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베토벤의 사람들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드비히

정준극 2010. 1. 27. 15:19

베토벤의 가족들

 

할아버지 루드비히 반 베토벤

할머니 마리아 요세파 발

아버지 요한 반 베토벤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네 케베리히

동생 카스파르 안톤 칼 반 베토벤(보통 칼이라고 부름)

       카스파르 칼의 부인 요한나

동생 니콜라우스 요한 반 베토벤(보통 요한이라고 부름)

       니콜라우스 요한의 부인 테레제 반 베토벤

조카 칼 반 베토벤(동생 카스파르 칼의 아들)

       조카며느리 카롤리네 바바라 나스케(칼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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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할아버지 루드비히

본의 궁정음악감독 겸 베이스

 

악성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름이 같음) 

 

베토벤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베토벤과 같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할아버지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1712년에 플란더스(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중간지역)의 말리느(Malines)에서 태어나서 젊은 시절에 가족을 데리고 독일 라인강변의 본(Bonn)으로 와서 살았다. 그리하여 향년 61세로 1773년에 본(Bonn)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이 독립하기 1년전이다. 악성 베토벤의 증조할아버지는 빵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루드비히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잘 불러서 디섯 살 때에 합창학교에 들어가 8년동안 음악을 공부하며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1725년, 13세 때부터는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얼마 후에는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할 정도로 실력이 월장했다. 할아버지는 19세에 루벵(Louvain)이라는 곳에 있는 성피에르(St Pierre)교회 합창지휘자 겸 음악감독에 임명되었다. 그때부터 이미 음악가로서 자기 몫을 다하였던 것이다. 즉, 직업 음악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인 20세부터는 리에즈(Liege)에 있는 성랑베르(St Lambert)교회의 베이스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드비히는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이 공부하여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위해 1733년 21세의 약관의 나이에 플란더스를 떠나 독일로 향하였다. 당시 쾰른과 뮌스터의 선제후 클레멘스 아우구스트가 그러한 청년 루드비히를 눈여겨 보아 이모저모로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얼마후 루드비히는 인근의 본에서 베이스로서 궁정음악가에 임명되었다. 루드비히는 본에 도착한지 얼마후 마리아 요제파 발(Maria Josepha Ball)이라는 관찮은 아가씨를 만나 잠시 연애한 후에 결혼하였다. 마리아 요제파가 우리가 존경하여 마지않는 악성 베토벤의 할머니이다. 루드비히와 마리아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으나 그중에서 아들 요한(Johann)만이 살아남았으니 그가 알콜 중독자로 유명한 베토벤의 아버지이다.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드비히는 본의 궁정에서 인정을 받아 49세 때에 궁정음악감독(카펠마이스터)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본 궁정의 모든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주관하는 책임을 맡았다. 루드비히는 음악 이외에 장사에도 소질이 있어서 부업으로 포도주 판매업을 했다. 그래서인지 루드비히의 부인 마리아, 즉 악성 베토벤의 할머니는 틈만 나면 포도주를 마셔댔다. 결국 마리아는 오호라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얼마후 마리아는 병원에 입원하여 1775년 숨을 거둘 때까지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유일하게 생존한 아들 요한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알콜에 중독되어 말년에는 그저 날이면 날마다 술타령만 마셨다. 루드비히는 177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역할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인 1773년 5월 13일에 선제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회에 출연한 것이었다. 루케시(Luchesi)의 L'Inganno scoperto라는 오페라였다.

 

루드비히의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프란츠 베겔러라는 사람은 루드비히에 대하여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한 체구였으며 눈이 부리부리하여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훌륭한 예술가였다’고 말했다. 루드비히의 모습은 선제후궁정의 화가인 라도(Radoux)가 그린 초상화가 유일하다. 루드비히의 초상화는 베토벤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본의 집에 걸려 있었다. 비엔나 있던 베토벤은 할아버지의 친구인 라두에게 부탁하여 본에 있는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베토벤이 본의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유일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이었다. 베토벤은 할아버지 루드비히의 초상화를 어느 집에서 지내던지 항상 벽에 걸어 놓고 보았다. 루드비히는 베토벤이 세 살 때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베토벤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대단히 귀여워했던 것을 언제나 기억하였다. 베토벤이 가족 중에서 진정으로 좋아하고 따랐던 사람은 할아버지 루드비히 반 베토벤 한사람이었다.

 

본 시내에 있는 포펠스도르프궁전. 쾰른 선제후인 요셉 클레멘스가 거처하던 집이다. 현재는 본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이곳에서 베토벤의 아버지가 테너로 근무했고 베이스인 할아버지는 음악감독까지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