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박쥐' 집중탐구

요한 슈트라우스와 박쥐

정준극 2010. 1. 9. 16:09

요한 슈트라우스와 박쥐

 

요한 슈트라우스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남몰래 읽는 기쁨: 오페라 366]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오페라 33편 집중탐구]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굳이 재탕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곳의 [박쥐 집중탐구]에서는 [남몰래 읽는 기쁨]과 [오페라 33편 집중탐구]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자료를 정리하였다. ‘박쥐’를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박쥐’ 일반애호가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며 하는 바람에서이다.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변장한 로잘린데의 '고향의 노래'.

 

[일반사항 복습]

‘박쥐’(Die Fledermaus: The Bat)는 요한 슈트라우스2세가 작곡한 오페레타로서 독일어 대본은 칼 하프너(Karl Haffner)와 리하르트 제네(Richard Genée)가 담당했다. ‘박쥐’는 오페라로 구분할수 있고 오페레타로서 분류할수도 있다. 대체로 비엔나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페라로 구분하며 비엔나에서는 오페레타로 분류한다.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왈츠만 작곡하고 오페레타는 ‘박쥐’ 한 편만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아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무려 14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고 오페라라고 할수 있는 것은 '기사 파즈만'이라는 것 한편이다. 모두 독일어 대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 그의 오페레타 중에서 ‘박쥐’만이 세계적으로 환영을 받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형편이 되었을까? 아마도 '박쥐'의 날개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어떤 오페레타는 대사 부분이 너무나 많으며 내용도 진부한 편이어서 국제무대에서 크게 리바이벌 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처음 완성한 오페레타는 Indigo und die viertig Räuber(인디고와 40인의 도둑)로 1871년이었다. 그 전에 두 편에 걸친 오페레타 시도가 있었지만 미완성이었다. ‘박쥐’는 세 번째 오페레타로서 1874년에 완성했다. 비엔나에서의 초연은 1874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비엔나강변극장)에서였다. 이후 ‘박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레타가 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일람은 다음과 같다. 

 

- 1868: Die lustigen Weiber von Wien(비엔나의 유쾌한 부인네들) - 미완성

- 1871: Romulos(로물로스) - 미완성  

- 1871: Indigo und die viertig Räuber(인디고와 40인의 도둑)

- 1873: Der Karneval in Rom(로마의 카니발)

- 1874: Die Fledermaus(박쥐)

- 1875: Cagliostro in Wien(비엔나의 칼리오스트로)

- 1877: Prinz Methusalem(메투살렘 공자)

- 1878: Blindkuh(눈먼 소)

- 1880: Das Spitzentuch der Königin(왕비의 손수건)

- 1881: Der lusige Krieg(유쾌한 전쟁)

- 1883: Eine Nacht in Venedig(베니스의 하루 밤)

- 1885: Der Zigeunerbaron(집시남작)

- 1886: Der Schelm von Bergen(산의 못된 사람)

- 1887: Simplicus(얼간이)

- 1892: Ritter Pasman(기사 파스만: Ritter Pazman) - 오페라

- 1893: Fürstin Ninetta(니네타 공주)

- 1894: Jabuka(야부카)

- 1895: Waldmeister(산지기)

- 1897: Die Göttin der Vernunft(똑똑한 여신)

- 1899: Wiener Blut(비엔나 기질): Adolf Müller 편곡. 왈츠 Wiener Blut는 1873년에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의 딸인 기젤라 공주(Gisela Louise Marie)와 바바리아의 레오폴드 공자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며 요한 슈트라우스로서는 비엔나 필하모닉과 처음 데뷔한 곡이다.

 


로잘린데와 알프레드. 알프레드는 로질린데의 남편 아이젠슈타인이 출타하고 없자 아이젠슈타인의 가운을 입고 마치 자기가 주인인듯 행세한다. 그러다가 잠시후 들이닥친 프랑크 감옥소장은 알프레드를 아이젠슈타인으로 알고 감옥으로 데려가려하자 로잘린데가 난처헤서 프랑크에게 '그게 아닌데'라고 말한다.

 

[한밤중의 만찬]

‘박쥐’의 오리지널 소스는 독일 극작가인 율리우스 로데리히 베네딕스(Julius Roderich Benedix: 1811-1873)의 극본 Das Gefängnis(감옥소)이다. 또 다른 소스는 프랑스 보데빌(vaudeville: 오늘날의 버라이어티 쇼와 비슷한 공연) 연극에 사용하던 대본으로 앙리 메일락(Henri Meilhac)과 루도빅 알레비(Ludovic Halévy)가 공동으로 작성한 Le reveillon(르 르베이용: 한밤의 만찬)이다. Le reveillon을 칼 하프너(Karl Haffner)가 비엔나에서의 공연을 위해 일반 연극대본으로 번역한 것을 요한 슈트라우스가 읽게 되어 ‘요 놈을 오페레타로 만들면 징 하겠네!’라는 생각으로 작곡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연극의 제목이 Le reveillon(한밤의 만찬)인 것처럼 오리지널 스토리는 온전히 프랑스 사람들의 송구영신 관습이었으며 비엔나 사람들의 관습은 아니었다. 비엔나에서 자정에 다들 모여서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 슈트라우스는 대본가와 협의하여 Le reveillon(한밤의 만찬)을 비엔나 무도회(Wiener Ball)로 바꾸었다. 비엔나 무도회는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게임도 하며 노는 무도회였다. 그리하여 칼 하프너가 번역한 연극대본을 리하르트 제네에게 주어 오페라 대본을 만들도록 하였다. 훗날 리하르트 제네는 원래의 극본에 비엔나 스타일을 가미한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를 많이 추가하여 대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기는 칼 하프너라는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다고 덧 붙였다.

 

'박쥐' 포스터. 배경은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슈테판성당과 카를교회. 가운데에는 작게나마 보티프교회도 보인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영광]

‘테아터 안 데어 빈’(비엔나강변극장)은 옛날에 모차르트와 친분이 있었던 흥행주, 극작가, 배우, 성악가인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1801년에 뜻한바 있어서 비엔나강변극장을 인수하여 재개관한 극장이다. 쉬카네더는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 피리’를 자기의 극단이 소속되어 있는 ‘테아터 아우프 데어 뷔덴’(뷔덴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갖도록 해준 인물이다. 쉬카네더는 ‘마술 피리’의 대본을 썼을뿐 아니라 초연에서 파파게노를 맡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는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하지만 쉬카네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이 설립된지 73년 후에 ‘박쥐’가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박쥐’는 같은 해 11월에 뉴욕의 슈타트 테아터(Stadt Theater)에서 미국 초연되었다. 슈타트 테아터는 뉴욕에 이민 온 독일-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설립한 극장이었다. ‘박쥐’가 독일어로 공연되었기 때문에 슈타트 테아터의 무대에 올려졌다. 런던에서는 비엔나 초연으로부터 2년 후인 1876년 12월 알함브라 극장(Alhambra Theater)에서 영어번역본이 초연되었다. 런던에서 오리지널 독일어 대본에 의한 ‘박쥐’ 공연은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1895년이었다.

 

‘박쥐’를 세계에 전파한 주역은 놀랍게도 구스타브 말러였다. 그는 함부르크, 뮌헨 등지의 오페라극장에서 ‘박쥐’를 공연하면서 코미디에 불과한 ‘박쥐’를 예술적으로 훌륭한 레퍼토리로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비엔나의 대중극장에 머물러 있을 운명이었던 ‘박쥐’를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의 오페라극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탠다드 레퍼토리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의 구정문. 오페라 '박쥐'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초연된 장소. 구정문의 상단에는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파파게노와 세 소년의 모습이 조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출연진의 면모]

1874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의 초연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아이젠슈타인은 일반적으로 테너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바리톤이 맡기도 한다. 이제 주요배역과 초연에서 이들 배역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한 성악가들이 면모를 살펴보자.

 

- 가브리엘 폰 아이젠슈타인(Gabriel von Eisenstein): 테너 야니 치카(Jani Szika)

- 로잘린데(Rosalinde): 소프라노 마리 가이스팅거(Marie Geistinger)

- 아델레(Adele): 소프라노 카롤리네 샤를르-히르슈(Caroline Charles-Hirsch). 일설에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첫번째 부인인 된 헨리에타 트레프즈(Henrietta Treffz). 일명 예티라고 한다.

- 이다(Ida): 소프라노 줄르(Jules)

- 알프레드(Alfred): 테너 한스 뤼디거(Hans Rüdiger)

- 독토르 활케(Dr Falke): 바리톤 페르디난트 레브레헤트(Ferdinand Lebrecht)

- 독토르 블린트(Dr Blind): 테너 칼 마티아스 로트(Carl Matthias Rott)

- 프랑크(Frank): 바리톤 칼 아돌프 프리제(Carl Adolf Friese)

- 올로프스키 공자(Prinz Orlofsky): 메조소프나로 이르마 니팅거(Irma Nittinger)

- 프로슈(Frosch): 대사(스피킹) 역할. 알프레드 슈라이버(Alfred Schreiber)

 

'박쥐'의 초연에서 로잘린데를 맡았던 소프라노 마리 가이스팅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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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스토리 요약

 

제1막. 아이젠슈타인의 아파트. 가브리엘 폰 아이젠슈타인은 공무원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8일간의 구금형을 받았다. 아이젠슈타인의 잘못도 있지만 변호사인 독토르 블린트의 무능에도 이유가 있었다. 아이젠슈타인 집의 하녀인 아델레는 발레단원인 언니로부터 오플로프스키공자의 무도회에 참석하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아델레는 언니의 편지에 마치 숙모가 매우 아프다는 내용이 적힌 것처럼 보이고 주인마님인 로잘린데에게 휴가를 요청한다(아델레: 언니 이다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아이젠슈타인의 친구인 독토르 활케가 무도회 초청을 위해 아이젠슈타인을 찾아온다(듀엣: 나와 함께 저녁이나 먹으러 가세). 아이젠슈타인은 아내 로잘린데와 하녀 아델레에게 마치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작별을 고한후 친구 독토르 활케와 함께 무도회장으로 향한다(4중창: 아이구, 아이구, 정말 미안하네요). 아이젠슈타인은 변호사에게 얘기하여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하루 연기할 생각이다.

 

아이젠슈타인이 떠나자 로잘린데의 옛 애인으로 성악 선생이었던 알프레드가 찾아온다(알프레드의 아리아: 나를 떠난 비둘기). 알프레드는 아이젠슈타인이 없자 주인 행세를 한다. 마침 감옥소장인 프랑크가 아이젠슈타인을 감옥에 데려가려고 찾아온다. 프랑크는 아이젠슈타인의 행세를 하는 알프레드를 대신 데려간다(프랑크: 잊어버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 로잘린데: 나와 단둘이서 너무 늦네요. 프랑크: 나의 아름답고 커다란 새장이여).

 

파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델레

 

제2막. 바드 이슐에 있는 오를로프스키 공자의 여름 별장. 독토르 활케는 오를로프스키 공자의 허락을 받아 그날 밤의 파티를 아이젠슈타인에게 복수하는 기회로 삼기로 한다. 작년 겨울, 아이젠슈타인은 박쥐로 분장하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던 독토를 활케를 마을 한복판에 그대로 놓아두고 사라진 일이 있다. 다음날 아침, 독토르 활케는 지나가던 사람들로부터 조소를 받았다. 독토르 활케는 아이젠슈타인에 대한 복수극의 일환으로 프랑크, 아델레, 로잘린데를 오를로프스키 공자의 파티에 서로 알지 못하게 초청한 것이다. 로잘린데는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가장하였고 아이젠슈타인은 르나르(Renard)후작으로, 감옥소장인 프랑크는 슈발리에 샤그린(Chevalier Chagrin)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었다. 아델레는 배우인척 한다.

 

아델레가 아이젠슈타인을 놀리는 장면(마인 헤르 마르키스)

 

파티가 한창이다. 오를로프스키 공자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오를로프스키: 나는 친구들을 초대하기를 좋아하지요). 아이젠슈타인이 아델레에게 소개된다. 아이젠슈타인은 아델레를 자기집 하녀라고 말했다가 오히려 배우라고 하는 아델레로부터 창피를 당한다(아델레: 존경하는 후작님: 아델레의 웃음의 노래라고도 부름). 활케가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가장한 로잘린데를 아이젠슈타인에게 소개한다(로잘린데: 차르다스: 고향으로부터 들리는 소리). 로잘린데가 자기 아내인줄 모르는 아이젠슈타인은 로잘린데에게 푹 빠진다. 로잘린데는 아이젠슈타인이 아끼는 회중시계를 슬쩍 빼앗는다. 나중에 아이젠슈타인의 행동에 대한 증거물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시계의 듀엣: 나의 눈이 어둠침침해 지네). 파티 참석자들은 샴페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서로 ‘형제여, 자매여’라고 부르기로 한다. 발레와 왈츠가 이어진다. 즐겁고 유쾌한 파티가 진행된다.

 

피날레의 샴펜 송

 

제3막. 감옥소장의 방이다. 간수인 프로슈의 코믹한 연기가 일품이다. 다음날 아침. 아이젠슈타인은 구금형을 살기 위해 감옥을 찾아온다. 그런데 감옥에는 이미 아이젠슈타인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있다. 대신 잡혀온 알프레드였다. 프랑크 소장은 파티에서 만난 르나르 후작이 자기가 진짜 아이젠슈타인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다. 잠시후 여자들이 감옥을 찾아온다. 아델레는 슈발리에 샤그린이 감옥소장인 프랑크인줄 모르고 그를 통해서 배우로 성공하려고 찾아온다(아델레: 내가 순진한 농촌 아가씨 역할을 한다면). 로잘린데는 알프레드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감옥을 찾아온다. 그러다가 파티에서 아이젠슈타인이 자기가 헝가리 백작부인으로 가장한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 농간을 부린 것이라고 믿어서 이혼하리라고 생각한다.

잠시후 독토르 활케가 파티에 왔던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감옥소에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모두 사정을 알게 된다. 아이젠슈타인은 모두가 샴페인 탓으로 돌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오를로프스키 공자는 아델레의 배우 활동을 지원키로 약속한다. 그러나 아이젠슈타인은 예정대로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 모두들 ‘오 박쥐야, 박쥐야, 마침내 그대의 희생물이 도망가도록 했네’라는 합창을 부른다.

 

피날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미국이라서 흑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