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Joseph Leopold Eybler(요셉 레오폴드 아이블러)

정준극 2010. 5. 19. 10:40

Joseph Leopold von Eybler(요셉 레오폴드 폰 아이블러)

모차르트와의 특별한 인연

 

요셉 아이블러

 

요셉 레오폴드 아이블러는 1765년 당시 비엔나 교외의 슈베하트(오늘날 비엔나국제공항이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이블러는 오늘날 그의 작품보다도 모차르트와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아이블러는 음악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교사 겸 합창지휘자로서 하이든의 아버지와 가까운 친척 사이였다. 아이블러는 슈테판성당 소년합창단 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로부터 기본적인 음악레슨을 받았다. 그는 유명한 요한 알브레헤츠버거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알브레헤츠버거는 ‘요한 아이블러는 모차르트를 제외하고 당대에 가장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이블러는 하이든으로부터도 높은 찬사를 받았다. 아이블러와는 먼 사촌간인 하이든은 비엔나에서 아이블러와 친구로 지냈다.

 

아이블러는 1792년 비엔나의 갈멜교회(Karmeliterkirche)의 합창지휘자가 되었다. 2년 후에는 쇼텐클로스터(아일랜드수도원)로 옮겼다. 아이블러는 쇼텐클로스터에서 거의 30년을 지냈다. 아이블러는 궁정에도 관련하였다. 1824년부터 거의 10년간 궁정 카펠마이스터로서 활약하였다. 마리아 테레제 여제는 아이블러에게 진혼곡 C 단조등 여러 작품을 의뢰하였다. 아이블러는 하이든을 통하여 모차르트를 만났다. 모차르트는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Cosi Fan Tutte(여자는 다 그래)의 연습감독을 의뢰했다. 아이블러는 ‘여자는 다 그래’의 공연에서 여러번 지휘를 맡기도 했다. 아이블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로서 가깝게 지냈다. 아이블러는 모차르트의 임종에 즈음하여 그를 극진히 간호하고 돌보아 주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1762-1842)는 아이블러에게 미완성의 진혼곡을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이블러는 진혼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나 존경하던 모차르트의 작품을 감히 손댄다는 것이 죄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진혼곡은 모차르트의 또 다른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가 완성했다.

 

요셉 아이블러에게 모차르트의 미완성 작품인 진혼곡(레퀴엠)을 완성해 달라고 부탁했던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 이 초상화는 나중에 콘스탄체와 재혼한 랑(Lang)이 콘스탄체가 20세이던 1782년에 그린 것이다.

 

 

1833년, 아이블러는 어느 연주회에서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지휘하는 중에 심장마비에 걸려 쓰러졌다. 이후로 그는 궁정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프란시스1세 황제는 1835년 아이블러의 궁정에 대한 봉사를 감사히 여겨 귀족의 작위를 수여하였다. 그로부터 아이블러의 이름은 요셉 레오폴드, 에들러 폰 아이블러(Edler von Eybler)가 되었다. 아이블러는 1846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블러는 주로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오라토리오, 미사곡, 칸타타, 감사곡, 진혼곡 등이다. 또한 오페라와 기악곡과 가곡도 작곡하였다. 그의 현악4중주곡은 특히 뛰어났다. 아이블러는 클라리넷 협주곡을 모차르트 작품의 클라리넷 연주로 유명한 안톤 슈타들러(Anton Stadler)를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