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베르디의 음악스타일

정준극 2010. 1. 30. 10:42

베르디의 음악스타일

 

베르디는 어떤 작곡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까? 베르디의 대부분 오페라들은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마이에르베르, 사베이로 메르카단테(Saveiro Mercadante)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도니제티로부의 영향이 컸다. 베르디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혹자는 오텔로는 예외라는 것이 중론이다. 베르디 당시의 사람들은 샤를르 구노를 위대한 작곡가로 인정하여 존경하였다. 하지만 베르디는 구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아이다는 러시아의 미하일 글링카의 작품과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랜드 오페라적인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당시만해도 러시아의 오페라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프란츠 리스트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러시아 음악을 널리 소개함으로서 여러 작곡가들이 러시아 음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베르디도 그 때에 글링카의 작품을 대하여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베르디가 아이다 작곡으로 번 돈으로 마련한 '음악인의 집'(카사 베르디)

 

오늘날 테너 아리아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하이 C를 낼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베르디는 아리아에 하이 C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베르디는 만일 주인공이 하이 C를 부르도록 되어 있다면 그것에 정신이 팔려서 앞뒤로 다른 파트는 소홀히 할것이므로 그건 곤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몇 번에 걸쳐 하이 C를 부르도록 주선했다. ‘예루살렘’에서 뒤프레(Duprez)와 ‘운명의 힘’에서 탐버리크(Tamberlick)에게 하이 C를 주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만리코가 Di quella pira(타오르는 불꽃을 보라)에서 하이 C를 드높이 부르지만 원래의 악보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나중에 테너들이 박수를 받고 싶어서 하이C를 넣었다는 것이다. 리골레토의 La donna e mobile(여자의 마음)에서도 하이 C는 그저 잠시만 나오도록 되어 있으나 테너들은 자기의 고음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아드 리비툼(ad libitum)으로 추가로 넣고 있다고 한다.

 

베르디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거장답게 훌륭하다. 하지만 베르디는 멜로디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음악 표현의 궁극적인 도구로 이용하였다. 그의 아리아를 들어보면 잘 알수 있다. 하모니는 심미적이며 전체 오케스트라는 아리아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반주악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기타로 노래에 코드를 넣는 것과 같다.

 

오페라 '아이다'의 개선장면.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감격적인 만남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베르디가 작곡의 기본적이 기법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도 베르디가 정식으로 작곡공부를 하지 못한 것을 빗대어서 얘기한 것 같다. 이에 대하여 베르디는 ‘그렇습니다. 나야 말로 모든 작곡가들에 비하여 배운 것이 아주 적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어 ‘하지만 많이 공부했다고 해서 음악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덧 붙여 말했다. 그렇지만 베르디가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표현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말은 온당치 않다. 베르디야 말로 오케스트라를 통한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리골레토에서 몬테로네백작의 장면을 보면 알수 있다. 현악기는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그후 무대 뒤에서의 허밍 합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또한 베르디는 오페라의 극적인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마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대본가와 밀접하게 작업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필요한 부분, 과장된 부분을 과감히 떨쳐 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복습하는 셈치고 베르디의 오페라를 연도별로 정리해보자. 일반적으로 1851년 이후의 작품들이 오늘날 세계의 오페라극장들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다.  

 

1839. 11. 17          Oberto(오베르토)

1840. 9. 5             Un giorno di regno(왕궁의 하루)

1842. 3. 9             Nabucco(나부코)

1843. 2. 11            I Lombardo alla prima crociata(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

1844. 3. 9             Ernani(에르나니)

1844. 11. 3           I due Foscari(두 사람의 포스카리)

1845. 2. 15           Giovanna d'Arco(조반나 다르코: 잔다크)

1845. 8. 12           Alzira(알지라)

1846. 3. 17           Attila(아틸라)

1847. 3. 14           Macbeth(막베스)

1847. 7. 22           I masnadieri(군도)

1847. 11. 26         Jerusalem(예루살렘) -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을 수정

1848. 10. 25         Il corsaro(해적)

1849. 1. 27          La battaglia di Legnano(레냐뇨 전투)

1849. 12. 8          Luisa Miller(루이자 밀러)

1850. 11. 16        Stiffelio(슈티펠리오) 

1851. 3. 11          Rigoletto(리골레토)

1853. 1. 19          Il trovatore(일 트로바토레: 음유시인)

1853. 3. 6            La traviata(라 트라비아타)

1855. 6. 13          Les vepres siciliennes(시실리의 만종)

1857. 3. 12          Simon Bocanegra(시몬 보카네그라)

1859. 2. 17          Un ballo in maschera(가면무도회)

1862. 11. 10         La forza del destino(운명의 힘)

1867. 3. 11          Don Carlos(돈 카를로스)

1871. 12. 24        Aida(아이다)

1887. 2. 5           Otello(오텔로)

1893. 2. 9           Falstaff(활슈타프)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인 '활슈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