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세기의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Franz)

정준극 2010. 1. 20. 22:41

모차르트 주니어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아버지 모차르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모차르트의 재능을 이어 받은 아들 프란츠. 1825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다섯 달 전인 1791년 7월에 비엔나에서 태어난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는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자녀 중에서 막내아들이다. 모차르트의 여섯 명 자녀 중에서 네명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둘째인 칼 토마스 모차르트(1784-1858)와 여섯째인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만이 생존하였다. 보통 F.X. 모차르트 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주니어로 알려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음악가가 되었다. 프란츠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교사였다. 그의 풀 네임에서 프란츠 사버는 모차르트의 친구이며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Franz Xaver Süssmayr)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며 볼프강은 아버지를 존경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쥐쓰마이르는 모차르트의 유작인 진혼곡(레퀴엠)의 마지막 파트를 완성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가 사색이 짙은 모차르트의 지시에 따라 밤을 새우며 진혼곡을 완성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건 영화일 뿐이다.

 

프란츠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음악교육을 받았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후 콘스탄체는 특별히 프란츠를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당대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l)에게 보내어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그후에는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헤츠버거(Johann Georg Albrechtsberger)와 지기스문트 폰 노이콤(Sigismund von Neukomm)에게 보내어 작곡을 배우게 했다. 프란츠는 아버지처럼 어린 시절부터 작곡하기 시작했다. 처음 출판된 곡은 1802년 프란츠가 열 살 때에 작곡한 ‘피아노5중주곡 G 단조 작품번호 1번’이었다. 1805년에는 하이든의 생일을 기념하는 칸타타를 작곡하였으나 악보가 분실되는 바람에 애석하게도 어떤 곡인지 알수 없게 되었다. 프란츠가 피아니스트로서 처음 데뷔한 것은 1805년 4월, 13세 때에 아버지의 친구인 쉬카네더가 운영하는 ‘테아터 안 데아 빈’(빈강변극장)에서 협주곡을 연주한 것이었다. 모두들 모차르트가 살아왔다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객석에서 어린 아들의 연주를 듣고 있던 어머니 콘스탄체의 눈에는 어느덧 안개가 서렸다.

 

프란츠는 전문 음악인이 되어 음악교사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달리 내성적이고 겸손하여 자기를 잘 나타내지 않았다. 프란츠는 자기의 작품이 아버지의 작품과 비교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자기의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1808년 프란츠는 돈을 벌기 위해 렘버그(Lemberg)에 가서 부유한 바보로브스키(Baworowski)백작의 딸들에게 음악 레슨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너무 외진 곳에 거처를 정했기 때문에 보통 날에는 외롭고 쓸쓸한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얼마후 프란츠는 부르슈틴(Burshtyn)이란 도시에 사는 폰 야니체브스키(von Janiszewski)씨의 딸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달라는 청탁을 받아 들여 도시로 나갔다. 그는 도시에서 악단을 조직하여 자기의 작품이나 아버지의 작품을 연주했다. 부르슈틴에서 2년정도 머물다가 다시 렘버그로 가서 저 좋은 환경에서 연주회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거의 20년을 지냈다. 1826년부터 1829년에는 4백명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산타 체칠리아 합창단을 지휘하며 뜻 깊게 보냈다.

 

1820년대에 프란츠는 안톤 디아벨리(Anton Diabelli)이 제시한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작곡하는 50인 작곡가에 포함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1838년 프란츠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음악감독 및 지휘자로 초빙되었다. 프란츠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어 무척 마음이 흡족하였다. 1841년부터는 칼스바드(Karlsbad)에서 지냈다. 훗날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 에른스트 파우어(Ernst Pauer)는 프란츠가 칼스바드에서 가르친 제자였다. 프란츠는 1844년 향년 53세로 칼스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은 칼스바드에 있다. 프란츠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래서 형인 칼과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다. 아마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 그의 수명을 단축한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프란츠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번역하면, “May the name of his father be his epitaph, as his veneration for him was the essence of his life(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비명이 될지어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삶의 에센스였다).”

 

다음은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들이다. 혹시 모차르트의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리고 모차르트의 아들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 한다면 다음 음악을 구하여 감상함이 바람직하다.

 

- 피아노5중주 G 단조 Op 1

- 요셉 하이든 생일 칸타타(분실)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B 장조 Op 7

- 피아노 소타나 G 장조 Op 10

- 플루트와 2개의 혼을 위한 6편의 곡 Op 11

- 피아노협주곡 1번 C 장조 Op 14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타나 F 장조 Op 15

- 피아노를 위한 6곡의 폴로네스 Op 17

- 첼로 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E 장조 Op 19

- 피아노를 위한 폴로네스 4중주 Op 22

- 메울(Mehul)의 로만스에 의한 변주곡 Op 23

-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폴로네스 Op 24

- 피아노협주곡 2번 Eb 장조 Op 25

- 독창자,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 ‘첫 봄날’ Op 28

-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기념상 제막식 축하음악 Op 30

- 신포니아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론도 E 단조

- 피아노 반주가 있는 노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