께 즐길수 있도록 연출이 되어 어떤 관중은 복도에서 배를 쥐고 웃느라고 정신을 못 차린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 초연인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뮤지컬 코미디 Moscow, Moscow(모스크바, 모스크바)는 관중들의 대환영을 받은 것이었다.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관중들은 막이 내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대성공은 이탈리아 작곡가인 니노 로타(Nino Rota)의 I due timidi(두 사람의 소심한 사람)이었다. 역시 오스트리아 초연으로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어떤 관객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아예 극장에 남아 있었다. 니노 로타는 6년전에 캄머오페라에서 그의 오페라 The Florentine Straw Hat(플로렌스의 밀짚모자)를 공연한바 있어서 비엔나 관객들에게 친숙한 입장이었다. 오늘날 비엔나 캄머오퍼는 슈타츠오퍼, 폭스오퍼, 테아터 안 데어 빈에 이어 비엔나 제4의 오페라하우스라고 부를 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비엔나 캄머오퍼에서의 '라 보엠' 공연. 왼쪽이 뮤제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