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참고자료 1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정준극 2010. 1. 30. 10:46

참고자료 1

베르디의 두 번째 부인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나부코의 세계초연에서 아비가일의 이미지 창조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1840년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는 18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유명하지만 그보다도 베르디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더 유명하다. 베르디는 사랑하는 부인 마르게리타를 결혼한지 4년만에 저 세상으로 보낸 후 너무나도 상심하여 그로부터 거의 20년 동안 순애보적인 독신으로 지내다가 1859년에 뜻한바 있어서 지난 몇 년 동안 동반자로 지내던 주세피나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말년을 함께 행복하게 지냈다. 주세피나는 베르디와 정식으로 결혼한후 38년동안 동고동락하다가 1897년에 요단강을 건너갔으며 베르디는 그후 4년을 더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아 떠났다.

 

주세피나는 1815년 롬바르디의 로디(Lodi)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러고 보면 베르디가 1813년에 태어났으므로 베르디보다 고작 2살 연하이다. 주세피나의 아버지인 펠리치아노 스트레포니(1797-1832)는 로디시의 몬자(Monza)대성당의 오르간주자였으며 오페라도 작곡하여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주세피나는 레슨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7세때에 아버지가 뇌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주세피나는 청운의 뜻을 품고 밀라노로 진출하여 밀라노음악원에서 노래와 피아노를 공부했다. 주세피나는 재능이 뛰어나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졸업할 때에는 음악원에서 벨칸토로서 1등상을 받았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나부코'의 악보를 들고 있다.

 

주세피나가 직업 성악가로서 처음 데뷔한 것은 밀라노음악원을 졸업한 해의 12월에 밀라노의 오르페오극장에서 루이지 리치(Luigi Ricci)의 오페라 Chiara Di Rosembergh(로젬버그의 키아라)에서 아드리아를 맡은 것이었다. 그후 몇번을 더 오페라에 출연하다가 주역으로서 첫 성공을 거둔 것은 이듬해 봄 트리에스테의 그랜드극장에서 로시니의 Matilde Di Shabran(샤브란의 마틸데)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트리에스테에서의 성공으로 주세피나는 하루아침에 정상급 소프라노가 되어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주세피나의 가족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제 주세피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명실공히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1835년, 20세의 매력적인 아가씨인 주세피나는 비엔나의 초청을 받아 캐른트너토르극장에서 노르마의 아달지사와 몽유병자의 아미나를 맡아 대호평을 받았다. 이후 주세피나는 계속 오페라 출연을 했지만 이탈리아 이외의 무대에 선것은 이때 비엔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런 모습도...

 

비엔나에 1년동안 머물다가 이듬해에 이탈리아로 돌아온 주세피나는 별로 할일도 없었는지 테너 나폴레오네 모리아니와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결과, 주세피나는 나중에 두 명의 사생아를 낳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결혼식은 왜 올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폴레오네와 주세피나는 1830년대와 40년대에 같은 무대에 자주 출연하였다. 1836년에 주세피나가 출연한 주요 오페라로는 로시니의 La gazza ladrad(도둑까치)에서 니네타, 벨리니의 I puritani(청교도)에서 엘비라, 로시니의 La Cenerentola(신데렐라)에서 타이틀 롤 등이었다. 주로 베니스의 라 페니체극장에 출연하였다. 다음해인 1837년에는 I puritani(청교도)에서 엘비라를 다시 불렀고 도니제티의 Marino Faliero(마리노 팔리에로)에서 엘레나, 역시 도니제티의 Lucia Di Lammermoor(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주로 볼로냐의 시리극장의 무대에 섰다. 1838년에는 도니제티의 Maria Di Rudenz(루덴츠의 마리아)에서 타이틀 롤, 벨리니의 Beatrice Di Tenda(텐다의 베아트리체)에서 타이틀 롤, 카를로 코치아(Carlo Coccia)의 Caterina Di Guisa(지우사의 카테리나)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이처럼 주세피나는 주로 벨칸토 오페라에 출연하여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런 모습도

 

라 스칼라 데뷔는 1939년이었다. 신인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Oberto(오베르토)에서 주인공인 레오노라를 맡은 안토니에타 마리니-라이니에리(Antonietta Marini-Rainieri)가 초연의 무대에서 지나치게 실수를 하여 교체키로 하는 중에 주세피나를 선정한 것이다. 주세피나의 레오노라 역할은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하며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Oberto도 호평을 받았다. 이후, 주세피나는 라 스칼라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역할은 메르카단테의 Il giuramento(지우라멘토)에서 엘라이사, 도니제티의 L'elisir d'amore(사랑의 묘약)에서 아디나, 루이지 리치의 Un'avventura Di Scaramuccia(스카라무슈의 모험)에서 산드리나 등이었다. 주세피나는 1840년대 중반까지도 정상급 소프라노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도니제티는 주세피나를 위해 Adelina(아델리나)를 작곡하였다. Adelina는 1841년 로마의 아폴로극장에서 주세피나가 타이틀 롤을 맡아 초연되었다. 주세피나의 이름을 정상에 올려 놓은 것은 1842년 라 스칼라에서의 나부코 초연이었다. 주세피나는 아비가일을 맡아 갈채를 받았다. 이후 주세피나는 아비가일로서 이탈리아의 여러 극장의 초청을 받았다. 이어 1843년에는 도니제티의 Roberto Devereux(로베르토 드브러)에서 일레사베타, 벨리나의 Il pirata에서 이모제네, 벨리니의 노르마에서 타이틀 롤, 베르디의 Un giorno di regno(왕궁의 하루)에서 마르케사 델 포지오, 조반니 파치니의 Saffo(사포)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1878년

 

1844년쯤부터 주세피나는 목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무대에 출연하느라고 무리해서였다. 1844년은 그럭저럭 보냈지만 이듬해에는 정말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팔레르모에서 공연할 때에는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그런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음성은 회복되지 않았다. 여러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어쩔수 없는 경우에만 간간히 무대에 섰다. 주세피나는 결국 1846년 2월 무대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주세피나가 고작 31세때였다.  Ernani(에르나니)에서 엘비라, I due Foscari(구 사람의 포스카리)에서 루크레지아 콘타리니를 맡은 것은 그나마 후회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주세피나는 한창 때에 베르디의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던 관계로 베르디와 친밀하게 지낼수 있었다. 무대에서 은퇴한 주세피나는 파리로 거처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간단한 오페라에 출연하며 소일했다. 갑자기 웬 파리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밀라노는 오래동안 프랑스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선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도 큰 걱정이 아니었다. 파리에 온 주세피나는 그해 말에 파리의 코미디-이탈리아극장에서 마지막 출연을 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그런 이후에는 양심상 다시는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았다.

 

말년의 베르디와 주세피나(애칭 페피나). 토스카나 지방에서.

 

이때 우리의 베르디 선생이 1847년에 파리에 왔다. 베르디의 파리 방문 목적은? 솔직히 말해서 주세피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다. 그로부터 베르디와 주세피나는 12년에 걸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법적인 문제도 있으므로 결혼식을 올리고 살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결혼식은 1859년 제네바에서 올렸다. 이때 베르디는 이미 국제적으로 상당히 존경받는 저명인사였다. 그런 양반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문이 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봉투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베르디는 그걸 피하여 제네바로 가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주세피나는 착한 아내로서 베르디를 보살피며 행복하게 살다가 1897년 향년 82세로 산타가타(Sant'Agata)의 빌라 베르디에서 하늘나라로 떠났다. 베르디는 주세피나가 세상을 떠난 이후 '늙은 나이에는 절대로 혼자 살지 못한다'는 옛 속담에 따라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소프라노 테레사 슈톨츠와 함께 지냈다. 슈톨츠는 4년후 베르디가 세상을 떠날때가지 베르디를 정성껏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베르디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에 꼭 베르디의 뒤를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베르디의 뒤를 따라갔다.

 

은퇴음악가들을 위한 집(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의 베르디의 묘. 주세피나는 베르디의 옆이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