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톨릭의 전통
영국 왕가는 지난 3세기동안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탈 가톨릭’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 그런 상황이므로 왕실 멤버중의 어떤 한 사람, 특히 왕위 서열에 들어 있는 사람의 친가족이, 느닷없이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모든 국왕은 당연히 영국의 교회, 즉 성공회 신자여야 했다. 국왕은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수호자이며 수장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왕실 사람이 성공회를 뿌리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역사적으로 보아 왕실 성공회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일은 단 한 번뿐이었다. 저 멀리 17세기, 찰스 2세라는 인물이 임종할 때에 침상에서 공개적으로 성공회를 버리고 ‘난 로마 가톨릭이 좋아!’라면서 가톨릭을 받아 들였던 것이 유일한 사건이었다. 헨리8세 사후, 왕위에 오른 메리여왕의 경우에는 다르다. ‘블라디 메리’(Bloody Mary)라는 칵테일 명칭의 근원지 역할을 한 메리 여왕은 스페인 출신의 어머니를 따라 원래부터 가톨릭이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죽음의 침상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찰스2세의 얘기로 돌아가서, 그가 그렇게 한 배경에는 어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메리1세 여왕. 블라디 메리.
지난 1백 50 여년에 걸쳐 영국 왕실에 있어서 종교 문제는 켄트공작부인이 주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개인적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왕실 사람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종교는 사느냐 죽느냐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유럽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국가와 국가사이의 대립, 왕실과 왕실간의 증오, 또는 당파간의 폭력이 빈번하여 그 결과 살육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었지만 종교 문제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잘못된 신앙’(Wrong Faith)으로 인하여 한때 서슬이 퍼랬던 주교들이나 귀족들이 추방당하고 재산과 가축을 몰수당하여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는 일일 심심치 않게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도끼에 목이 달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영국이야말로 이스라엘보다 더한 종교적 핍박의 용광로였다. 헨리8세의 첫 부인으로 저 유명한 메리여왕의 어머니인 캐서린은 스페인공주였다. 헨리8세는 앤 볼레인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첫 부인인 캐서린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러므로 메리의 뇌리에는 언제나 ‘아이구, 불상한 우리 오마니! 아이고, 웬수의 아바지!’라는 인식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굳건한 가톨릭 국가였던 영국은 다 아는 대로 헨리8세가 앤과 결혼하기 위해 ‘탈 가톨릭’의 성공회를 주창하게 됨으로서 바야흐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소용돌이를 예견해 주었다. 헨리8세는 첫 부인 캐서린을 추종하는 가톨릭을 몰아냈다. 캐서린의 딸 메리가 왕위를 차지하게 되자 자기 어머니를 핍박한 웬수의 성공회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메리 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앤 볼레인의 딸 엘리자베스여왕 (지금의 엘리자베스여왕의 증고조 할머니뻘 되는 분)이 왕위에 오르자 이번에는 가톨릭을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예전처럼 종교 문제에 대하여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정도의 파란을 일으키는 일은 거의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죽어라고 싸우고 있는 북아이랜드는 예외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주일날을 보라. 성공회건 가톨릭이건 도대체 교회에 출석하는 신도가 몇 명이나 되는가? 현저하게 줄었다. 어떤 성당은 파리를 날릴 정도가 아니라 날릴 파리조차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은 성공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종교국가이며 세계 성공회의 종주국이다. 그러면서도 영국에서는 주일날 자기 집 소파에 기대 누워 유치하기 짝이 없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망정 교회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다른 나라 성공회를 보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전의 성공회 신도들을 보면 주일 낮 예배, 저녁 예배, 수요일 예배, 구역 예배, 성가대 연습, 신부님의 가정 방문....정신이 없을 지경이 아닌데 말이다.
성공회를 국교로 삼고 있는 영국이라고 해도 종교의 자유는 엄연히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종교법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 고백의 근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든지, 또는 피부 색깔이나 성별에 따라 종교적 차별을 둔다든지 할 경우에는 기소의 대상이 된다는 법일뿐 종교를 강요하는 내용 따위는 없다. 그만큼 종교적 상황이 달라졌다. 오늘날 영국의 사회는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다민족, 복합 문화의 짬뽕이 되어가고 있다. 런던의 거리를 거닐어 보면 당장 알 수있다. 인도 사람, 아랍인, 동양인(상당수는 한국 유학생), 아프리카인...형형색색의 인종이 거리를 들끓고 있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도교...이런 사람들에게는 성공회가 자기들 생활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항이다. 사회의 분위기가 이렇게 변하다 보니 영국 사람들마저 영국의 개신교, 즉 성공회에 대한 관심을 점차 흘려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왕실의 경우에는 다르다. 왕실의 사람들은 당연직 성공회 신도이다. 가톨릭이면 안 된다. 왕위 계승자가 로마 가톨릭이면 법적으로 그를 배척하고 반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왕실 사람이 로마 가톨릭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옐로우 카드를 받는 일이며 만일 결혼하게 된다면 왕실에서 레드 카드를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현재 왕위계승 서열 18위에 있는 켄트공작의 부인 문제는 만만치 않다. 사실 켄트가문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금번 켄트공작부인의 가톨릭 개종이 첫 번 경우는 아니다. 전과자로서 켄트공작의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이름도 거룩하게 성앤드류스 경(Earl of St. Andrews)이며 둘째 아들은 마이클 공자(Prince Michael)이다. 글쎄 이 두 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가톨릭교도와 결혼한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왕위계승 서열에서 자퇴하였다. 그런 전력이 있는 켄트 집안에서 이번에는 왕위계승 서열 19위에 있는 사람의 부인이며 역시 왕위 계승 서열 20위와 21위에 들어있었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아버지인 켄트공작도 왕위 계승서열에서 사퇴해야 하는 것일까? 기로에 서 있다.
실제로 켄트공작 가문과 왕위계승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켄트가문이 의연하게 이런 종교적 이탈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왕위 계승서열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직계 자손들이 10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다. 찰스황태자, 해리왕자, 마이클왕자, 앤드류왕자, 에드워드왕자... 줄줄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켄트가가 왕위 계승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켄트공작이 왕위 서열 19위라고 한다면 엘리자베스여왕의 사후 또는 자발적인 왕위 사퇴 이후, 서열 18위까지의 후보자가 모두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튼 왕위 계승서열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가문의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등록된 후보자들이 왕실의 기본적인 전통을 벗어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문제이다. 더구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으로의 개종은 왕실 전통을 거부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물의를 빚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 왕실의 밑바탕은 바로 종교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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