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 이야기/전설따라 삼천리

박싱 데이(Boxing Day)

정준극 2010. 7. 9. 06:15

박싱 데이(Boxing Day)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루돌프를 비롯한 사슴들이 남들처럼 크리스마스에 쉬지 못하고 산타에게 밤새 끌려 다니며 고생만 죽도록 한데 대하여 화가나서 산타와 박싱(권투)을 하여 통쾌하게 한방 먹이는 만화. 영국.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의 영연방 국가들, 그리고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을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하여 휴일로 삼고 있다. 박싱 데이란 무엇인가? 혹시 권투하는 날? 그렇지 않으면 상자(Box)를 만드는 날? 도무지 박싱데이의 영문을 알기가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싱 데이는 권투, 또는 상자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날이었으나 요즘에는 대박 세일이 실시되는 날로서 인기가 높다.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사는 사람들은 평소에 사고 싶었지만 비싸서 사지 못한 물건들을 이날 몰아서 삼으로서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일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다. 똑 같은 물건이지만 바로 그 전날이나 다음 날보다 50%, 심지어는 70%까지 싸게 파는데 이를 마다할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바뻐서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일부러 박싱 데이에 사서 주는 경우가 많다. 대단히 경제적이다. 이제 박싱 데이를 철저분석해 보자.

 

박싱데이에 백화점에 몰려온 인파. 캐나다.

                                                                                  

12월 26일을 박싱 데이라고 하여 휴일로 정한 나라들은 영국, 호주, 캐나다, 가나, 스위스, 독일, 그린랜드, 네덜란드, 뉴질랜드, 홍콩, 나이제리아, 기아나, 트리니다드-토바고, 자마이카 등이다. 그러고보면 영연방에 속한 기독교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남아공에서는 1980년부터 박싱 데이를 데이 오브 굿 윌(Day of Goodwill: 친선의 날)이라고 부르며 휴일로 지키고 있다. 과거 영국식민지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지만 캐나다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는 거의 모두 이날을 휴일로 지킨다. 캐나다에서는 노동관계 법령에 박싱 데이를 아예 휴일로 정하여 놓았다. 하지만 퀘벡과 브리티시 콜럼비아(BC)에서는 공휴일이 아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 졌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우선 박싱 데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간단히 설명한 후, 나중에 자세히 설명코자 한다. 박싱 데이에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상점에서 비교적 싼 값에 선물들을 살수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상점들마다 박싱 데이 세일을 하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작은 가게에서는 길가에 물건을 담은 상자들을 내어 놓고 박싱 데이 판매를 한다.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놓고 팔기 때문에 박싱 데이라는 말이 유래하지 않았나 싶다.

 

박싱데이 세일 포스터

                      

[유래] 중세의 유럽에서는 박싱 데이에 돈이나 선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전통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전통이 실상 초대교회 또는 로마제국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확실치는 않다. 중세에는 성스테판 축일에 교회 문 앞에 쇠로 만든 상자를 놓아두고 자선을 위한 모금을 했다. 성스테판 축일은 전통적으로 12월 26일에 지키므로 박싱 데이와 겹친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상인들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상자에 돈이나 선물들을 담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유행했다. 만일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자선을 베풀지 않으면 상당한 핀잔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그런 상자를 '크리스마스 박스'라고 불렀다. 이런 저런 점을 살펴 볼 때에 크리스마스 다음날에는 상자(박스)에 돈이나 선물을 담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박싱 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생각되지만 분명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주장도 있다. 영국에서는 지주들이나 잘 사는 상인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성대하게 여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하인들은 비록 크리스마스이지만 주인집의 파티를 위해 쉬지도 못하고 봉사해야 했다. 미안하게 생각한 주인들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하인들에게 무조건 휴가를 주었고 아울러 보너스와 선물을 넣은 상자를 나누어 주었다. 어떤 집에서는 상자에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박싱 데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반에는 교회마다 자선목적으로 모금함을 마련해 놓고 박싱 데이에 모금함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박싱 데이에 토론토의 이튼 센터에 몰려든 쇼핑객들

 

[공휴일 전통] 가톨릭교회에서 12월 26일은 성스테판 축일이다. 하지만 박싱 데이는 교회의 축일과는 관련이 없는 세속적인 휴일이다. 그래서 성스테판 축일은 반드시 12월 26일에 지키지만 박싱 데이는 반드시 12월 26일일 필요가 없다. 만일 12월 26일이 주일이면 박싱 데이는 다음날인 12월 27일 월요일이 된다. 만일 12월 26일이 토요일이면 박싱데이는 주일을 지난 월요일인 12월 28일이 된다. 만일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면 박싱데이는 다음날인 토요일로 지키지만 노동법에 따라 박싱 데이를 공휴일로 정한 나라에서는 주일이 지난 다음 월요일을 공휴일로 삼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계산이 귀찮아서 12월 26일이 주일이라고 해도 그대로 박싱 데이로 지키는 경향이다. 아무튼 휴일을 좋아하는 영국에서는 박싱 데이를 휴일로 아주 잘 지킨다. 영국에서는 은행들이 쉬는 날을 공휴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은행업무와 실생활과의 관계가 밀접해서인것 같다. 영국에서는 박싱 데이 휴일제도를 1871년부터 실시했다. 스코틀란드는 꼭 백년이나 지난 때인 1971년부터 비로소 박싱 데이를 휴일로 삼았다. 영국의 관습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어쩔수 없겠다 싶어서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우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2월 28일을 아예 휴일로 정했다. 박싱 데이가 자선활동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순전히 장사속으로 이날을 지키고 있는 경향이 있다. 박싱 데이 세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박싱 데이에 죽을 힘을 다해서 선물을 산다. 원래 박싱 데이에는 선물을 많이 받은 사람이 선물의 포장(박스)을 뜯지 않은채 다시 파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싼 값에 물건들을 살수 있는 날이 되었다. 쇼핑 홀리데이이다.

 

캐나다 토론토 욕데일 쇼핑센터의 박싱데이 아침 너도나도

                        

영국이나 캐나다의 대부분 상점에서는 박싱 데이 세일을 새벽 5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자제품 상점에서 그러하다. 싼 값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새벽에 가게 문이 열리기 전부터 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문이 열리면 서로 뛰어들어가서 되도록이면 많은 물건을 거머쥐기에 바쁘다. 판매물건이 한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캐나다의 대서양에 면한 지역과 북부 온타리오에서는 12월 26일을 세일의 날로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으로 그렇게 정하여 놓았다. 거룩한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새벽부터 세일가게를 쫓아 다니는 세속적인 일로 망치기가 싫어서라고 한다. 대신에 12월 27일을 박싱 데이 세일의 날로 정하여 놓았다. 아일랜드에서는 12월 26일이 성스테판 축일이므로 상점을 열지 않는다. 물론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데이에도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한 전통이 1백년 이상 계속되다가 2009년부터는 12월 26일에도 문을 여는 상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상점들은 1월 정기 세일을 12월 26일부터 시작한다.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성스테판 축일이고 무어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박싱 데이에 온 라인 쇼핑이 판을 치고 있다. 그리하여 이날을 사이버 박싱 데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는 12월 26일이 1년중 가장 복잡한 사이버 쇼핑 데이가 되었다. 2009년부터는 아예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사이버 판매에 열을 올리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박싱 데이에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냥을 나가는 풍습이 있다. Keswick에서.

                 

박싱 데이는 전통적으로 스포츠의 날이기도 하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박싱 데이로부터 프레미어 리그와 스카티쉬 프레미어 리그의 축구경기와 럭비경기가 시작된다. 주로 홈경기로부터 시작한다. 만일 원정경기가 이루어지면 팬들로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여행을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영국에서는 이날 서리(Surrey)의 켐튼 파크(Kempton Park)에서 킹 조지6세의 체이스(Chase: 경마)가 열린다. 킹 조지6세 체이스는 영국에서 첼트넘 골드 컵(Cheltenham Gold Cup) 경마에 이어 가장 유명한 이벤트이다. 영국에서는 또한 이날 마을 별로 권투경기가 열렸다. 그래서 박싱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호주에서는 멜본 크리케트 경기가 이날부터 시작한다. 유명한 시드니-호바트(Sydney-Hobart) 요트경기도 이날 열린다. 캐나다에서는 주요 아이스 하키 경기가 이날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IIHF World U20 챔피온쉽이다. NHL 경기는 실제로 크리스마스 이브나 크리스마스 데이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의 다보스에서는 유명한 슈펭글러 컵(Spengler Cup) 아이스하키 경기가 이날부터 시작한다.

 

스위스 다보스에서의 슈펜글러 컵 아이스하기 경기. 관례적으로 12월 26일에 오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