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베토벤의 사람들

베토벤의 조카 칼

정준극 2010. 1. 27. 15:33

베토벤의 조카 칼

어머니의 부도덕한 생활로 베토벤이 양육

칼의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 후사는 없어..

 

베토벤의 유일한 조카 칼(Karl).

 

베토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가족은 조카 칼이었다. 칼 반 베토벤(Karl van Beethoven)은 베토벤의 바로 아래 동생인 카스파르(칼)와 요한나의 아들이다. 칼은 베토벤 가문의 후손으로서는 마지막 인물이다. 왜냐하면 베토벤에게는 3형제가 있었는데 맏형이 우리의 베토벤으로 잘 아는대로 결혼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 다름 동생이 카스파르인데 아들 칼 하나만은 두었고 막내 동생은 요한인데 역시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베토벤의 바로 아래 동생인 카스파르의 아들 칼이 어쨋든 베토벤 가문을 이은 유일한 혈육이라고 할수 있다. 칼의 아버지 카스파르와 어머니 요한나는 1806년 5월 2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칼은 그로부터 넉달 후인 그해 9월 3일에 태어났다. 칼이 카스파르의 진짜 아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당시에는 유전자 감식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친자확인을 하지 못했다. ‘불멸의 연인’(The Immortal Beloved)이라는 영화를 보면 칼이 마치 베토벤의 친아들인 것처럼 그려놓았으나 그건 영화일 뿐이다. 베토벤은 칼도 van Beethoven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으므로 음악가로서 가문의 명예를 칼을 통하여 지키려 했다. 다시 말해서 칼을 음악가로서 만들고 싶어 했다. 베토벤은 동생의 부인인 요한나가 대단히 부도덕하고 사악한 여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토벤은 동생인 카스파르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자 조카 칼을 못된 생모인 요한나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 우여곡절의 법정 투쟁 끝에 마침내 칼의 후견인이 되었다. 베토벤이 칼의 양육권을 놓고 몇 년에 걸쳐 요한나와 끈질긴 투쟁을 한 것도 베토벤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칼을 보호하고 제대로 양육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간혹 베토벤은 조카 칼에게 자기를 아버지로 받아들이라고 간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칼에 대한 베토벤의 집념 내지 열정은 보통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후세에 이상한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즉, 칼이 동생의 아들이 아니라 바로 베토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었다.

 

칼에 대한 양육권 소송은 칼이 10세 때부터 시작하여 14세가 될 때까지 계속되는 지겨운 것이었다. 베토벤은 때로 법정에 가서 몇 시간씩 증언을 해야 했다. 주로 어머니 요한나의 부도덕한 생활에 대하여 증언을 하고 그러므로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했다. 삼촌이 어머니를 못된 여자라고 주장하면 주장할 수록 감수성이 예민하던 때의 칼은 정서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칼은 아홉 살 때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칼은 삼촌인 베토벤의 고집과 괴팍한 성격을 지켜보아야 했다. 칼은 어머니의 변덕스럽고 부도덕한 생활을 목격해야 했고 삼촌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어찌 보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고통과 갈들을 겪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소송에서 칼의 양육권을 획득한 베토벤은 칼이 어머니 요한나를 만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소년 칼은 베토벤의 말을 무시하고 종종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어떤 때는 베토벤이 경찰을 불러 어머니 집에 있는 칼을 강제로 데려온 일도 있다.

 

베토벤은 칼이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는 안입고 안 먹으면서 칼을 돈 많이 드는 유명한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칼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학을 당했다. 베토벤은 칼을 다른 사립학교에 보냈다. 베토벤은 기본적으로 칼이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토벤은 자기의 아버지도 음악가였고 자기도 음악가이므로 다음 세대인 칼도 음악가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칼은 1824년 비엔나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얼마동안 베토벤과 함께 살았다. 칼은 비엔나대학교에 어렵게 입학했는데 베토벤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에 가겠다고 말했다. 베토벤은 몹시 화를 내며 말렸다. 1826년,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에, 칼은 자기의 감정을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성격이 되었다. 칼은 자살할 생각으로 피스톨을 샀다. 셋집 주인이 피스톨을 발견하고 베토벤에게 칼이 피스톨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베토벤이 칼의 피스톨을 찾아서 감추었다.

 

그해 7월, 칼은 시계를 전당잡히고 다른 피스톨을 샀다. 그리고 삼촌인 베토벤이 숨겨 두었던 피스톨을 찾아서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요양차 비엔나 근교의 바덴(Baden bei Wien)에 가서 지내고 있었다. 칼도 함께 갔다. 두 사람은 간혹 바덴의 고성인 라우엔슈타인으로 산책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칼은 두 자루의 피스톨을 가지고 라우엔슈타인 폐허에 올라가 피스톨을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총알이 빗나가서 죽음을 면했다. 칼은 두 번째 피스톨을 들고 역시 자기 머리에 대고 쏘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자놀이에 약간의 상처만 주고 끝났다. 며칠후 칼은 자살미수자로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칼은 병원에서 종교교육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그후 병원에서 나온 칼은 다시 베토벤과 함께 지냈다.

 

몇 달 후인 1827년 1월 2일, 칼은 마침내 군대에 들어갔다. 보헤미아의 이글라우(Iglau)에 있는 부대로 배속되었다. 이때쯤하여 베토벤의 건강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한 처지에 칼의 입대는 베토벤에게 말할수 없는 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칼은 비엔나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저 멀리 보헤미아의 부대로 가게 되었으므로 베토벤으로서는 사랑하는 조카 칼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중병에 걸려 있었다. 칼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칼로서는 비엔나에서 삼촌인 베토벤과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속박당하는 것 같아서 일상에서 탈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후 베토벤은 생전에 칼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칼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비엔나에 오려고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베토벤의 서거 소식을 들은 칼은 그날로 보헤미아를 떠났지만 당시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장례식을 치룬지 3일후에야 비엔나에 도착했다.

 

칼의 아들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루이스 폰 호벤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는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베토벤 가문은 여기에서 막을 내렸다.

 

그후 칼은 어떻게 되었는가? 칼은 5년동안 오스트리아제국의 군대에서 지내다가 1832년 제대하였고 그 해에 카롤리네 나스케(Karoline Barbara Naske)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4녀 1남을 두었다. 칼은 외아들의 이름을 삼촌의 이름과 같은 루드비히(Ludwig)로 지었다. 칼은 다행히 베토벤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어렵지 않게 살수 있었다. 사람들은 베토벤이 비엔나에서 살 때에 딱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했다고 믿고 있지만 베토벤의 성격으로 보아서 습관상 대단히 검소하게 살았던 것이며 실은 작곡료 등을 받아 어느정도 재산을 모아 두었다고 한다. 그 재산을 칼이 모두 물려 받았던 것이다. 칼은 52세까지 살다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인 카롤리네는 칼보다 33년을 더 살았다. 칼의 외아들인 루드비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는 루이스 폰 호벤(Louis von Hoven)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살았다. 반 베토벤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아니, 저 유명한 베토벤의 유일한 후손이라고? 와, 대단하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을 것 같아서 루드비히 폰 호펜으로 고친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디트로이트에 있는 미쉬간중앙철도회사(Michigan Central Railroad Co.)에 다녔다. 루드비히는 미국에서 피아니스트인 마리아 니체(Maria Nitshe)와 결혼하여 아들 칼 율리우스(Karl Julius)를 두었다. 그러나 칼 율리우스도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베토벤의 가문은 미국에서 칼 율리우스에 의해 막을 내렸다. 모차르트도 두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바람에 후대가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가계도 결국은 미국까지 와서 끊어졌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칼의 유일한 초상화는 그가 군대에 있을때 군복을 입은 모습의 미니에이쳐이다. 자살을 기도할 때 입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 머리를 이마 위로 길게 늘어트렸다. 칼은 여성적인 얼굴이며 예민하게 생겼다. 눈은 검고 컸으며 입술은 두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