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Simon Sechter(시몬 제흐터)

정준극 2010. 5. 19. 10:43

Simon Sechter(시몬 제흐터)

다작의 대가, 브루크너의 스승

 

 

시몬 제흐터(1788-1867)는 음악이론가, 음악교사, 오르가니스트, 지휘자, 작곡가였다. 제흐터는 보헤미아의 프리드버그(Friedberg: Frymburk)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일부였다. 그는 1804년에 비엔나로 올라와 궁정오르가니스트로 1824년까지 20년을 봉사했다. 이와 함께 그는 1810년부터 맹아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와 성악을 가르쳤다. 그는 한때 슈베르트에게서 대위법을 배우기도 했다. 다만, 슈베르트가 병마와 싸우고 있어서 짧은 기간밖에 레슨을 받지 못했다. 1851년부터는 비엔나음악원의 작곡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했다. 나중에 그의 제자인 안톤 브루크너가 그의 뒤를 이어 교수로서 재직하였다. 그는 마음이 너무나 좋아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들에게 그저 집어주는 성격이었다. 결국 말년에는 극심한 빈곤 속에 살다가 숨을 거두어야 했다.

 

제흐터의 제자로서는 브루크너 이외에도 작곡가인 앙리 뷰땅(Henri Vieuxtemps), 지휘자인 프란츠 라흐너(Franz Lachner), 음악교사인 에두아르트 맑센(Eduard Marxsen: 브람스에게 대위법과 피아노를 가르쳤음), 작곡가 겸 교사인 요한 네포무크 푹스(Johann Nepomuk Fuchs), 그리고 구스타브 노테뵘(Gustav Notteböhm), 칼 움라우프(Carl Umlauf), 켈러 벨라(Keler Bela), 피아니스트-작곡가인 지기스문트 탈버그(Sigismund Thalberg), 아돌프 폰 헨젤트(Adolf von Henselt) 등이 있다.

 

제흐터는 음악교사로서 3부작인 Die Grundsätze der musikalischen Komposition(작곡의 기본)을 저술했다. 이 저서는 훗날 여러 음악이론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었다. 작곡가로서 제흐터는 무려 약 5천편의 후가를 작곡했고 또한 미사곡, 오라토리오, 오페라 등을 작곡했다. 오페라는 5편을 작곡했다. Das Testament des Magiers(동방박사들의 증언: 1842), Ezzeline, die unglückliche Gegangene aus Deli-Katesse(델리 카테쎄에서 온 불행한 사람 에첼리네: 1843), Ali Hitsch-Hatsch(알리 히츄 하츄: 1844), Melusine(멜루신: 1851), Des Müllers Ring(방아 찧는 사람의 반지)이다. 그는 안톤 디아벨리가 조국예술가연맹을 위해 편성한 왈츠 변주곡의 50인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제흐터는 그 시대에서 가장 다작의 작곡가라고 할수 있다. 생전에 거의 매일 한편 씩의 작품을 썼다는 계산이다. 그에게 필적할만한 인물은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