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 오페라극장

뷔덴극장(Theater auf der Wieden)

정준극 2010. 1. 7. 17:44

뷔덴극장(Theater auf der Wieden)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초연

4구 뷔드너 하우프트슈트라쎄(Wiedner Hauptstrasse)에 있던 극장

 

뷔덴극장의 자리에 들어선 파파게노 호텔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뷔덴극장)은 18세기 후반, 당시 비엔나 교외였던 뷔덴(현재의 4구) 구역에 있던 극장이었다. 오늘날 그 자리에는 파파게노호텔이 들어서 있다(뷔드너 하우프트슈트라쎄 23-25).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기념하여서이다. 뷔드너 하우프트슈트라쎄는 ‘뷔덴의 대로’라는 뜻이다. 이 극장에서 에마누엘 쉬카네더의 극단이 1791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모차르트의 지휘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쉬카네더는 ‘마술피리’의 초연에서 파파게노로 직접 출연하였으며 그의 세 아들은 오페라 중의 세 소년으로 출연하였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꼭 10년 후인 1801년에 쉬카네더가 완성한 ‘테아터 안 데어 빈’에는 쉬카네더와 ‘마술피리’의 인연을 기념하여 ‘파파게노토르’(파파게노문)를 설치하였다. 문의 상단 벽감에는 새털로 만든 옷을 입은 파파게노와 세 소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뷔덴극장은 ‘프라이하우스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Freihaus-Theater auf der Wieden), ‘슈타렘버그 프라이하우스 테아터’(Starhemberg Freihaus Theater) 또는 ‘뷔드너테아터’(Wiednertheater)라고 불렀다. 슈타렘버그 프라이하우스라는 배우 겸 극장인이 1787년 창설했기 때문이다. 뷔덴극장은 대중극장으로서 가벼운 코미디, 익살극, 징슈필, 판토마임 등을 공연했다. 뷔덴극장을 건설하게 된 배경은 당시 오페라만을 주로 공연하던 캐른트너토르극장와는 달리 서민적인 공연을 하는 극장이 필요해서였다. 뷔덴극장이 문을 연지 1년 후인 1788년 캐른트너토르극장이 재정상의 문제로 문을 닫게 되었다. 뷔덴극장을 그 덕을 보았다. 특히 1789년부터는 비엔나의 유명한 배우 겸 극작가 겸 바리톤인 에마누엘 쉬카네더의 극단이 뷔덴극장에 소속하게 되자 뷔덴극장은 대중들의 인기를 더욱 받게 되었다. 쉬카네더 극단은 캐른트너토르극장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점 공연한데 비하여 독일적인 오페라, 코미디, 무대장치를 격상한 스펙타클 징슈필을 주로 공연하였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공연하기 전인 1789년 4월과 5월에 쉬카네더 극단은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도주’를 공연하였다. ‘후궁에서의 도주’는 모차르트가 요셉2세 황제의 요청에 의해 작곡한 첫 독일어 오페라이다.

 

쉬카네더 극단은 1789년부터 동화 스타일의 오페라를 주로 공연했다. 대표적인 공연은 Der Stein der Weisen(철학자의 돌)이었다. 모차르트가 이 오페라의 일부 음악을 작곡했다. 쉬카네더의 동화 스타일 오페라(마술오페라) 시리즈는 1791년 9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로서 절정을 이루었다. ‘마술피리’는 대성공이었고 초연 이래 100회 이상이 공연되었다. 뷔덴극장에서의 오페라 공연은 1801년 쉬카네더가 자기의 극장인 ‘테아터 안 데어 빈’을 건축하여 이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후 뷔덴극장은 거주용의 아파트로 모습을 바꾸었고 현재는 파파게노호텔이 차지하고 있다.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에서의 '마술피리' 공연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