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정준극 2010. 5. 5. 19:07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An Exhibition Commemorating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Inside the DMZ 사진전

 

전쟁기념관 특별기획실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반으로 잘라진 60이라는 숫자가 그동안의 험난했던 우리 역사를 함축해 준다.

 

6.25를 잊지 말자는 내용의 전시회, 또는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알려주는 전시회 같은 것이 있으면 가급적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습성의 사람들이 무척 많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얼마전에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전시회가 있었다. 굳이 찾아가서 한참동안 보고 왔다. 조선일보사와 전쟁기념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이 열린다고 신문에 났기에 그것도 가보지 않을수 없었다. 2010년 5월 4일에 오픈하여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지만 어서 가서 관람하지 않을수 없었다. 6.25 전쟁 당시에 북한공산당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을 되새겨 보았다. 북한의 국민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일부 통치자들은 호화방탕한 생활에 젖어 있는 모습도 확인할수 있었다. 테러, 밀수, 마약, 위조지폐로 돈을 벌었으며 특히 잃어버린 10년동안 햇볕정책으로 막대한 돈을 받아 챙겨 호화방탕한 생활을 했고 한국을 공격할 핵무기를 개발한 실상을 알수 있는 전시회였다.

 

그리고 유엔의 깃발 아래에 우리나라를 지원해준 16개국의 활동상도 놓지지 않고 보았다. 만리이역 낯선 곳에 와서 공산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유엔군들의 모습을 되새겨 보았다. 이 시간에도 휴전선을 철통같이 지키는 우리의 국군장병들의 모습도 보았다. 전시되어 있는 6.25 당시의 사진들을 몇장 카메라에 담아 소개한다. 이는 순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쟁기념관에 가서 제발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을 한번만이라도 보라고 권고코자 하는 의미에서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한심한 현실이다. 이들에게 쓸데 없이 길거리나 쏘다니면서 놀지 말고 전쟁기념관에 속히 한번 가서 보라고 적극 권고하고 싶은 심정에서 몇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전시장을 혼자 찾아온 어떤 노인. 6.25 전쟁 때에 책가방을 던져 두고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고 지금까지 지팡이 신세를 져야 한다는 이 노인은 김정일의 호화방탕한 생활과 햇볕정책으로 보내준 돈으로 핵개발을 하고 어뢰를 마련하여 천안함에 대한 공격을 자행했음을 소개한 전시 앞에서 발길을 옮지기 못했다. 누구때문에 다리에 총상을 입어서 6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오지 못했는가? 그런데도 이 나라의 친북좌파들은...

 

이 전시회는 6.25 당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북한 공산당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러 온 우방의 군인들이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였는지,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얼마나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 그런데도 친북좌파들은 도대체 왜들 저렇게 날뛰고 있는지 등등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의 참상,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해야 하는 북한 정치수용소의 비참함, 김정일 일족의 극에 달한 호화사치 생활,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심히 부끄럽게 여겨지는 북한의  밀수, 마약, 테러 등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공작정치의 모습을 볼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의 생각은 대한민국에 발을 붙이고 있는 친북좌파세력들은 그렇게도 진정으로 친북, 종북을 주장한다면 여기 대한민국에 살지 말고 제발 북한에 가서 살라는 것이다. 북한 공산당과 인민군이 주적이 아니라고까지 하는 지나간 잃어버린 10년의 인간들은 모두 북한에 가서 살고 절대로 여기로 오지 않았으면 원이 없겠다. 그렇게도 햇볕을 통해 펑펑 퍼주고 싶으면 자기 재산이나 퍼 주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한 재산이겠지만 말이다.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에서 친북을 외치던 반체제 인간들은 북한에 가자마자 정치범 수용소의 신세를 질것 같다.

 

'6.25 60주년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전쟁기념관에 몰린 인파. '아! 6.25'라는 대형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국군의장대가 시민들을 위한 시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5월 5일. 어린이 날.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이번 특별기획전시회는 4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을 존(Zone)이라고 붙였다. Zone 1은 6.25 전쟁에 대한 내용이다. 누가 일으킨 전쟁인가? 6.25란 무엇인가?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누가 우리를 도왔는가? 피난살이는 어떠했는가? 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다. Zone 2는 한강의 기적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는가?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세계로 나아가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특히 국방과학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Zone 3는 오늘의 북한에 대한 실상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내용과 북핵에 대한 실상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Zone 4는 DMZ에 대한 내용이다.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고성까지 장장 248km의 DMZ 내부 구석구석을 누비며 찍은 사진과 영상은 언론사상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등 오늘날 북한의 실상에 대한 사항은 별도 소개할 작정이다.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였다. 특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장병들이 많이 방문하여 선배들의 숭고한 활동을 눈여겨 보았다. 이들은 자기들이 왜 한국에 와서 주둔하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인식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의 신예 전차를 자세히 관람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16개국에 대한 전시내용은 발길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감격스럽고 고마운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금수나 다를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작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북에 대하여 어서 군비를 확장하라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인간들이 있다니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6.25 참전국에서는 나름대로 6.25전쟁을 기억하여 여러 기념물을 만들었고 기념행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6.25전쟁은 남쪽이 먼저 북을 공격하여 생긴 전쟁이라고 떠들어 대는 족속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북을 두둔하기에 미쳐 돌아가는 족속들도 허다하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격전지에 남아 있는 참전기념비라도 정성껏 제대로 보살펴야 할 것이다.  두가지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16개국 이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구호금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몰랐던 내용이다. 고마운 나라들이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할 것 같으면 몇 배로라도 갚아야 할것이다. 국민으로부터 걷은 혈세를 북한에 퍼주지 말고 지금은 사정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6.25 때에 우리를 도와준 그런 나라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두번째는 각 참전국에서 6.25 전쟁 참전 기념비가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이다. 현지 공관은 우리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표시로 그런 기념비에 화환이라도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참전기념비가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을 본따서 만든 조형물이다. 세느강변에 있다고 한다.

 

세느강의 마레 다리 옆에 있는 프랑스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한반도의 모습을 본따서 제작하였다. 누가 꽃이라도 놓았으면...

 

6.25 전쟁 중에 우리나라에 직접 파병은 하지 않았지만 구호금을 보낸 나라들은 다음과 같다. 고마운 나라들이다. 우루과이 225만불, 칠레 25만불, 코스타 리카 1천7백만불(의류), 쿠바 27만불(식품, 약품), 파나마 수송선 8척, 멕시코 34만불(식량, 약품), 베네주엘라 18만불, 프라질 270만불(약품), 스위스 31만불(구호품), 아르헨티나 50만불(통조림), 에쿠아도르 9만 9천불, 엘 살바도르 5백만불, 온두라스 2천5백만불, 오스트리아 18만불. 금액의 다소가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성의가 고마울 따름이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공산치하에서 수복되던 날, 스웨덴 의료진들이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미군 트럭을 타고 야전병원으로 향하였다. 이들은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로 토쿄까지 온후 다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였으며 곧바로 임무에 투입되어 부상병들의 치료에 헌신하였다. 이들은 스스로 고생을 자임하면서까지 왜 우리를 도왔을까?  

이 사람을 아십니까? 이탈리아의 간호병인 파스쿠티 입니다. 한국에서 공산군의 침범으로 전쟁이 벌어져 각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파스쿠티는 젊은 나이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가기로 결심하여 한달 동안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2010년 현재 100세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6.25전쟁의 한국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다.  

여학생들도 책가방을 밀어 놓고 북한 공산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자원입대하였다. 사진은 부산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여학생들. 이제는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생존해 있다고 해도 80이 넘은 할머니들일 것이다. 그들은 북한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싸웠다. 우리 국민들은 이분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친북좌파 세력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누구 때문에 책가방을 놓아두고 총을 잡게 되었는가? 

 

피난민 행렬. 저쪽에서는 어느 노인이 당시를 회상하듯 피난 사진을 보며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피난행렬. 이것이 현실이었다.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누구 때문에 이런 참담함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북한을 옹호하는 부류들은 도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어찌하여 민족의 비극을 망각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도 어릴 때에 어머니 손을 잡고 이렇게 피난을 갔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전선의 터키 병사들. 터키는 우리의 우방이다. 터키병사들은 어린 학생들의 공부를 위한 지원사업도 열심히 펼쳤다.

필리핀 병사들. 맨 오른쪽은 나중에 대통령이 된 라모스 소위이다. 고마운 분들이다. 한국의 졸부들. 제발 필리핀에 가서 추태 좀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필리핀에서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분들을 정성껏 보살펴야 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진이다. 어느 미군 병사. 함경도의 추운 겨울 날씨 속에 먼 하늘을 바라본다. 만리이역.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에 얼룩진 얼굴. 그는 누구를 위해 낯선 땅에 와서 생명을 바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일까? 고귀한 모습이다. 이 병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병사.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함선에 오르는 미군들. 이들이 흘린 고귀한 피로 우리는 공산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찾을수 있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한국의 은인. 그런데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무너뜨리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정체가 무엇인가?  

6.25 전쟁 때에 우리 국군은 변변한 탱크 한 대 없었다. 지금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작한 현대식 탱크가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버린 날을...' 가슴에 맺힌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휴전회담이 시작되자 유엔군은 짚차에 휴전을 뜻하는 백기를 달고 판문전을 향하였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오만방자한 미군들이 항복하러 왔다'고 선전했다.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햇볕이라는 미명아래 돈을 퍼준 정신 나간 작자들. 북한은 그 돈으로 핵무기를 만들었고 중어뢰를 구비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쟁기념관 입장료는 뜻한바 있어서 무료이지만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은 유료이다. 어른이 5천원이다. 글쎄 좀... 하기야 무료입장이면 너무 혼잡할 것 같다. 그런데 유치원생들은 무료이다. 

 

마게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20-1966)를 아십니까? 6.25 종군기자 중에서 유일한 미국인 여기자였다. War in Korea(한국전쟁)라는 책을 썼다. 한국의 은인 맥아더 장군을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단독 인터뷰하여 세계에 알렸다. 포항전투에서 한국 해병대의 활약을 보도하면서 한국해병대를 '귀신잡는 해병대'라고 처음으로 불렀다. 이브닝 드레스보다는 군복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얘기를 들은 마게리트 히긴스는 나중에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가 풍토병에 걸려 45세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6.25를 생각하는 우리는 히긴스 기자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6.25 전쟁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고맙고 수고하셨다는 인사라도 했는가?  

 

인천에서 이 나라의 은인인 맥아더 장군과 함께 

한국전쟁으로 향하는 군용기 안에서 동료 기자들과 함께 

미국정부는 2002년 마게리트 히긴스를 미국 저널리슴을 빛낸 4인의 여성중 하나로 선정하여 기념우표를 발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6. 25 전쟁 60주년을 기하여 기념우표가 나왔으면 좋겠다. 마게리트 히긴스! 확실히 군복이 더 잘 어울리는 여성이다.  

 

부기: 2010년 5월 24일 (월), 이명박 대통령께서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었다. 전쟁기념관 만세이다. 언제 친북좌파 대통령들이 한번이라도 전쟁기념관을 찾아와서 전몰장병들을 추모하여 묵념이라도 했었나? 북에 가서 돈이나 퍼주고 김정일과 기념사진 찍느라고 분주했을 지언정 전쟁기념관에서 가서 6.25 전쟁에서 전사한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 장병들을 위해서는 묵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