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벤버그 왕조의 출현](1156-1278)
오늘날의 오스트리아가 나라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은 955년 헨리1세(하인리히1세)의 아들인 오토(Otto: 오토1세 유일왕: 912-973) 대제가 레흐펠트(Lechfeld)전투에서 헝가리의 마쟈르(Magyar) 족들을 물리치고 현재의 오스트리아 일부 지역을 관할하면서부터라고 말할수 있다. 당시 마르키아 오리엔탈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지역은 도나우 주변에서 군사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976년 바바리아의 헨리 2세(하인리히 2세)가 프랑크 왕국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넓히자 얼마후 오스트리아(마르키아 오리엔탈리스)는 바벤버그의 레오폴드에게 주어졌다. 독일 동부 변경지대의 영토는 백작 또는 공작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다스렸다. 이른바 영주들이었다. 백작이나 공작은 관할구역을 통치하는 변경백(Margravei: Markgraf)이라고 할수 있다. 즉, 관할구역의 백작(Count of the Mark)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문을 연 오토1세(912-973).
오스트리아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난 것은 996년이다. 물론 그때에도 오스트리아(또는 독일어로 외스터라이히)가 아니라 오스타리키(Ostarrichi)라는 명칭이었다. 바벤버그 왕조가 관할하는 동쪽 변방지역이 오스타리키였다. 오스트마르크(Ostmark)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아마 마르키아 오리엔탈리스를 오스트마르크라고 번역했던 것 같다. 바벤버그가 오스타리키를 관할하면서부터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며 농지를 개간하고 수도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156년 오스트리아(오스타리키)는 변경백의 관할지역으로부터 공국으로 격상되었다. 1192년, 바벤버그는 슈티리아(Styria)공국을 통합하였다. 레오폴드 6세(1198-1230)는 바벤버그 왕조의 가장 강력한 군주로서 알프스 동부지역의 오스타리키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1246년 그의 아들 프레데릭 2세가 살해되자 레오폴드 가계는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십년에 걸쳐 공위시대가 계속되었다. 이때에 보헤미아의 오타카르 2세(Otakar II)가 오스타리키, 슈티리아, 카린티아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며 세력을 키웠다. 그러나 오타카르의 통치는 1278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타카르2세가 1251년 비엔나에 입성하여 영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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