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정준극 2010. 1. 30. 10:33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억압받고 비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인간애의 낭만적 음악 창조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적 작품 만들어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사항은 본 블로그의 여러 군데에 설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베르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는 것은 다시 쓰고, 다시 읽어도 감회가 새롭기 때문이다. 실상 베르디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자료는 무수하다. 그러나 그건 그것이다. 온전히 나의 자료로 만들어 놓기 위해서는 직접 다시 정리하고 복습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디의 생애와 작품을 간추려 보았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나 합창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나온다. 가슴이 찡하도록 저며 올 때도 있다. 평범한 멜로디인것 같으면서도 놀라운 감동을 준다. 과연 베르디는 베르디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바리톤으로 활동하고 있는 막역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때 오페라 아리아에 대한 작은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바야흐로 오페라에 심취하기 시작한 때여서 도니제티나 벨리니의 아리아가 가장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친구는 ‘모르는 소리 작작 해라! 베르디가 제일이다’라고 단숨에 말하였다. 그로부터 이제야 겨우 베르디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886년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베르디 초상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베르디의 풀 네임은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이다. 이름이 길어서 다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주세페라는 첫 이름만 기억해도 다행이다. 주세페 베르디를 영어식으로 Joe Green 또는 Joseph Green 이라고 억지로 번역하여 쓰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위대한 베르디 선생에 대하여 무례를 범하는 것이다. 베르디는 1813년 10월 9일에 태어나서 1901년 1월 27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10월 10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기왕이면 우리나라 한글날인 10월 9일에 태어났다는 자료가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나저나 1813년이면 저 유명한 나폴레옹이 모스코바에서 동장군에 밀려 막대한 손실을 겪으면서 후퇴한 해의 바로 다음 해이다. 차이코브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어보면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이 제정러시아의 곰 같이 우직한 끈기에 밀려 패전한 내용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나폴레옹이 밀려난 이후 유럽은 저마다 세력을 잡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맹주자리를 위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춤을 추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클레멘스 메테르니히 수상이 활동하던 때가 바로 이 시기였으며 '회의는 춤춘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 것도 이 때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베르디가 태어났다. 19세기의 유럽정세에 대하여 논란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이쯤해서 마무리한다.

 

르 론콜레 마을(현재는 론콜레 베르디)

 

베르디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실은 프랑스 국적으로 태어났다. 베르디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은 르 론콜이다. 프랑스 스타일의 마을 이름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르 론콜이 속해 있는 파르마 공국이 당시에 프랑스의 지배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파르마 공국의 백성들은 모두 프랑스 국적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프랑스가 물러가고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자 베르디의 국적도 당연히 이탈리아가 되었다.

 

르 론콜레(론콜레 베르디)에 있는 베르디의 생가

 

베르디가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가 태어난 해인 1813년에 태어나서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 대단히 관심을 끄는 사항이다. 다만, 바그너는 1883년에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베르디는 1901년에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그너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잘 아는 대로 베르디와 바그너는 1813년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미안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했다. 바그너는 독일을 중심으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베르디는 이탈리아에서 감히 누구도 도전할수 없는 정상에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 만난 일이 한번도 없다. 베르디는 바그너에 대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만 골라서 작곡한다. 그건 합당하지 않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그들을 자유스럽게 만드는 것도 작곡가로서의 책임이다. 그런데 보라! 바그너는 무슨 신화에만 얽매여 있다. 결국은 독일국민이 우수하다는 것을 선전코자 하는 일이다. 그는 자꾸만 지나온 길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작곡가였다. 베르디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호라 슬프도다. 그는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잊지 못할 가장 위대한 이름을 남겼도다’라면서 애석해 하였다. 한편, 베르디에 대한 바그너의 코멘트는 한 가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바그너는 베르디의 진혼곡을 들은후에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베르디와 같은 해에 태어났으나 베르디보다 18년이나 먼저 세상을 떠난 리하르트 바그너. 두 사람은 서로를 은근히 무시하면서도 존경했다.

 

베르디는 음악사적으로 볼때 이른바 낭만파에 속한다. 낭만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여인과의 로맨스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넓게 펼치는 하나의 문예사조이다. 다 아는 사항이겠지만, 여기서 잠시 18-19세기에 낭만주의 음악가로서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미상불 음악공부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명단을 연령별로 적어 보았다. 베르디는 생전에 2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어떤 사람은 70편, 80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도 있는데 고작 28편만 작곡한 베르디를 오페라의 황제니 뭐니 하면서 떠받들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오페라의 작품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면 또 ‘아니, 어떤 작품은 형편없고 어떤 작품은 형편이 있다고 어떻게 말할수 있겠는가?’라며 이의를 제기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베르디의 작품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하므로 그렇게 알고 ‘오페라의 황제’라고 칭하는데 대하여 이의를 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론콜레(현재의 론콜레 베르디)마을의 산 미켈레 교회. 1814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이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포 계곡에 있는 르 론콜 마을에도 진격해 왔다. 마을의 여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산 미켈레 아르칸젤로 교회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은 교회 안으로 처들어와서 부인네들이건 어린이들이건 모두 학살하였다. 다만, 종탑으로 기어 올라가서 숨어 있던 어떤 엄마와 어린 아이 하나만은 살았다. 그 아이가 주세페 베르디였다.

 

[낭만주의 작곡가 일람]

 

1763-1817    Etienne Mehul(Romantic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

1770-1782    Ludwig van Beethoven(독일/오스트리아)

1782-1837    John Field(아일랜드)

1782-1840    Niccolo Paganini(이탈리아)

1782-1871    Daniel Auber(프랑스)

1785-1849    Friedrich Kalkbrenner(독일)

1786-1826    Carl Maria von Weber(독일)

1791-1864    Giacomo Meyerbeer(프랑스)

1792-1868    Giachino Rossini(이탈리아)

1794-1870    Ignaz Moscheles(보헤미아)

1795-1861    Heinrich Marschner(독일)

1796-1868    Franz Berwald(스웨덴)

1796-1869    Johann Carl Gottfried Loewe(독일)

1797-1828    Franz Schubert(오스트리아)

1797-1848    Gaetano Donizetti(이탈리아)

1799-1862    Fromental Halevy(프랑스)

1801-1835    Vincenzo Bellini(이탈리아)

1803-1869    Hector Berlioz(프랑스)

1804-1857    Mikhail Glinka(러시아)

1809-1847    Felix Mendelssohn(독일)

1810-1856    Robert Schumann(독일)

1810-1849    Frederic Chopin(폴란드)

1811-1886    Franz Liszt(헝가리) 

1813-1888   Charles-Valentin Alkan(프랑스)

1813-1883   Richard Wagner(독일)

1813-1901   Giuseppe Verdi(이탈리아)

1818-1876   Felicien-Cesar David(프랑스)

1822-1890   Cesar Franck(벨기에/프랑스) 

 

VIVA VERDI라고 쓰는 시민들

                           

공연히 이야기가 낭만주의 때문에 잠시 곁길로 빠졌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다시 베르디로 돌아가면, 베르디의 오페라는 세월을 초월하여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2013년이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게 되지만 그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끈임 없이 공연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세계 어느 곳의 연주회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되어 있다. 리골레토에서 La donna e mobile, 나부코에서 Va, pensiero(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라 트라비아타에서 Libiamo ne'lieti calici(축배의 노래), 아이다에서 Triumphal March(개선행진곡) 등은 삼척동자들도 흥얼거릴 줄 아는 곡목들이다. 혹가다가 평론가라는 어떤 사람들은 베르디의 작품이 지나치게 손수건을 꺼내게 만드는 멜로드라마적이라고 말하지만 손수건을 쓰던 클리넥스를 쓰던 그런 것은 관계가 없다. 감동을 주는 음악, 감동을 주는 스토리이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부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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