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Heinrich Berte(하인리히 베르테)

정준극 2010. 10. 7. 06:54

Heinrich Berte(하인리히 베르테)

 

하인리히 베르테 

 

오페레타 Das Dreimäderlhaus(세 아가씨의 집)으로 유명한 하인리히 베르테는 1858년 헝가리의 갈고츠(Galgocz)에서 태어났다. 갈고츠는 오늘날 슬로바키아의 흘로호베츠(Hlohovec)이다.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었으므로 하인리히 베르테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로 분류되고 있다. 베르테는 처음에 발레음악과 한두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비엔나로 온 그는 비엔나악우회음악원에서 푹스(Fuchs)와 브루크너에게서 작곡을 공부했다. 그는 생전에 6편의 발레곡과 12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Das Dreimäderlhaus이다. 그는 1911년에 대본가인 알프레드 마리아 빌너로부터 프란츠 슈베르트에 대한 오페라를 작곡하여 줄것을 요청받았다. 대본은 루돌프 한스 바르츄(Rudolf Hans Bartsch)의 원작 슈밤메를(Schwammerl)이었다. 베르테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용하여서 Das Dreimäderlhaus를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등장하기 때문에 장르상으로는 파스티셰(Pastiche)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Das Dreimäderlhaus는 1916년 1월 15일 비엔나의 라이문트극장에서 초연되었다. Das Dreimäderlhaus는1921년에 뉴욕에서 Blossom Time 이라는 타이틀로 공연되었고 1922년에는 런던에서 Lilac Time 이라는 타이틀로 공연되었다. 오늘날 베르테의  Das Dreimäderlhaus는 세계 60여개국에서 22개국어로 번역되어 공연되는 놀라은 성과를 거두었다. 영화로도 여러번 제작되었다. 베르테는 Das Dreimäderlhaus의 후편으로 Hannerl을 작곡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베르테는 1924년 니더외스터라이히의 페르흐톨즈도르프에서 세상을 떠났다. 

 

1916년 '세 아가씨의 집'의 비엔나 초연 당시 슈베르트 역의 슈뢰터, 한네를 역의 라이너

 

오페라로는 1896년에 비엔나에서 공연된 Schneeflocke(눈송이)가 있으며 오페레타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 Bureau Malicone(말리코네 사무실: 1891 비엔나)

- Der neue Burgermeiser(신임 시장: 1904 비엔나)

- Die Millionenbraut(백만불 신부: 1904 뮌헨)

- Der Stadtregent(섭정: 1905 뮌헨)

- Der kleine Chevalier(꼬마 신사: 1907 드레스덴)

- Der schöne Gardist(아름다운 경호원: 1907 브레슬라우)

- Der Glucksnarr(행운의 바보: 1908 비엔나)

- Kreolenblut(혼혈아: 1911 함부르크)

- Der Marchenprinz(동화의 왕자님: 1914 하노버)

- Das Dreimäderlhaus(세 아가씨의 집: 1916 비엔나)

- Lenz und Liebe(청춘과 사랑: 1917 부다페스트)

- Die drei Kavaliere(세명의 신사: 1919 비엔나)

- Coulissengheimnisse(쿨리쎈 비밀: 1920 함부르크)

 

하인리히 베르테가 태어난 슬로바키아의 흘로호벡(예전엔 헝가리의 골가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