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정준극 2010. 5. 1. 20:18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의 일대 변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도 상주

 

 

싱거운 얘기인줄 알면서도 미상불 해보면, 서울의 지하철 역 이름 중에서 가장 긴 것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이다. 무려 아홉자나 된다. 전에는 '동대문운동장' 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으로 바뀌었다. 동대문운동장 역의 직원들은 수많은 안내표지판을 변경된 이름으로 고쳐 쓰느라고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로 써도 상당히 길다. 좀 어색하지만 Dongdaemun History Culture Park Station 이다. 원래는 Dongdaemun History & Culture Park 인데 지하철 안내에서는 뜻한바 있어서 & 를 생략하였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전에는 6호선의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이 긴 이름으로서 1위였다. 화무십일홍! 그건 그렇고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만일 장학퀴즈 시간에 '지하철 역 이름의 영문 표기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이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정답은 분당선의 '오리'역과 4호선의 '미아'역이다. Ori 와 Mia 이기 때문이다. 역과 역 사이가 가장 긴 구간은? 이건 말하지 않아도 분당선의 오리역이다. 실은 왕십리역과 거리가 같다. 각설하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희귀한 이름에 약간 감동하여 틈을 내어 한번 방문하였다. 하기야 역사에 관심이 있으며 남느니 시간이기 때문에 은연중 한번 가보려고 생각했었다. 4호선이나 2호선을 타고 가다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여기에도 서울의 상징이라는 해치. 폐 페트병 등으로 만들었다. 혹시 2009년 잠실운동장에 전시되었던 것 아닌가?

 

나는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더구나 몇년 동안은 약수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다오다가 동대문운동장을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발적으로 갔던 일은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의 화려한 응원전을 보러 몇번 갔었던 일과 대통령기인지 청룡기인지 고교야구를 구경하러 갔었던 일 정도이며 그 나머지는 대체로 강제동원되어 갔었다. 자유당 시절에는 무슨 궐기대회 등의 행사가 많았는데 학생된 신분으로서 여러차례 동원되어 갔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이승만박사 탄생 축하 행사에 내가 다니던 학교의 거의 전교생이 동원되어 마스게임을 하러 갔던 일이었다. 이승만박사의 탄생일은 3월 26일이었다. 당시 3월 26일은 국경일이었다. 6.25사변 기념일도 공휴일이었고 10월 24일의 UN데이도 공휴일이었다. 나는 정동의 배재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승만박사의 모교여서 생일축하 행사에는 다른 어느 학교보다도 선착순으로 동원되어 동대문운동장에 나가서 마스게임을 하였다. 학교에서 한달 넘게 연습을 거듭하였거니와 동대문운동장에도 여러번 가서 예행연습을 하였다. 아직도 3월은 날씨가 쌀쌀하여서 난닝구(런닝 셔츠)만 입은 어린 학생들은 단체로 감기에 걸려 죽을 고생이었다. 연습 중에는 화장실도 함부로 가지 못하였고 혹시라도 물구나무서기 동작이 틀리면 호랑이 같은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기합을 받아야 했다. 고교야구 시합이 있는 날은 입장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난리도 아니었다. 아침 일찍부터 가서 줄을 서야했다. 그런 동대문운동장인데 어느덧 이름도 고상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변모하였기에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시찰코자 방문하였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곳을 파보니 이런 옛날 집터가 나왔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역사공원이라고 한다면 글쎄올시다이다.  

 

서울시 당국은 바야흐로 동대문운동장이 운동장으로서 별볼일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지난 몇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운동장의 구석구석을 파헤친 후 이제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장소로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의 소견으로는 시민들의 혈세인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금 만들어 놓은 이상한 구조물들이 언젠가는 (아마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면) '이게 뭐야? 아니,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 이걸 역사공원이라고 할수 있어?'라면서 또다시 이상한 모습으로 바뀌던지 그렇지 않으면 건축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먹고 주상복합 단지로 용도가 변경될것 같다. 그래야 새로운 시장의 업적이 되고 시청 공무원들로서도 예산집행 실적이 좋아지며 아울러 여러 공무원들의 자리를 만들어 줄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너나 할것 없이 과거 수십년 동안 길거리의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쳐서 새로 깔고, 멀쩡한 가로수를 이리저리 옮겨서 결국은 말라 죽게 만들며 화단을 만들고 잔디를 심자마자 훼손되게 만드는 전시행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런 멍청한 짓의 이면에는 당연히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먹는 공무원들의 행태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 동대문운동장을 역사의 현장으로 만든 사업은 제발 그런 원망을 듣지 않도록 되어야 겠다.

 

왼쪽에 있는 낮은 건물이 동대문운동장 역사관. 옛날 야구경기 할 때의 전광탑은 그대로 보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는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등 여러 시설들이 있다. 디자인과 관련하여서는 '서울디자인자산전'이란 것이 2010년 4월 초부터 6월 초까지 열리고 있다. 한번 둘러 보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전시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곰곰히 따져보니 얼마전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했던 것 그대로였다. 역사유물의 발굴과 관련하여 이간수문을 복원한 것은 정말 치하할만한 중대사라고 생각된다. 이간수문과 관련한 관광이벤트가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은 아직 전시품들이 충실치 않다고 생각되지만 앞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기증을 권장하여 더 많은 전시물을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전시하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것으로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첨단 오디오/비디오 시설들을 많이 활용하였으나 낮이라 그런지 햇빛이 많이 들어와서 모니터의 영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권투경기, 축구경기 등의 포스터 몇장이 흥미를 갖게 해준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 같아서 박수를 보낸다.  동대문운동장 역사관, 기념관 등에 무엇을 어떻게 전시하여 놓았는지 궁금한 입장이면 한번 직접 가 보시기를 권장한다. 관람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질문하여 달라는 안내양들의 자세가 아주 호감을 준다.

 

동대문운동장에서는 권투경기가 간혹 열려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게 했다. 전시관의 포스터를 보면 가관이었다. 이승만박사, 이기붕선생 정부통령입후보를 환영하는 권투대회라고 한다. 두 양반이 정부통령으로 입후보한것도 크게 환영하던 시대였다. 대한권투사업협회와 상점계사(오늘날의 교차로와 같은 유인물)가 주최하였으며 입장료는 일반이 200원, 군경이 1백원이었다. 그리고 국민영양제인 원기소가 후원했다. 당시 원기소는 참으로 많이 팔렸다. 고소해서 아이들 간식용으로 제격이었다. 게다가 비타민 등등의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다고 하니까 없는 살림에 많이들 샀다. 그런데 볶은 콩가루를 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짜 원기소도 많이 돌아다녔다.  

 

새로 복원한 이간수문  

역사관에서의 역사강좌.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아주 진지하다. 강의하시는 분도 누구신지 아무튼 아주 흥미롭게 말씀을 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