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7년전쟁의 모든 것

북미에서의 전쟁

정준극 2010. 4. 21. 08:07

북미에서의 전쟁

 

유럽에서의 7년 전쟁은 북미에서의 영-불 대결에서부터 비롯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비록 유럽에서 오스트리아-프러시아의 갈등이 증폭되어 7년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고 할수 있지만 실은 북미에서의 영-불간 대결이 촉매재 역할을 하였다. 당시 북미 지역은 지금처럼 캐나다와 미국으로 갈라져 있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역과 프랑스 식민지역으로 나위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여기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차지하고 있는 독자적인 지역도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미국의 국부라고 하는 조지 워싱턴은 당시 영국군이 조직한 버지니아 민병대의 중령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1754년 프랑스를 상대로 한 주몽빌(Jumonville)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어 주 화예트(FAyette) 군의 화밍턴(Farmington) 산상의 작은 요새인 네세시티요새(Fort Necessity)에서 프랑스군에 포위되어 항복을 할수 밖에 없었다. 조지 워싱턴이 평생에 처음으로 항복한 경우였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유일하게 항복했던 전투가 치루어진 포트 네세시티의 오늘날의 모습

 

이렇듯 영국과 프랑스가 북미 대륙에서 일진일퇴의 전투를 벌이고 있어서 소강상태에 들어간 듯 보였지만 1757년에 3년간에 걸친 오하이오 밸리(Ohio Valley) 전투에서 영국군이 크게 승기를 잡자 프랑스는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전황을 뒤짚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캐나다 동쪽 끝에 있는 노바스코시아의 케이프 브레튼(Cape Breton) 섬에 있는 루이스부르그(Louisbourg: 루이부르)에서 영국군을 몰아냈으며 아울러 퀘벡으로 진격할 정도로 성공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3개월이나 끌었던 프랑스의 퀘벡 공성은 별무효과였다. 영국의 제임스 울프(James Wolfe)장군이 프랑스군을 퀘벡 교외의 아프라함 들판(Plains of Abraham)에서 물리치는 바람에 프랑스군은 몬트리얼로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마침내 그해 9월 영국군에 중과부적이어서 항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제임스 울프 장군은 1759년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아무튼 이로써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퀘벡 일대는 영국의 수하에 떨어졌지만 그로부터 프랑스계 주민들의 영국에 대한 반발과 독립요구는 자못 끈질긴 것이 되었다.

 

캐나다 노바스코시아의 루이스부르크. 옛 식민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762년에 북미에서의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프랑스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군대를 이끌고 뉴파운드랜드의 생잔스(St John's)를 공격하였다. 프랑스군은 생잔스를 일시 점령하고 인근의 영국 정착지들도 수중에 넣었으나 얼마후 영국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시그날 힐(Signal Hill)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만일 프랑스가 이 전투에서 승리했더라면 오늘날 캐나다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 있을지도 모른다. 시그날 힐 전투는 북미에서의 7년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투였다. 이로써 영국은 북미의 동부지역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이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에서 주도권을 잡게된 발판이었다.

 

캐나다 생잔스의 교외에 있는 시그날 힐의 모습. 북미에서 영-불간의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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