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3구 히칭

[참고자료] 비엔나 오페레타 대본의 달인 빅토르 레온(Viktor Léon)

정준극 2010. 3. 28. 18:30

[참고자료]

오페레타 대본의 달인 빅토르 레온(Viktor Léon)

‘메리 위도우’ ‘웃음의 나라’ ‘오페라무도회’등 대본 척척

 

뛰어난 재능으로 비엔나 오페레타의 대본을 제공한 빅토르 레온

 

비엔나의 13구 히칭에는 유명한 오페레타 대본가인 빅토르 레온을 기념하는 ‘빅토르 레온 가쎄’(Viktor-Leon-Gasse)가 있다. 빅토르 레온은 비엔나 오페레타의 대본가이다. 천재적인 위트와 아름다운 언어구사로 오페레타를 더욱 주옥처럼 빛나게 만든 인물이다. 비엔나 오페레타에서 대표적인 세 개의 작품을 고르자면 ‘박쥐’ ‘비엔나 기질’ ‘메리 위도우’일 것이다. 빅토르 레온은 ‘비엔나 기질’과 ‘메리 위도우’의 대본을 완성한 인물이다. 다음은 빅토르 레온이 완성한 오페레타 대본이다.

 

- Der Doppelgänger(똑같은 두 사람): 1886. 알프레드 차마라 작곡

- Simplicius(심플리키우스: 멍텅구리): 1887. 요한 슈트라우스 작곡

- Der Strike der Schmiede(대장장이의 망치질): 1897. 막스 요셉 베르 작곡

- Der Opernball(오페라무도회): 1898. 리하르트 호이버거 작곡

- Wiener Blut(비엔나 기질): 1899. 요한 슈트라우스 작곡

- Der Rasterlbinder(땜장이): 1902. 프란츠 레하르 작곡

- Die Schönen von Fogaras(포가라스의 어여쁜 아가씨): 1903. 알프레드 그륀펠트 작곡

- Barfüssele(가죽신발): 1904. 리하르트 호이버거 작곡

- Die lustige Witwe(메리 위도우): 1905. 프란츠 레하르 작곡

- Der fidele Bauer(성실한 농부): 1908. 레오 팔 작곡

- Die geschiedene Frau(이혼녀): 1908. 레오 팔 작곡

- Gold gab ich fur Eisen(쇠를 사기 위해 금을 주다): 1914. 엠메리히 칼만 작곡

- Wiener Volkssänger(비엔나의 가수): 1919. 로베르트 말러 작곡

- Das Land des Lächelns(웃음의 나라): 1923. 프란츠 레하르 작곡

 

빅토르 레온이 레오 슈타인과 합작으로 대본을 만든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프라노 릴리 엘지(Lily Elsie)

 

빅토르 레온은 두편의 연극 대본도 남겼다. Fräulein Lehrerin(여선생님: 1905)과 Der grosse Name(위대한 이름: 1909)이다. 이제 빅토르 레온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빅토르 레온은 헝가리 사람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유태인이었다. 하기야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버지도 유태계이므로 유태인이라고해서 유별날 일은 없다. 다만, 유태인들 중에는 어찌된 일인지 예술가와 학자들이 많다. 빅토르 레온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빅토르 레온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인 1858년 1월 4일에 북부헝가리 포초지(Pozsony)부근의 체니츠(Szenitz)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빅토르 히르슈펠트(Viktor Hirschfeld)였다. 그러다가 문학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빅토르 레온이라는 필명을 가지게 되었다. 빅토르 레온는 레오 슈타인(Leo Stein)과 협력하여 여러 오페레타의 대본을 완성했다. ‘메리 위도우’는 대표적이다.

 

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예전에는 헝가리 왕국의 포초니라고 불렀으며 독일어로는 프레스부르크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옛 포초니의 일부가 헝가리에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슬로바키아의 소관이 되었다. 빅토르 레온은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체니츠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비엔나로 온 빅토르 레온은 로나허(Ronacher)극장에서 단편 연극을 발표함으로서 비엔나 문화예술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비엔나에서 동료가 된 막스 폰 봐인치에를(Max von Weinzierl), 루돌프 라이만(Rudolf Raimann), 알프레드 차마라(Alfred Zamara)등과 합심하여 독일 함부르크의 칼-슐체 극장, 페스트의 독일극장 등에 연극대본을 제공하였다. 빅토르 레온가 오페레타 대본가로서 성공한 것은 1886년(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설립된 해)에 알프레드 차마라와 공동집필한 Der Doppelgänger(도펠갱거)가 뮌헨의 개르트너플라츠극장(Theater am Gärtnerplatz)에서 공연된 때였다. 도펠갱거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이곳에도 나타나고 저곳에도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인물을 말한다. 그렇다고 쌍둥이는 아니다.

얼마후 빅토르 레온은 요한 슈트라우스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30년 전쟁을 소재로 삼은 Simplicius(심플리키우스)였다. 1887년 12월 17일 테아터 안 데어 빈(비엔나강변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빅토르 레온은 초연에서의 실패를 만회코자 두 번에 걸쳐 대본을 수정했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후 다른 작곡가들과의 교분을 통하여 여러 대본을 내놓아 점차 명성을 날렸다. 알프레드 차마라(Alfred Zamara), 요셉 헬메스버거(Josef Hellmesberger), 알폰스 치불카(Alfons Szibulka), 루돌프 델링거(Rudolf Dellinger), 그리고 심지어는 프란츠 폰 주페(Franz von Suppe)의 오페레타의 대본을 쓰며 함께 일하였다. 주페의 마지막 작품인 Das Modell(모델)의 대본은 빅토르 레온의 뛰어난 솜씨이다. 그는 일단 오페레타 대본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자 전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였다. 외국 작품의 독일어 대본도 썼다. 아서 설리반의 The Yeomen of the Guard(런던탑의 근위병)의 독일어 대본을 만들었으며 에드워드 야코보브스키(Edward Jakobowski)의 Erminie(에르미니)의 독일어 대본도 썼다. 빅토르 레온의 명성은 자꾸 높아만 갔다.

 

비엔나의 로나허극장


사실상 빅토르 레온는 데뷔 이래 거의 10년간 별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1898년 1월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된 리하르트 호이버거의 오페레타인 Der Opernball(오페라무도회)의 대본으로서 일약 비엔나 최고의 오페레타 대본가로서의 위치를 굳히었다. 이후 1898년과 1899년은 빅토르 레온 생애에서 최고의 해였다. 빅토르 레온이 대본을 쓴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인 Wiener Blut(비엔나 기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빅토르 레온은 처음으로 역시 대본가인 레오 슈타인과 손을 잡고 일하게 되었다. 이어 빅토르 레온은 레오 슈타인과 함께 레오 팔의 Die geschiedene Frau(이혼녀)의 대본을 만들어 또 다시 갈채를 받았다. Wiener Blut는 얼마후 아돌프 뮐러라는 사람이 칼극장을 위해 댄스뮤직으로 편곡하여 또다시 화제에 올랐었다. 하지만 요한 슈트라우스는 병마와 싸우고 있어서 ‘비엔나 기질’의 성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오페레타 '오페른발'(오페라무도회)의 한 장면


빅토르 레온의 마지막 몇 작품은 동생인 레오와 함께 완성한 것이다. 동생 레오는 레오 펠트(Leo Feld)라는 예명으로 오페레타 대본도 쓰며 직접 오페레타의 무대감독을 맡아 했던 재능있는 사람이었다. 빅토르 레온의 딸 리찌(Lizzi)는 1910년에 테아터 안 데어 빈(비엔나강변극장)의 주도적 인물인 휴버트 마리슈카라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리찌는 아버지인 빅토르 레온에게 ‘웃음의 나라’ 대본을 쓰도록 격려하였다. ‘웃음의 나라’의 원작은 Die gelbe Jacke(황금저고리)이다. 리찌는 아버지가 대본을 쓴 프란츠 레하르의 마지막 오페레타 ‘웃음의 나라’가 공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18년 아들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리찌의 나이 30세였다. ‘웃음의 나라’는 1923년 테어터 안 데어 빈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빅토르 레온은 ‘웃음의 나라’ 대본을 리찌에게 헌정하였다. 빅토르 레온은 나이가 들어서도 대본 작업을 계속하였다. 마지막으로 손을 본 대본은 1932년 그가 74세 때에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Das Fürstenkind(후작의 아들)를 Der Fürst der Berge(산의 후작)로 수정한 것이다. 빅토르 레온은 1940년 2월 3일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였다.


빅토르 레온의 딸인 리찌가 대본을 쓴 오페레타 '웃음의 나라' 무대. 뫼르비슈 호수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