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7년전쟁의 모든 것

인도와 서아프리카에서의 각축전

정준극 2010. 4. 21. 22:59

인도와 서아프리카에서의 각축전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대륙에서 기침을 하자 얼마후 인도에서는 감기가 걸렸다. 당시 프랑스도 인도의 여러 지방을 점령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열심히 싸우자 인도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놀면 뭐해!'라면서 이곳저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랑스가 열세에 몰리게 되어 후퇴를 거듭하였으며 영국은 향후 190년 동안 동인도회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인도를 통치하였다. 인도에서 영-불간의 전투는 벵갈에서 시작하였으나 남쪽의 타밀지역으로 번졌다. 벵갈에서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무갈제국의 벵갈 총독인 시라즈 우드-다울라(Siraj ud-Daulah)를 무찌르고 캘커타를 점령하였으며 얼마후에는 플라씨(Plassey)전투에서 또 다시 승리하여 결국 시라즈 우드다울라를 왕좌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플라씨 전투에는 인도 토후인 미르 자파르의 역할도 컸었다. 영국은 플라씨 전투의 승리로 인도와 벵갈에서 완전히 헤게모니를 잡아 향후 190년 동안 동인도회사가 인도와 벵갈을 통치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762년 영국의 클라이브 장군이 플라씨 전투 이후 인도 토후인 미르 자파르를 만나고 있다. 코끼리가 참으로 크다.

 

인도에서의 영-불 전쟁은 북쪽 벵갈지방에서 시작되었으나 남쪽에서 결판을 보았다. 처음에 프랑스는 인도 동남부 타밀지방의 산업도시인 쿠달로어(Kuddalore)를 점령하여 기세를 올렸으나 마드라스 공성에 실패한 이후로는 판세가 점점 기울어져갔다. 1760년 영국군은 완디와쉬(Wandiwash)전투에서 프랑스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북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하여 벵갈만이 있는 곳까지 영향력을 확보하였다. 이로써 벵갈만 일대에서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북부 시르카르스(Northern Circars)일대는 완전히 영국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1761년에 영국은 프랑스가 통치하던 폰디체리(Pondicherry) 지방의 수도를 점령하였으며 남부의 카라이칼(Karaikal: Karikal)과 마헤(Mahe)를 함락하여 인도 남부를 완전 장악하였다. 이로써 프랑스는 결국 인도에서 손을 떼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푸두체리의 거리. 힌두교 사원들을 볼수있다.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으나 7년 전쟁 중에 영국이 장악했다.

 

한편, 미국의 상인인 토마스 커밍(Thomas Cumming)이란 작자는 1758년 영국 수상인 윌리엄 피트(1708-1778)에게 서아프리카 세네갈에 있는 프랑스 정착촌인 세인트 루이스(St Louis)를 공격하여 점령해 달라고 청원했다. 피트는 '뭐? 프랑스가 만든 마을이라고?'라고 반색을 하며 선봉부대를 보내 세인트 루이스를 점령했다. 이에 놀란 프랑스가 '당신들 뭐요? 여긴 왜 왔어?'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국군은 내친 김에 내륙으로 진군하여 결국 소규모의 부대가 세네갈을 집어 삼켰다. 영국은 세네갈에서 노획한 물건들을 모두 영국으로 가져갔다. 영국의 피트는 뜻밖에도 세네갈을 힘들이지 않고 차지하게 되자 한걸음 더 나아가서 감비아의 프랑스 무역항이 있는 고레(Goree)섬을 장악하였가.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세네갈과 감비아를 영국에게 빼앗긴 이후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세네갈의 고레(Goree) 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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