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

정준극 2010. 1. 22. 08:02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

'그라나다의 야영장'은 반세기 동안 인기

 

콘라딘 크로이처

 

1780년 독일 바덴에 있는 메쓰키르흐(Messkirch)에서 태어나 1849년 리투아니아의 리가(Riga)에서 세상을 떠난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 또는 Kreuzer)는 독일 작곡가이지만 비엔나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크로이처는 오페라 Das Nachtlager in Granada(그라나다의 야영장)와 Der Verschwender(낭비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라나다의 야영장’은 일반적으로 비엔나에서 오페레타 또는 뮤지컬에 대한 취향이 변하는 시대였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50년동안 낭만적인 향취로서 무대를 장악한 작품이었다. ‘그라나다의 야영장’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스타일로 작곡되어 순수한 멜로디가 흘러넘치며 감정이 깊이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크로이처가 작곡한 남성합창곡에서도 그러한 스타일을 발견할수 있다. 당시 크로이처의 남성합창곡은 독일에서 대단히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곡으로는 Das ist der Tag des Herrn(주님의 날)이다. 또한 그의 관악기와 현악기를 위한 6중주(Op 62)는 아직까지도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크로이처는 당초 변호사가 될 요량으로 법률공부를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1804년 음악공부를 위해 비엔나로 갔다. 비엔나에서는 하이든을 만나 지도를 받았다. 일설에는 알브레헤츠버거(Albrechtsberger)의 문하에서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징슈필을 선보였지만 애석하게도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슈투트가르트로 가서(1811-12) 서너편의 오페라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애석하지 않게 성공이었다. 그는 궁정음악감독의 자리를 얻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성공한 그는 비엔나에 다시 돌아와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오페라들은 주로 캐른트너토르극장 등에서 공연되어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당수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오페라였는지 알길이 없다. 그는 1812-16년간 뷔르템버그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으며 다시 비엔나에서 지내다가 1840년에는 쾰른오페라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의 딸인 세실리아 크로이처는 상당히 알려진 성악가였다. 크로이처의 대표적인 오페라는 다음과 같다.

 

- Die Alpenhütte(알프스 산장). 오페라. 1815 슈투트가르트

- Lubussa(리부싸). 낭만적 오페라. 1822. 비엔나 캐른트너토르극장

- Melusina(멜루지나). 낭만적 오페라. 그릴파르처 극본. 1833. 베를린

- Das Nachtlager von Granada(그라나다의 야영장). 낭만적 오페라. 1834. 비엔나 요셉슈타트극장

- Der Verschwender(낭비가).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