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9구 되블링

9. Labanweg - Muthgasse

정준극 2010. 9. 4. 18:51

9. Labanweg(라반베그)에서 Muthgasse(무트가쎄)까지

 

- Labanweg(라반베그): 헝가리 출신의 댄서 겸 안무가 겸 무용이론가인 루돌프 폰 라반(1879-1958)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가 저술한 Labanotation(라바노타치온)은 남성의 움직임을 분석한 세계적인 무용서적이다. 라반은 독일적 표현무용의 창시자이다.

 

무용가 라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헝가리 왕국의 포초니에서 태어났고 영국에서 별세했다.

 

- Langackergasse(랑가커가쎄): 이곳에 있던 농경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Langenaugasse(랑게나우가쎄): 호프부르크 궁정신부로서 유명한 설교가인 알로이스 랑게나우(1747-180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2세와 결혼한 뷔르템버그의 엘리자베트 공주의 대부였으며 종교스승이기도 했다.

 

뷔르템버그의 엘리자베트 공주.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2세의 부인.

 

- Lannerstrasse(란너슈트라쎄): 오버되블링에 있는 길이다. 작곡가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셉 란너(1801-184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요한 슈트라우스1세와 함께 세계적인 비엔나 왈츠를 시작한 인물이다. 란너는 왈츠이외에도 랜들러, 갈로페, 포트푸리스, 무곡, 행진곡등을 작곡했다. 란너가 작곡한 대표적인 왈츠는 Pesther Walzer, Die Werber, Die Hofballtänze, Die Schönbrunner 등이다.

 

요한 슈트라우스1세와 함께 비엔나 왈츠의 대부인 요셉 란너

 

- Leidesdorfgasse(라이데스도르프가쎄): 의사인 막시밀리안 라이데스도르프(1819-188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종합병원(AKH)의 정신과 주임의사를 지냈으며 되블링정신병원에서도 봉사했다.

- Leopold-Steiner-Gasse(레오폴드 슈타이너 가쎄): 정치가인 레오폴드 슈타이너(1857-1927)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 시의회 의원, 남부오스트리 의회의장등을 역임했다.

- Liechtenwerder Platz(리흐텐제르더 플라츠): Werd(베르트)는 섬(Insel)이라는 뜻의 고어이다. 도나우인젤로 가는 길이다.

- Linneplatz(린네플라츠): 스웨덴의 과학자인 칼 폰 린네(1707-177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1735년 발표한 <자연의 체계>에서 처음으로 식물과 동물을 체계 있게 분류하였는다. 이것은 동물과 식물을 닮은 것과 다른 것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또 동식물의 속명과 종명을 기록하여 동식물을 나타내는 방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였고 변종에 대한 개념도 제시하였다. 저서에 <식물 및 꽃의 신비성> <자연의 법칙> 등이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칼 린네

 

- Lissbauergasse(리쓰바우어가쎄): 오버되블링의 시장을 지낸 칼 리쓰바우어(-1861)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Lotheissengasse(로타이쎈가쎄): 소설가인 페르디난트 로타이쎈(1833-1887)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영어 강습을 하였다.

- Ludwig-Gruber-Weg(루드비히 그루버 베그): 작곡가, 성악가, 작가, 지휘자, 극장감독인 루드비히 그루버(1874-196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작곡가로서 그는 오페라, 오페레타, 합창곡(특히 남성합창곡), 교회음악, 징슈필, 민요를 작곡했다. 그러나 그루버는 비엔나 노래를 작곡하고 직접 노래도 부른 사람으로 유명했다. 대표적인 비엔나 노래로서는 Mei Muatterl war a Weanarin(우리 어머니는 비엔나 여인)이 있다.

- Mannagettagasse(만나게타가쎄): 궁정의사이며 수학자인 요한 빌헬름 만나게타(1588-1666)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페르디난트2세, 레오폴드1세, 페르디난트3세의 주치의였다. 그는 1661년에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연고자 숙소를 설립하였다. 이 건물은 아직도 운영중이며 학생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 그의 후손인 요셉 바론 폰 만나게타는 그린칭에 트룸벨호프(주점)를 경영하였다. Mannagettasteig(만나게타슈타이그)도 빌헬름 만나게타와 연관된 길이다.

- Marianne-Schönauer-Gasse(마리안네 쇠나우어 가쎄): 여배우인 마리안네 쇠나우어(1920-1997)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폭스테아터, 라이문트테아터, 란데스테아터, 비너 슈타트테아터, 테아터 안 데어 요셉슈타트 등에서 공연했으며 영화에도 다수 출연했다.

- Maulbertschgasse(마울버츄가쎄): 화가인 프란츠 안톤 마울버츄(1724-1796)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후기바로크화가로서 마리아 트로이 피아리스텐교회의 쿠펠프레스코, 구 비엔나대학교의 천정화, 인스부르크 호프부르크의 대연회장 천정화를 그렸다.

 

화가 프란츠 안톤 마울버츄

 

- Max-Patat-Weg(막스 파타트 베그): 되블링박물관의 건립을 주도한 민속연구가 겸 교사인 막스 파타트(1907-199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Medlergasse(메들러가쎄): 14세기에 지베링 교구사제를 지낸 야콥 데어 메들로어(Jakob der Medloer)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Mestrozigasse(메스트로치가쎄): 작곡가 겸 극장감독인 파울 메스트로치(1851-192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요셉슈타트극장의 지휘자 겸 상임작곡가였고 프라터의 휘르스트극장(Fürst-Theater)의 극장감독을 지냈다. 1900년에는 현재의 폭스오퍼인 황제즉위50주년기념극장(Kaiser Jubilausms-Stadttheater)의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1898년 오픈 직후의 황제즉위50주년 기념극장(현 폭스오퍼)

 

- Michael-Neumann-Gasse(미하엘 노이만 가쎄): 의사인 미하엘 노이만(1945-199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흉곽외과전문의로서 비엔나의사협회장을 지냈고 이어 오스트리아의사협회장도 역임했다.

- Michaelerwaldweg(미하엘러봘트베그): 미하엘러봘트로 가는 길이다. 미하엘러봘트는 바르나비텐수도회(바나바회)에서 나온 말이다. 바르나비텐수도회의 수도승들은 비엔나에서 미하엘러라고 부른다. 바나바회에 속한 교회가 호프부르크 정문 앞에 있는 유명한 미하엘러교회이다.

 

비엔나 호프부르크 앞 미하엘러플라츠에 있는 미하엘러키르헤(성미하엘교회). 바나바회 소속이다.

 

- Mitterwurzergasse(미터부르처가쎄): 궁정배우인 프리드리히 미터부르처(1845-1897)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주로 악마역을 맡았지만 연극예술(Schauspielerkunst)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움(Natürlichkeit)을 강조하였다. 그는 1879-1884년에 비엔나시립극장(Wiener Stadttheater)의 감독을 지냈다. 그후에는 칼극장의 감독을 지냈으며 이어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와 계약을 맺어 활동했다. 그의 부인인 빌헬미네 미터부르처를 기념하기 위해서는 되블링에 미터부르처베그(Mitterwurzerweg)를 만들었다.

- Mitterwurzerweg(미터부르처베그): 배우 프리드리히 미터부르처의 부인인 빌헬미네 미터부르처(1848-1909)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라이프치히국립극장, 비엔나 부르크테아터에서 활동했다. 그는 샤일록, 리챠드3세 등의 역할로 유명했다.

 

프리드리히 미터부르처 

 

- Mooslackengasse(모슬라켄가쎄): 이 지역에 있었던 경작지의 이름이다. 도나우강의 지류인 Mooslacke(모슬라케)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오늘날 하일리겐슈태터 슈트라쎄에 흐르는 하천이다.

- Muchagasse(무하가쎄): 의사인 빅토르 무하(1845-191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AKH(알게마이네 크랑크하우스: 비엔나종합병원)의 원장을 지냈다. 그는 AKH의 의료장비 현대화를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 Mukenthalerweg(무켄탈러베그): 이 지역에 있던 목초지의 명칭이다. Muke는 Mücke(뮈케)에서 연유한 단어로 모기라는 뜻이다. 목초지에 모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 Muthgasse(무트가쎄): 포도원을 경영했던 레오폴드 무트(1854-1893)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하일리겐슈타트 의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포도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비엔나에서 최초로 누쓰도르프에서 1890년 제1회 ‘포도재배의 날’(Weinhauertag)를 제정하였다. 그는 나중에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의회의원까지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