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좀 더 알기/나사렛의 목수 요셉

마리아의 남편 요셉

정준극 2010. 5. 26. 21:02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아버지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족보는 물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일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언젠가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신약의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호적상 아버지라고 하는 목수 요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의 생애에 대하여는 기록이 부실하다. 하기야 그나마 마리아에 대하여는 몇 차례 언급이 되고 있지만 마리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마리아에게 좀 물어서 기록 으로 남겨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궁금증을 잠재울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요셉에 대하여는 두어번 이름만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요셉의 부모는 누구이며 역시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등에 대하여는 일체 기록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예수님의 호적상 아버지인데 복음서의 저자들이 너무 무심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요셉이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갔을 때에 새로 결혼한 마리아와 새로 태어난 아들 예수를 호적에 올렸을 것이다. 아무튼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저 유명한 성모마리아의 남편이 아니던가?

 

나사렛의 성요셉교회 내부(Credit)

 

초대교회 시절에는 다른 복음서, 즉 경외서에 요셉의 생애와 마리아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목수 요셉의 역사’(Carpenter Joseph History)라는 문서였다. '목수 요셉의 역사'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한 것으로 특히 요셉이 임종할 때의 기도문과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기술되어 있다. 교회가 이런 경외서를 복음서의 하나로 인정하느냐 또는 인정하지 않느냐는 것은 순전히 각 교회의 사정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들은 신약의 4복음서만을 복음서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신약경외서들을 인정하고 있는 종파들도 있으니 과연 세상을 넓다. 요셉에 대한 기록인 ‘목수 요셉의 역사’는 크게 믿을만한 문서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오늘날 교회에서는 요셉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귀도 레니(Guido Reni) 작품의 성요셉. 상당히 늙으셨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베들레헴은 그의 선조인 다윗의 고향일 뿐이며 요셉이 태어난 곳이라는 근거는 없다. 오늘날 서방교회는 요셉의 축일을 3월 19일로 삼고 있다. 3월 19일이 무슨 날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동방교회는 예수께서 태어나신후의 첫 주일을 요셉의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요셉은 여러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다. 성가족(聖家族)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서는 성가족(Holy Family)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등장한다.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기 때문에 목수를 상징하는 도구(자)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어린 예수와 함께 있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지만 성모 마리아와 둘이서만 함께 있는 그림이나 조각은 미안하지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신에 요셉은 일반적으로 백합송이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백합은 마리아에 대한 정절을 의미한다. 정혼은 하였지만 아직 혼인식을 치루지 않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한 것을 알고 이를 문제 삼지 않았으며 더구나 마리아가 계속 동정녀로 남아 있도록 협조해주었기 때문이다.

 

수태고지. 엘 그레코 그림

 

요셉은 만인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1870년 교황 비오9세가 그렇게 선포했다. 요셉은 또한 아직 태중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수호성인이며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야 했던 이민자들,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 의심을 품은 사람들,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한 것은 요셉이 가족들과 함께 애급으로 이민을 가서 몇 년 동안을 살다가 고향으로 역이민하여 왔기 때문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처음에는 심히 의심하여 가만히 파혼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며 나중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설명해 주자 그때서야 믿었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사람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수호성인인 것은 마침내 요셉이 의심을 풀로 마리아를 정식 아내로 맞아 들였으며 예수가 태어나자 그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요셉은 신실한 유태교도였다. 그래서 유태교의 절기들을 충실하게 지켰다. 요셉이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데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서 제사를 지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신실한 유태교인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처사이다. 오늘날 요셉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영국성공회, 루터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요셉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남편이며 비록 명목상이지만 예수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사렛에서 성모 마리아가 물을 길었다는 마리아의 우물 

 

[요셉에 대한 호칭]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목수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좀 어정쩡하다는 견해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인 것은 만인이 알고 있는 사항인데 또 무슨 아버지란 말이냐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 육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도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막말로 말하여 목수 요셉과는 피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무슨 아버지냐고 생각할수 있다. 그렇다고 요셉은 육의 아버지요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라고 구분하여 얘기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독생자)이라고 분명히 표현하였다. 사도신경에는 마리아의 이름은 나오지만 요셉의 이름은 그림자도 볼수 없다. 정말로 너무 푸대접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요셉을 예수님의 계부(Step father) 또는 양아버지(Foster father)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실제로 어떤 학자들은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 논문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양아버지라니? 예수님이 고아원 출신이어서 양자로 들어갔단 말인가?

 

성요셉과 아기 예수. 귀도 레니 작품

 

요셉은 일반적으로 ‘다윗 가문의 요셉’ ‘정혼한 요셉’ ‘노동하는 요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표현도 있다.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 요셉은 비록 예수님의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친부처럼 행동하였다. 그리고 누구든지 요셉을 성가족의 가장으로 인정하였다.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요셉의 아들로서 설명되었다. 다만,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아들’(마가복음 6:3)이라고 일컬어졌음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논란이 있다.

 

로마의 프리실라 카타콤(지하묘지)에 있는 '아기 예수를 보살피는 성모 마리아' 벽화. 2세기경. 가장 오래된 성모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