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페오도로브나

황제와의 이별

정준극 2010. 2. 9. 02:26

황제와의 이별

 

황태후로서 다그마르의 역할 중의 하나는 여러 자선사업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친정인 덴마크를 방문했다. 다그마르는 덴마크에 흐비도레(Hvidore)라고 알려진 별장도 마련했다.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다그마르는 영국에서 언니 알렉산드라와 함께 지냈다. 영국 황태자비인 알렉산드라는 동생 다그마르를 언제나 따듯하게 대하여 주었다. 다그마르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러시아로 돌아갔다. 종전에는 영국에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갔으나 전쟁이 나서 독일과 러시아가 적국이 되자 다그마르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갔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라스푸틴(Rasputin)이라는 신부가 황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라스푸틴은 어린 황태자의 병을 고쳐준 일이 있다. 황실의 신임을 얻는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정치에도 간여하기 시작하여 장관들을 마음대로 임명하고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들은 가차없이 추방하였다. 다그마르는 그런 라스푸틴을 증오했다. 다그마르는 황제 니콜라스에게 라스푸틴을 황궁에서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황비인 알렉산드라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어머니인 다그마르의 말은 듣지를 않았다. 백성들은 요승 라스푸틴과 어리석은 황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짜리나 마리아 페로도로브나 공식 초상화. 인상이 억세지 않아서 당장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마침내 라스푸틴은 펠릭스 유소포프(Felix Yussopov)공자와 디미트리 대공에 의해 살해되었다. 유소포프공자는 다그마르의 손녀 사위였다. 그렇지만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너무나 늦었다. 혁명의 기운이 맹렬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니콜라스 황제의 퇴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17년 3월 15일, 황제 니콜라스는 퇴위를 결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다그마르는 황제가 머물고 있는 모길레프(Mogilev)로 급히 찾아갔다. 하지만 다그마르로서도 백성들의 혁명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황제는 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을수 없는 처지까지 되었다. 3월 21일 다그마르는 니콜라스가 체포되어 차코에 셀로(Tsarkoe Selo)라는 감옥에 구금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제는 어머니인 다그마르를 마지막으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경비병을 따라서 감옥으로 향하였다. 황제는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자간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황제가 탄 기차가 떠날 때 다그마르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다그마르의 언니들. 가운데가 영국황태자비가 된 알렌산드라, 맨 오른쪽이 다그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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