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더 알기/복음서 기초입문

복음서 이야기

정준극 2010. 4. 29. 21:27

복음서 이야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불교의 경전은 불경이라고 하고 이슬람교의 경전은 코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전은 기경(기독교경전) 또는 가경(가톨릭경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경(Holy Bible)이라고 부른다. 원래 바이블(Bible)이라는 말은 ‘권위 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의 어느 책보다도 권위있는 책을 말한다. 성경은 영어로 바이블이라고 하지만 테스타멘트(Testament)라고도 부른다. 구약은 올드 테스타멘트(Old Testament: 옛 언약)라고 부르고 신약은 뉴 테스타멘트(New Testament: 새 언약이라고 부른다. 테스타멘트라는 단어는 ‘언약’(약속)이라는 뜻이다. '유언'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테스타멘트'는 편지형식이지만 유언장이나 마찬가지의 문서를 말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다.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이다. 그래서 구구단을 외울 때처럼 '삼구는 이십칠'이라고 하면 구약이 몇권이고 신약이 몇권인지 쉽게 기억할수 있다. 여기까지는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항이다. 사족이지만, 가톨릭의 성경은 개신교의 성경보다 책의 수가 몇권 더 많다. 유딧서, 도빗서, 마카비우스서 등이 추가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언약이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들어서면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라고 해도 잠시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가 창조하신 인간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에서 '말씀'이라고 표현된 것이 바로 '언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약속인가? 요한복음 3장 16절에 대답이 적혀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라는 약속이다. 이같은 약속의 말씀이 복음이다. 복음은 글자그대로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좋은 뉴스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복되고도 기쁜 소식을 말한다. 죽을 죄를 지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다시는 그러지 마라! 알았지?’라면서 무죄를 선언하고 석방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처럼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며 영생을 얻게하여 준다는 약속을 복음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죄악에서 구원해 준다는 등 난리들인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기독교에서는 '모르시는 말씀 좀 그만 하시라! 모든 사람은 원래부터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 살고 있단 말씀이올시다'라는 것이 성서적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이제 복음서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자.

 

알렉산드리아의 성마가 콥틱 교회의 제단

                        

복음서는 신약성서에 있는 네편의 문서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 즉 성서이다. 그 생애와 가르침을 통하여 인간들이 구원을 얻을수 있는 방법에 제시되어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약속은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쓰여진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에 명시되어 있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기본은 복음서이다. 복음서는 영어로 가스펠(Gospel)이라고 한다. 가스펠은 고대 영어인 God spel에서 비롯한 단어이다. ‘좋은 소식’(Good news)을 말한다. '좋은 소식'은 ‘기쁜 소식’이다. 가스펠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유안젤리온(Euangelion)이라는 단어를 글자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유안젤리온의 유(Eu)는 '유레카'라는 말에서 볼수 있듯 Good이라는 뜻이며 안젤리온(Angelion)은 메시지라는 뜻이다. 천사(Angel)라는 단어의 뜻이 기본적으로 메시지(소식)를 전하는 자라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한 말이다. 영어의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복음 전파 또는 복음전파자)라는 단어도 유안젤리온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4복음서의 저자들을 4명의 에반젤리스트라고 부른다.

 

비엔나의 유엔 앞길에 있는 콥틱교회의 조각. 봐그라머슈트라쎄. '슬픔을 통하여 빛으로, 빛에서 사랑으로'라고 적혀 있다. 훌륭한 말씀이다.

 

가스펠서(복음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신약성경(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를 말한다. 이밖에도 초대교회 시절부터 인정하여 온 몇가지 복음서들이 더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정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복음서들을 경외서(經外書) 또는 좀 낮게 보아서 위경(僞經)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곧 오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서 예수께서 얼마후에, 즉 아무리 늦어도 2-3년 후에는 갈릴리 지방으로 다시 오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5년, 10년이 지나도록 재림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아니, 곧 오시겠다고 약속하시더니 어찌된 일인가?’라며 궁금해 했다. 그런데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좀 바쁘셔서 아직 못 오시는 모양인데 이러다가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되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로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지금이라도 기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도다’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지 약 30년 후인 주후 65년에서 110년 사이에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적은 복음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신 때로부터 30 여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가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 그 때에는 일부 사도들이 살아 있던 때라고 볼수 있다. 어떤 학자는 복음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주후 50년대라고 주장했다. 예수님은 대략 33세 쯤에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으니까 그러므로 주후 50년이라고 하면 대략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17년 후가 된다.

 

블로흐가 그린 '산상수훈'.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거의 20-30 여년 전에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일들을 죽을힘을 다 하여 기억하여서 기록으로 남겼다. 4복음서가 처음 나타났을 때에는 ‘마태복음’이니 ‘누가복음’이니 하는 타이틀이 없었다. 그냥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였으며 굳이 여러 문서들 중에서 구분하기 위해 아마 '마태에 의한 복음서' 등으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태복음’ 등등의 공식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주후 180년경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지 150 여년이 지난 후이다. 그건 그렇고, 복음(가스펠)이라는 말은 누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했는가?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4복음서 중에서는 누가복음에 복음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써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누가복음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누가복음은 주후 65-70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도바울은 그보다 훨씬 전에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한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단언하였다.

 

로마에서의 사도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및 가르침과 관련한 사항을 적은 글은 정경의 4복음서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베드로복음서, 유다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 심지어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마복음서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4복음서만이 성경에 수록한 것일까? 그것이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4복음서 이외의 다른 복음서들이란 것들은 내용이 부실하여 교회가 받아들이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정경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주후 185년경의 신학자 이레니우스(Irenaeus)는 성경에 4복음서만 있는 것을 ‘교회의 네 기둥’과 연관하여 설명했다. 성경에는 4개 이상의 복음서가 있어서도 안되며 4개 이하의 복음서가 있어도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4라는 숫자는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 4개의 방위가 있으며 바람에도 4 종류가 있는 것을 비유하였다. 특히 그는 에스겔의 네 형상, 또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다는(계 4: 6-10) 기록을 상기하였다. 즉, 사자, 송아지(원어에는 황소), 사람, 독수리의 얼굴을 가진 생물이 곧 4복음서를 뜻하는 것이며 네 복음서의 저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렌즈와 같은 것이어서 이 렌즈를 통하여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읽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공관복음(共觀福音)이 형성되었다고도 설명했다.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 비엔나 성안나교회의 제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