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7년전쟁의 모든 것

7년 전쟁의 마감

정준극 2010. 4. 19. 08:26

7년 전쟁의 마감

후버투스부르크 조약의 체결

 

작소니의 후버투스부르크 궁전에서 7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7년 전쟁의 결론은? 전쟁 전에 비하여 사정이 달라진 것이 없다. 공연히 7년동안 죽어라고 싸움만 벌였다. 다만, 7년 전쟁의 결과로서 프러시아가 유럽의 맹주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은 있다.

 

1763년 프레데릭 대제는 실레지아를 완전히 장악하고 내친 김에 오스트리아 북부로 진격하여 오스트리아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한편, 프러시아에 대한 영국의 지원은 영국정부에 새로운 수상으로 뷰트(Bute)경이 들어서자 철회되었다. 표트르3세의 뒤를 이어 짜르에 오른 카테리나(캐서린)2세는 그동안의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을 없던 것으로 돌리고 독자적으로 프러시아를 공격하였다. 오스트리아는 몇년에 걸친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져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때였다. 마침내 1763년 2월 15일 작소니의 후버투스부르크 궁전에서 후버투스부르크 조약이 체결됨으로서 유럽 중부를 강타했던 7년 전쟁과 프랑스-인도전쟁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제정러시아의 캐서린2세 여제. 7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763년 남편 표트르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 빗나갔지만 전쟁 중인 1757년 영국은 그 우수한 머리를 짜내어서 이른바 '디센트'(Descent)라는 작전을 구상하였다. 실상 디센트라는 말은 '몰락'을 의미한다. 디센트 작전의 요지는 프랑스 남서부의 대서양에 면한 항구인 로세포르(Rochefort)를 수륙양면에서 공격하여 점령하고 내친 김에 그 아래 쪽에 있는 샤랑트(Cahrente) 군항에 정박해 있는 함선들을 모두 불살라 버린다는 것이었다. 영국으로서는 프랑스의 해군력을 아예 뿌리채 뽑아 버리자는 심산이었다. 디센트 작전은 드디어 1757년 9월 8일 막을 올렸다. 영국은 육지에서는 보병으로, 바다에서는 함대로 프랑스의 군항들을 공격하였다. 영국은 우선 전략적 요지인 댁스섬(Isle d'Aix: 일 댁스)를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이어 목적지인 로세포르를 공격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바람에 로세포르의 프랑스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철통과 같은 수비력을 과시하였다. 결국 영국군은 로세포르를 공격하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10월 1일에는 댁스섬도 그대로 놓아둔채 영국으로 퇴각하였다.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의 항구도시인 로세포르. 서북방으로는 영불해협이다. 7년 전쟁 때에는 격전지였으나 지금은 한가로운 요트의 항구이다.

 

프랑스를 공격했던 영국군들이 후퇴하여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윌리엄 피트 수상은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다시 한번 공격하여 대영제국의 체면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금해인 1758년 6월, 영국은 대규모 육군과 해군을 동원하여 프랑스의 브리타니 지방을 공격하였다. 육군운 말보로 공작인 챨스 스펜서가 지휘하였고 해군은 3명의 쟁쟁한 제독들이 합동으로 지휘하였다. 영국군은 브리타니의 요새인 생말로(St Malo)를 점령하고 항구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함선들을 진짜로 불태웠다. 영국군이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때 프랑스군은 은밀히 영국군의 배후에 진을 치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영국은 다시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은 프랑스에 대하여 강한 펀치를 한 대 먹여 섯불리 덤벼들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보았다. 그 이후에도 영국은 다시 한번 육군과 해군을 이끌고 프랑스의 생말로를 공격하였지만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는 바람에 서로 길이 엇갈려서 헤매게 되었다. 해군은 생캬스트(St Cast) 항구에 무사히 정박할수 있었지만 엉뚱한 곳에 상륙한 육군을 갈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이에 1만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프랑스 육군이 매복하여 있다가 일거에 영국 육군에게 사격을 가하여 추풍낙엽과 같이 쓰러졌다.  영국군은 혼비백산하여 서로 배에 오르려고 난리를 쳤다. 그 통에 영국의 더리(Dury)장군이 이끄는 후방병력 1천4백명이 프랑스군에 완전히 포위되었다. 결국 더리 장군을 비롯하여 750여명의 영국군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영국은 더 이상 프랑스를 괴롭히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 댁스 해변의 옛 요새. 7년 전쟁 중에 영국이 점령하고 기세를 올리다가 후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