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8구 배링

[참고자료] 파두아의 성안토니

정준극 2010. 8. 31. 15:01

파두아의 성자

성안토니(성안토니우스), 산토 안토니오, 산 안토니오

 

아기 예수을 안고 있는 성안토니

 

파두아의 성자라고 불리는 성안토니(안토니우스)는 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승으로서 뛰어난 설교가였고 신학자였다. 그는 여러 기적을 보여주었으며 두터운 신앙심으로 로마 가톨릭이 성자로 시성하였다. 배링구에 있는 안토니가쎄(Antonigasse)는 그를 존경하여 붙인 거리이름이다.

 

파두아의 안토니는 119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페르난도 마르틴스 데 불로에스(Fernando Martins de Bulhoes)였다. 그의 가정은 귀족가문이었고 대단히 부유했다. 안토니의 아버지는 아들 안토니가 훌륭한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안토니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리스본 교외에 있는 아우구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안토니는 라틴어와 성경을 공부했다. 안토니는 사제로서 서품을 받은 후에 수도원의 접대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때 다섯명의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멀리 모로코로 가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안토니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의 검소하고 근면한 생활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안토니는 이들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안토니의 일행은 모로코에 가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는 뱃길에 시실리 해안에서 큰 폭풍을 만났다. 이들은 풍랑이 이끄는 대로 메씨나에 도착했다. 안토니는 이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내친 김에 이탈리아로 가서 아씨씨를 찾아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가고자 했다. 아씨씨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안토니의 건강이 너무나 허약한 것을 보고 그를 우선 로마냐(Romagna)지방에 있는 작은 수도원으로 보내서 건강을 회복하며 수행에 정진토록 했다. 안토니가 로마냐의 수도원에서 맡은 일은 주방에서 식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안토니는 마치 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

 

독일 바덴바덴의 수도원교회에 있는 성안토니 목상. 아기예수를 안고 있다.

 

어느날, 마침내 안토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서품을 받게 되었다. 마침 도미니카 수도사들이 많이 방문하였다. 서품식에서 누군가 설교를 해야 하는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은 도미니카 수도사들 중에서 설교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고 도미니카 수도사들은 당연히 프란치스코 수도사들 중에서 누군가 설교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로마냐 수도원장은 프란치스코 수도사들 중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 설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토니가 부름을 받았다. 수도원장은 안토니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설교를 하라고 당부했다. 안토니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수도원장의 지시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안토니의 힘찬 음성과 마음을 사로잡는 태도, 그리고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귀중한 말씀은 서품식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서품을 받은 안토니에게는 롬바르디(이탈리아 북부지방)를 다니면서 전도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가톨릭 교회는 안토니의 전도 사역과 설교에 크게 만족하였다. 교회는 안토니에게 여러 대학을 다니면서 강의를 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안토니의 진가는 대학에서의 강의에서 나타났다.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 놀랍도록 감동하여 전보다 더욱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안토니는 프랑스의 툴루스와 몽펠리에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교황 그레고리9세는 안토니의 명성을 익히 듣고 그를 교황청 사절로 임명하여 교황청의 중요한 행사 때에 설교를 하도록 했다. 안토니의 설교는 ‘성경의 보석함’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안토니는 전신부종증에 걸려 1231년 캄포삼피에로(Camposampiero)의 숲속에 있는 작은 휴양소로 가게 되었다. 다른 수도승 두명이 그를 돌보기 위해 동행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호두나무 위에 지은 작은 나무집에서 기도하며 지냈다. 안토니는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안토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파두아로 가서 지내고자 했다. 안토니는 파두아로 가는 길에 아르첼라(Arcella)의 ‘가난한 클라라 수녀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1231년 6월 13일이었다. 안토니가 36세때였다. 그가 숨을 거둘 때에 길거리의 아이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으며 교회의 종들이 누가 치지도 않았는데 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토니의 시신은 파두아 성당(바질리카)의 카펠레에 안치되었다. 그의 혀는 그의 설교를 생각하여 성물로서 별도로 보관하게 되었다. 혀는 육신과 마찬가지로 부패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안토니의 혀는 세월이 지나도록 더욱 빛나며 부패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파두아의 성당에 영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로 그를 ‘파두아의 안토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는 리스본 출신이기 때문에 ‘리스본의 안토니’라고 부른다. 안토니는 파두아의 수호성인이며 이밖에도 포르투갈의 여러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파두아의 산안토니우스 바실리카

 

안토니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자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교황 그레고리9세는 안토니가 세상을 떠난지 1년 후인 1232년 5월 30일에 그를 성자로 시성했기 때문이다. 안토니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리면 성안토니에게 찾아달라고 간구한다. 1946년 1월 16일, 가톨릭교회는 성안토니를 ‘교회의 의사’로 선언했다. 그러므로 성안토니는 간혹 ‘복음적 의사’(Evangelical Doctor)라고 불린다. 미국 보스턴의 노스엔드(North End)에서는 매년 8월 마지막 주일을 성안토니 축일로 지킨다. 보스턴에 이민 온 이탈리아인들이 1919년부터 그렇게 지키고 있다. 주로 나폴리 근처에 있는 몬테팔치오네(Montefalcione)라는 마을에서 이민온 사람들이다. 이 마을에서는 일찍이 1688년부터 성안토니 축일을 지켜왔다. 보스턴의 성안토니 축일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교축일이다.

 

포르투갈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포르토(Porto)에는 1746년 1천 병상의 병원을 개원하고 산토 안토니오(Santo Antonio)병원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 병원은 웰링톤이 나폴레옹과 해전을 벌이기 위해 설치한 사령부 건물의 건너편에 있다. 오늘날 산토 안토니오 병원은 간이식 수술로 유명하여 또한 최고의 기술을 지닌 비뇨기과로 이름나 있다. 이 병원에 있는 산토 안토니오 병원예배처는 병을 낳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끊일새 없이 방문하고 있다. 일반 방문객들은 이 예배처의 건물이 특이하여서 일부러라도 관광하러 온다. 관광객들은 도우로(Douro)강을 따라 관광선을 타고 와서 언덕 위의 산토 안토니오 병원을 보기도 한다. 17세기에 스페인 선교팀이 당시 야나구아나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어떤 아메리칸 인디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그 날은 성안토니의 축일이었기 때문에 스페인 선교팀은 인디언 마을에 내려 제단을 마련하고 성안토니를 기념하는 미사를 드렸다. 이 마을이 오늘날 텍사스주의 산안토니오(San Antonio)로 발전하였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파두아의 성안토니. 프랑스 슈트라스부르 미술관 소장.

 

브라질과 포르투갈에서는 성안토니가 결혼의 성자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어떤 커플을 화해시켜 행복한 결혼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리스본에서는 산토 안토니오의 축일인 6월 13일을 리스본의 축일로 지키고 있다. 이날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식을 올린다. 거리에서는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브라질에서는 성안토니오 축일을 페스타 후니나(Festa Junina)라고 하여 세례자 요한과 성베드로와 함께 지킨다. 그 전날인 6월 12일은 브라질의 발렌타인 데이이다. 인도의 타밀 나두(Tamil Nadu)에 있는 성안토니교회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성안토니의 목상이 있다. 사람들은 이 목상이 콜레라로 죽어가는 포르투갈 선원들을 모두 구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성안토니는 매일 기적을 행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인도 전지역에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의 리미니에서는 성안토니가 해안에서 물고기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마치 성프란치스코가 새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리미니에서는 성안토니에게 간구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 연유에서 성안토니를 그린 그림에는 간혹 물고기가 등장한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는 성안토니를 그림으로 그릴때 간혹 아기예수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다. 또는 한손에 백합을 들고 있는 그림도 있다. 성안토니의 순결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