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아이다의 개선

정준극 2010. 1. 30. 10:37

아이다의 개선

 

바그너와 베르디

 

라 스칼라에서 아이다를 지휘하는 베르디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인 아이다(Aida)는 1869년 개통된 수에즈운하를 기념하여 작곡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이로오페라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 청탁을 받은 것이었다. 베르디는 이집트의 케다이브(Khedive: 터키가 파견한 이집트 총독)가 수에즈운하의 개통에 즈음하여 완성된 카이로오페라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베르디는 무슨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오페라를 작곡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실제로 카이로오페라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는 리골레토가 공연되었다. 이듬해인 1870년, 케다이브는 베르디에게 다시 접근하여 대본을 제공할테니 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르디는 이 제안도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케다이브 측은 그렇다면 어쩔수 없이 프랑스의 샤를르 구노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구노의 오페라가 완성되면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제작과 지휘를 부탁할 요량이라고 귀띰해 주었다. 이에 약간의 자극을 받은 베르디는 ‘그렇다면 어디 한번 준비했다는 대본이나 봅시다’라면서 관심을 보였다. 베르디도 인간인지라 약간의 질투심이 있었다. 더구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바그너라고 하는 사람을 은근히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바그너는 베르디와 동갑이다. 그해 6월 캐다이브와 베르디간에 계약이 체결되었고 그리하여 '아이다'가 탄생하게 되었다. 케다이브는 베르디에게 '아이다'의 작곡료로서 막대한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5만 프랑을 제시했다. 아마 현재의 돈으로 환산한다면 약 20억원이 되었을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베르디는 그 돈으로 무주택 노음악가들을 위한 양노원 격인 카사 베르디를 설립하였다.

 

아이다와 아모나스로의 만남. 비올레타 우르마나.

 

레퀴엠의 초연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던 테레사 슈톨츠는 아이다의 초연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았다. 사실상 베르디는 테레사 슈톨츠를 염두에 두고 아이다를 작곡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아이다는 1871년 카이로에서 세계 초연되었다. 그런데 테레사 슈톨츠는 사정상 카이로의 초연에 출연하지 못했다. 대신, 이듬해인 1872년 2월, 밀라노에서의 유럽 초연에서는 아이다를 맡아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테레사 슈톨츠는 베르디의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였다. 어느덧 베르디와 슈톨츠 사이에 로맨스가 한창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렇다고 해도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톨츠는 베르디의 두 번째 부인인 스트레포니가 세상을 떠난후 베르디의 친구로서 베르디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깝게 지냈다.

 

베르디의 '레퀴엠' 음반. 조앤 서덜랜드, 매릴린 혼, 루치아노 파바로티, 탈벨라가 솔로 파트를 맡았으며 거장 게오르그 솔티가 빈 필을 지휘했다.

 

바그너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잘 아는 대로 베르디와 바그너는 1813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했다. 바그너는 독일을 중심으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베르디는 이탈리아에서 감히 누구도 도전할수 없는 정상에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 만난 일이 한번도 없다. 베르디는 바그너에 대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만 골라서 작곡한다. 그건 합당하지 않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그들을 자유스럽게 만드는 것도 작곡가로서의 책임이다. 그런데 보라! 바그너는 무슨 신화에만 얽매여 있다. 결국은 독일국민이 우수하다는 것을 선전코자 하는 일이다. 그는 자꾸만 지나온 길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작곡가였다. 베르디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호라 슬프도다. 그는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잊지 못할 가장 강력한 이름을 남겼도다’라면서 애석해 하였다. 한편, 베르디에 대한 바그너의 코멘트는 한 가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바그너는 베르디의 진혼곡을 들은후에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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