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 작곡가 일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1

정준극 2010. 10. 25. 18:11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폰 뷜로브와 슈트라우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브(Hans von Bülow)는 신랄한 코멘트로도 유명했다. 폰 뷜로브는 리하르트가 첫 오페라인 군트람(Guntram)을 봐이마르 대공극장에서 선보였고 음조시 '돈 후안'을 발표한 1894년에 세상을 떠났다. 폰 뷜로브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대하여 한마디 코멘트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부정적인 것이었다. '리하르트라고 하면 바그너를 더 좋아합니다. 슈트라우스라고 하면 요한을 더 좋아하지요.'라고 말했다. 폰 뷜로우는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결혼했던 사람이다. 코지마는 나중에 바그너와 결혼하였다. 자기의 아내가 바그너와 스캔들을 일으켜 스위스로 애정도피까지 한 것을 보고 두 사람에 대하여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너그러워서 그랬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바그너를 대단히 신봉하였다. 폰 뷜로브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을 지휘했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브

 

미국의 슈트라우스 부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부인 파울리네(Pauline de Ahna)는 1904년 필라델피아에서 가곡 콘서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리사이틀 도중에 파울리네가 갑자기 기운이 약해지더니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러자 리하르트는 재빨리 파울리네를 부축하면서 귀속에 무어라고 몇마디 하니까 갑자기 파울리네가 기운을 차렸다. 리사이틀이 끝나자 사람들은 슈트라우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슈트라우스는 '연주회가 끝나면 비너 슈니첼과 스파게티가 기다린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파울리네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파울리네 드 아나

 

대단한 볼륨

엘렉트라는 111명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대규모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좁아서 소란이 벌어질 지경이다. 1909년 드레스덴의 초연을 준비하는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엘렉트라는 애니 크룰(Annie Krull)이 맡았고 클리템네스트라(Klytemnestra)는 에르네스티네 슈만-하인크(Ernestine Schumann-Heink)가 맡았다. 당대의 콘트랄토인 슈만-하인크의 음성은 웅대하였다. 슈트라우스는 리허설 중에 갑자기 지휘자 에른스트 폰 슈흐(Ernst von Schuch)를 부르더니 '좀 더 크게, 좀 더 크게 소리를 내란 말이요!'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슈만-하인크의 음성을 들을수 있단 말이요'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엘렉트라의 런던 초연 때에 지휘를 맡은 토마스 비챰 경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무대 위에 있는 성악가들이 무슨 소리를 지르는지 들을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엘렉트라의 오케스트라는 그 정도였다.

 

            에르네스티네 슈만-하인크

 

위대한 침묵

역시 엘렉트라의 이야기. 엘렉트라의 초연을 위한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음악평론가, 기자, 해설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왔다. 마지막 커튼이 내려졌는데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단 한사람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너무 놀라고 감동을 받아서였다.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사람들이 엘렉트라를 좋아하지 않아서 박수를 치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나는 좋았는데...'라고 소리쳤다.

 

눈치없는 슈트라우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조금 센스가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얘기가 있다. 에쎈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이 초연되는 날이었다. 말러 자신이 지휘를 맡았다.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은 비통함에 넘쳐 있는 작품이다. 사실 그날따라 말러는 평소보다 더 비통함을 표현하면서 지휘를 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그날 에쎈의 시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주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는 분위기였다. 연주회가 끝나자 슈트라우스는 무대 뒤의 지휘자 방을 찾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말러를 둘러싸고 있었다. 말러 자신도 슬픈 표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슈트라우스는 말러에게 '여보게 말러! 이곳 시장이 세상을 떠났다는구만! 그러니 그를 추모하는 곡을 지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마치 교향곡 6번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얘기였다. 그러더니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니, 뭐가 잘못 되었나요? 왜들 이렇게 낙심해 있는 표정들이지요?'라고 말했다. 참으로 분위기도 모르는 센스없는 말이었다.

 

조심스러운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는 작곡가로서 유명했지만 지휘자로서도 유명했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감동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의 작품을 지휘할 때에는 정확한 해석으로 존경을 받았다. 슈트라우스는 엘렉트라, 살로메, '그림자 없는 여인' 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휘했다. 그러나 '장미의 기사'를 지휘한 것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평론가 네빌 카르두스(Neville Cardus)는 그점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슈트라우스에게 염치불구하고 물어보았다. '장미의 기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관중석에 앉아서 감상하기 위해서 그런지? 관중들이 즐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지휘를 하지 않는 것인지? 출연진들이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해서 속상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슈트라우스는 '그런게 아니라, 지휘하기에 너무 어려워서 그래요. 특히 마지막 악장은 정말 힘들지요'라고 대답했다.  

 

비어있는 극장

1차 대전이 끝난후 극심한 인플레가 독일을 휩쓸었다. 오페라를 갈 만한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공연을 기획한 제작자는 슈트라우스에게 '이렇게 손님이 없으니 천상 공연을 취소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 슈트라우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단 한사람이 오더라도 오페라는 공연되어야지요. 그사람이야 말로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독일인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독일인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 오페라를 오지 않는 것을 핀잔하는 말이었다.

 

슈트라우스가 대본가를 잃다

일반적으로 오페라 작곡가와 대본가는 순치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의 관계는 두고두고 얘기꺼리가 될 정도의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정이 없었다. 물론 서로는 정중하고 존경하였다. 그러나 친밀하지는 않았다. 서로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얼굴을 맞대고 반드시 협의할 일이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생각컨대 슈트라우스의 안이하면서도 낙천적인 성품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호프만슈탈은 매사에 꼼꼼하고 정확했다. 그런데 슈트라우스의 부인인 파울리네는 성격이 급하고 신경질이 많았다. 호프만슈탈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는 경우도 있었다. 호프만슈탈에게는 못마땅한 일이었다.

 

위대한 대본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

 

어느때 호프만슈탈의 아들이 자살하여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장례식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서로 감정이 메말라서 그렇다고 수군거렸다. 마침 그때 호프반슈탈은 아라벨라의 대본을 막 완성한 싯점이었다. 호프만슈탈이 아들의 죽음으로 깊이 낙담하던 때였다. 호프만슈탈에게는 많은 지인동료들로부터 애도의 전보가 답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에게 전보를 보내어 대본을 훌륭하게 완성해 주어서 축하한다고 말했다. 호프만슈탈은 슈트라우스에게서 전보가 왔다고 하니까 받아 읽지도 않았다. 호프만슈탈은 아들의 시신을 매장하려고 묘지로 가려는 때에 갑자기 심장마비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아무리 동기처럼 친밀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슈트라우스의 센스 없음은 알아 모셔야 했다. 슈트라우스는 정말 미련하리만치 메마른 사람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이 세상을 떠났다는 급보를 받고 너무나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호프만슈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애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부인 파울리네가 이럴 때일수록 침착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막는 바람에 문상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과의 환상적인 콤비가 사라지게 되어 정말 낙담천만이었다.

 

'아라벨라'의 무대

 

슈트라우스는 아라벨라의 대본이 너무나 훌륭하여서 그것을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만에게 읽어주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슈트라우스는 엘리자베트 슈만을 아라벨라의 타이틀 롤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엘리자베트 슈만은 집에서 손님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있었다. 슈트라우스가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슈트라우스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호프만슈탈의 놀라운 재능을 설명하고 그의 찬란한 대본을 발표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엘리자베트 슈만은 필요한 손님들만 남기고 다른 손님들은 정원으로 안내하여 산책토록 했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슈트라우스가 읽는 호프만슈탈의 대본을 귀담아 들었다. 슈트라우스는 대본을 잃어내려가다가 너무나 감동하여 자기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엘리자베트 슈만도 눈물을 흘렸다. 그자리에 있던 엘리자베트 슈만의 남편 칼 알빈(Carl Alwin)과 클레멘스 프랑켄슈타인 남작부부도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항간에 나도는 것처럼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를 믿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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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