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르 마스네에 관한 일화
Jules Massenet
마스네와 칼베
당대의 소프라노 엠마 칼베(Emma Calve)는 마스네의 새로운 오페라인 사포(Sapho)의 주역을 맡게 되었다. 오페라 '사포'는 수다스럽고 방종한 어떤 파리의 청년이 프로방스에서 올라온 순진한 아가씨를 농락하고 버린다는 줄거리이다. 1897년 파리의 오페라극장에서는 사포의 초연을 준비하는 총연습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스네가 직접 리허설 지휘를 맡았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주역인 칼베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출연자가 위대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마스네보다 늦게 나타난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상 칼베는 정말로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제 시간에 극장에 달려올수 없었다. 모든 출연진과 오케스트라와 스태프들이 칼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후 칼베가 허겁지겁 무대에 들어섰다. 대노한 마스네는 칼베를 향하여 '마드모아젤 칼베여, 예술가로서 이름 값을 하려면 동료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며 무한의 모욕을 주었다. 마스네는 심지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칼베에게 침을 뱉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칼베는 물론 리허설에 늦은 것만은 죽을 죄를 지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되어 순간적으로 분을 참지 못했다. 칼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대를 박차고 떠났다. 칼베는 사포와 영원히 이별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뜻밖의 사태에 대하여 놀래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잠시후 무대 뒤로 뛰쳐 나갔던 칼베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여러분, 마에스트로의 말씀이 당연히 맞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용서하여 주세요.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저는 리허설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하였다. 당대의 칼베가 자기의 자존심을 죽이고 사과를 한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마스네가 무대 위로 올라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칼베를 뜨겁게 포옹해 주었다. 지휘자와 성악가가 다시 마음을 합한 것이다. 사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엠마 칼베가 주역을 맡은 마스네의 '사포' 포스터. 1897년 오페라 코미크
마스네의 살인 계획
마스네는 오페라 '테레스'(Therese)를 작곡할 때에 마침 당시 서서히 보급되고 있던 전화가 한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본가인 쥘르 클라레티(Jules Claretie)와 수시로 협의를 하려면 일일히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신속한 전화가 좋다고 생각해서였다. 전화기는 곧 설치되었다. 마스네는 전화가 너무 신통하여서 어서 클라레티와 통화하고 싶어했다. 오페라 '테레스'는 프랑스혁명이 배경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여주인공인 테레스의 남편이 무대를 가로질러서 처형장으로 가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비운의 여주인공도 죽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가 문제였다. 마스네는 이 문제를 전화를 통해 대본가인 클라레티와 상의키로 했다. 클라레티는 전화에 대고 '목을 칼로 쳐서 죽이지요'라고 말했다. 마스네는 '목을 졸라서 죽이는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에서 어떤 남자가 소리치기를 '잘들 한다. 이 사람들이 살인 계획을 꾸미고 있구만! 참 무서운 사람들이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가 혼선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 우연히 마스네와 클라레티의 대화를 듣고 전후사정도 모른채 살인계획을 짜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스네와 클라레티는 웬 남자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 들어서 놀랐지만 그럴수도 있겠거니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장면에 대한 협의를 계속하였다. 마스네가 '독약을 마시게 하여 죽이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내자 클라라테는 그거 좋겠군요'라고 대답했다. 또 다시 전화에서 그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당신들 말야, 경찰에 신고할 테니 각오들 해요.'
쥘르 클라레티
시빌 샌더슨 이야기
시빌 샌더슨(Sibyl Sanderson)은 마스네가 가장 총애하는 소프라노였다. 샌더슨은 최고의 음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모 또한 탁월했다. 마스네는 그런 샌더슨을 위해 여러 작품을 작곡했다. 그러던중 샌더슨은 심신이 피곤하여 요양원에 들어가 치료와 함게 휴양을 해야 했다. 샌더슨은 요양소에 있으면서도 재기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1년 쯤 지나서 샌더슨의 상태가 대단히 양호해졌다. 샌더슨은 다시 마스네 선생을 만나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했다. 드디어 마스네 선생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마스네는 샌더슨의 상태가 과연 예전과 같은지 궁금하여 내심 기대반 호기심 반으로 샌더슨을 기다렸다. 마스네는 지휘자인 에두아르 콜론느(Eduard Colonne)와 함께 샌더슨을 만나 오디션을 하기로 준비했다. 오디션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마스네의 '타이스'에서 시빌 샌더슨
오디션 장소에 들어선 샌더슨은 마스네 선생을 보자 '선생님, 저 자신으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세요. 저를 예술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도와주세요. 제가 생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해주세요'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마스네는 샌더슨의 순수하고 겸손한 태도에 깊이 감동하였다. 그러나 지휘자인 콜론느는 샌더슨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콜론느는 샌더슨에게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마스네의 아리아 중에서 한곡을 불러 보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마스네는 콜론느가 오페라 '타이스'나 '에스클라르몽'에서 소프라노 아리아를 칠줄 알았다. 하지만 콜론느는 '마농'의 아리아를 치기 시작했다. 마농의 아리아는 프랑스 소프라노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샌더슨은 너무나 당황하여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마농의 아리아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샌더슨은 의자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 마스네와 콜론느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이후 마스네와 샌더슨은 또 다시 만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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