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캐른트너토르극장(Theater am Kärntnertor)

정준극 2010. 1. 7. 17:34

캐른트너토르극장(Theater am Kärntnertor) 또는 캐른트터토르테아터(Kärntnertortheater)

현재의 자허호텔 자리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초연

과거 공식 타이틀은 Kaiserliches und Konigliches Hoftheater zu Wien

               

음악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비엔나의 캐른트너토르극장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의 초연이 이루어졌던 극장이기 때문이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현재의 슈타츠오퍼 바로 뒤편, 자허(Sacher)호텔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 18세기까지 캐른트터토르(성문)가 있었기 때문에 캐른트너토르극장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오늘날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전신이라고까지 말할수 있는 중요한 극장이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

                

18세기에 비엔나에도 오페라의 훈풍이 불 때에 비엔나의 오페라는 거의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의 그늘 아래에 있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도 마찬가지였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1709년에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극단이 운영을 맡아 했다. 오페라 중심의 극장이었지만 연극도 공연했다. 이탈리아극단의 공연이었으므로 독일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연극이었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 연극 공연은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지만 스토리보다는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나마 관심을 끌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당시 왕실의 후원을 받아 건설되었지만 운영은 개인이 했다. 1712년부터 1727년까지는 슈트라니츠키(Stranitzky)가 운영하였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부인이 운영했다. 그러다가 1728년부터는 궁정미술가인 보로시니와 셀리어스가 공동으로 운영했다. 이들은 연극이나 오페라 이외에도 노래, 춤을 도입하여 관객들을 끌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왕실로부터 특혜를 받아 그럭저럭 운영되었다.

              

마리아 테레자 여제가 캐른트너토르극장에 대한 왕실의 특혜를 중지하였다. 대신 시당국으로 하여금 책임지고 운영토록 했다. 그러던중 1761년에 화재가 나서 잿더미가 되었다. 마리아 테레자 여제는 가장 신임하는 건축가인 파카씨(Pacassi)에게 지시하여 새로 건물을 짓도록 했다. 그리하여 1763년 제국궁정극장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로 출범한 캐른트너토르극장은 당분간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발레와 오페라만 치중하였다. 유명한 발레리나인 홰니 아이슬러(Fanny Eissler)가 이름을 떨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한편, 비엔나는 더 규모가 큰 오페라극장이 필요하여 1861-69년에 비엔나궁정오페라(현재의 슈타츠오퍼)를 건설하였다. 이에 따라 캐른트너토르극장의 역할은 미미해져서 결국 1870년에 철거하고 그 자리에 자허호텔을 지었다.

 

캐른트너토르극장 옆에 성문이 보인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1824년 5월 8일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초연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베토벤은 그 전에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오페라 ‘휘델리오’를 초연할 때에 지휘를 맡았으나 청각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으므로 교향곡 제9번을 초연할 때에도 혹시 문제가 생길것 같아 미하엘 움라우프(Michael Umlauf)와 공동으로 지휘토록 하였다. 이 날의 연주는 놀라운 감동을 안겨준 것이었다. 사람들은 베토벤에게 다섯 번이나 기립박수로서 환호하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사람들의 환호 소리를 듣지 못하여 그대로 서 있었다. 독창자인 알토 카롤리네 웅거(Caroline Unger)가 베토벤의 손을 잡고 청중들을 향하게 하였다. 베토벤은 그때서야 사람들이 자기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을 알고 인사를 하였다. 사람들은 베토벤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알고 손수건과 모자를 위로 던지거나 손을 흔들어 치하하였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교향곡 제9번뿐만 아니라 ‘장엄 미사’(Missa Solemnis)의 세 악장, Consecration of the House(봉헌곡)도 함께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의 합창에는 당시 유명했던 두 명의 성악가들이 솔리스트로 출연했다. 소프라노 앙리에트 존타그(Henriette Sontag)와 알토 카롤리네 웅거(Caroline Unger)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의 역사적인 캐른트너토르극장 초연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던 앙리에트 존타그

 

캐른트너토르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진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전성기에는 여러 명의 작곡자들이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젊은 시절의 프란츠 라흐너(Franz Lachner), 페르디난도 파에르(Ferdinando Paer)도 포함된다.

 

- 1753: 요셉 하이든의 코믹 오페라 Der krumme Teufel(절름발이 악마). 악보 분실. 요셉 하이든이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

- 1774: 토비아스 필립(Tobias Philipp)의 연극 Thamos, König in Ägypten(이집트 왕 타모스). 모차르트가 극중 음악을 작곡했다.

- 1787: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5번 C장조 K503

- 1795: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Palmira, regina Di Persia(페르시아여왕 팔미라)

- 1799: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Falstaff(활슈타프). 셰익스피어 원작

- 1799: 페르디난도 파에르(Ferdinando Paer)의 오페라 Camilla(카밀라)

- 1799: 페르디난도 파에르의 오페라 Il morto vivo

- 1800: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Cesare in Farmacusa(파르마쿠사의 시저)

- 1800: 페르디난도 파에르의 오페라 Ginevra degli Almieri

- 1800: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L'Angiolina(안지올리나)

- 1800: 페르디난도 파에르의 오페라 Poche ma buone

- 1801: 페르디난도 파에르의 오페라 Archille(아킬레스)

- 1814: 베토벤의 오페라 Fidelio(휘델리오).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최종 버전. 베토벤 자신이 지휘함.

- 1821: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 Der Erlkönig(마왕)

- 1822: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의 오페라 Libussa(리부세)

 

작곡가 콘라딘 크로이처 기념우표. 바덴 발행

 

- 1823: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Euryanthe(오이리안테)

- 1824: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 1829: 프레데릭 쇼팽의 비엔나 데뷔 피아노 독주회

- 1837: 콘라딘 크로이처의 '그라나다 야영'(Das Nachtlager in Granada) 2차 수정본

- 1842: 도니제티의 오페라 Linda Di Chamounix(샤무니의 린다)

- 1843: 도니제티의 오페라 Maria Di Rohan(로한의 마리아)

- 1844: 칼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Die Heimkehr des Verbannten(추방된 자의 귀향)

- 1845: 도니제티의 오페라 Dom Sebastien(돈 세바스티안. 수정본)

- 1845: 칼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Der Tempelritter(성전기사)

- 1847: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우의 오페라 Martha(마르타)

- 1864: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Die Rheinnixen(Les Fees du Rhin: 라인의 요정)

 

캐르트너토르 극장이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자허 호텔이 들어서 있다. 그 옆에 슈타츠오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