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9구 되블링

11. Paletzallee - Pyrkergasse

정준극 2010. 9. 5. 06:55

11. Paletzallee(팔레츠알레)로부터 Pyrkergasse(피르커가쎄)까지

 

- Paletzallee(팔레츠알레): 16구 오타크링에 Paletzgasse(팔레츠가쎄)가 있다. 가톨릭 신부인 에마누엘 팔라츠(1816-190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19구 되블링의 노이슈티프트 암 봘데에 있는 팔레츠알레도 에마누엘 팔라츠 신부를 기념하여 지은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다. 에마누엘 팔라츠 신부는 오타크링에 오스트리아 최초의 탁아소(Kinderbewahranstalt)를 세웠다.

- Pantzergasse(판처가쎄): 여관주인인 요한 판처라는 사람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1820년에 이 거리에 처음으로 건물을 짓고 살았으며 나중에 여관과 식당을 경영했다.

- Paradisgasse(파라디스가쎄):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1759-182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3살 때에 눈이 멀었으나 피아노를 배워 뛰어난 연주솜씨를 보여주었으며 협주곡 등 작곡에서도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아버지(파라디스)는 마리아 테레지아 궁정의 관리로 있으면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대단히 존경하여 딸의 이름을 마리아 테레지아라고 지었다.

 

장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 그러고보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비슷하게 생겼다.

 

- Pater-Zeininger-Platz(파터 차이닝거 플라츠): In der Krim(인 데어 크림) 교회의 신부인 요셉 차이닝거(1926-199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가톨릭소년노동자연맹을 창설하였다.

- Paula-Wessely-Weg(파울라 베쎌리 베그): 여배우인 파울라 베쎌리(1907-2000)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도이첸 폭스테아터, 테아터 인 데어 요셉슈타트, 부르크데아터에서 연극배우로서 활약했으며 잘츠부르크 축제에도 참여했고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배우인 아틸라 회르비거(Attila Hörbiger)와 결혼하였다.

 

1938년 3월 30일 나치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대연회장에 문인예술가들을 초청하고 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들의 지지를 당부하였다. 왼쪽 서 있는 사람이 나치 선전상인 요셉 괴벨스,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거트루드 자이쓰-인크바르트(나치 합병에 앞장섰던 변호사 출신의 아르투르 자이쓰-인크바르트의 부인. 아르투르는 뉘른버그 군사재판에서 전범으로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화가 겸 조각가인 카예탄 뮐만, 그리고 그 다음 여자가 파울라 베쎌리이다. 파울라 베쎌리는 연극인-영화인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아마 대표로 참석하라고 그러니까 마지못해 참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나치에 동조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19구 그린칭공동묘지에 있는 파울라 베쎌리와 남편 아틸라 회르비거의 묘비

  

- Paula-Ehrlich-Gasse(파울라 에를리히 가쎄): 독일의 화학자, 의사, 혈청연구가, 면역학자인 파울 에를리히(1834-1935)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암의 케모테라피(화학요법)를 개발하였으며 장질부사의 혈청을 발견하였다. 1908년에는 일랴 일리이치 메츄니코프와 함께 면역학의 기초를 놓았다는 공적으로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노벨의학상을 받은 파울라 에를리히

 

- Peezgasse(페츠가쎄): 기업가이며 경제학자이고 정치가이며 예술사학자인 알렉산더 폰 페츠(1824-191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수많은 연구프로젝트와 정치연구소를 지원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기여는 포스트슈파르카쎄(Postsparkasse: 우편저금은행)를 설립을 주도한 것이다. 또한 최초의 도나우증기선회사(DDSG)를 설립하였고 보헤미아의 철도사업도 주관하였다. 그는 1903년에 슈봐르첸버그플라츠에 상공회의소(Haus der Industrie)를 건축하였다.

 

페즈가 설립한 오스트리아 상공회의소(Haus der Industrie). 비엔나 시내의 슈봐르첸버그플라츠에 있다.

 

- Perntergasse(페른터가쎄): 인스부르크대학교를 거쳐 비엔나대학교의 우주물리학 교수를 지낸 기상학자 요셉 마리아 페른터(1848-190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의 호엔 봐르테에 설치한 오스트리아기상-지진중앙연구소의 소장도 역임하였다.

 

호엔 봐르테의 오스트리아 기상지진중앙관측소(ZAMG). 레이더 측정기가 높이 세워져 있다.

 

- Peter-Altenberg-Gasse(페터 알텐버그 가쎄): 작가이며 시인인 페터 알첸버그(일명 리하르트 엥글랜더: 1859-191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짚시와 같은 생애를 보냈으며 비엔나의 카페시대를 주도하였다. 그는 특히 짧은 내용의 풍자시로서 유명했다. 페터 알텐버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오스트리아의 문인들’ 편과 비엔나 카페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카페 센트랄’ 편을 참고하기 바람.

 

카페 센트랄에 앉아 있는 페터 알텐버그. 지금은 이것과 똑같은 모습의 기념상을 만들어 놓았다.

 

- Peter-Jordan-Strasse(페터 요르단 슈트라쎄): 농학자인 페터 요르단(1751-1827)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 자연사학 교수를 지냈으며 뵈젠도르프(Vösendorf) 및 락센부르크(Laxenburg)의 황실농장장을 지냈다.

- Pfarrplatz(화르플라츠): 이곳에 있는 하일리겐슈타트 교구교회인 성미하엘교회와 관련하여 붙인 이름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성미하엘교회. 하일리겐슈타트는 성인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대천사장인 성미하엘을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화르플라츠. 성미하엘교회와 왼쪽의 집은 베토벤기념관으로 현재 아래층은 호이리거이다.  

 

- Philippovichgasse(필리포비치가쎄): 경제인이며 정치인인 오이겐 필리포비치 폰 필립스버그(Eugen Philippovich von Philippsberg: 1858-1917)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 경제학 교수를 지냈으며 정치인으로서는 1896년에 사회정치당의 창설멤버중의 하나였다. 그는 사회주의국가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 Pokornygasse(포코르니가쎄): 식물학자이며 교육가인 알로이스 포코르니(1826-1886)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식물학 연구를 위해 평생을 보냈다.

- Probusgasse(프로부스가쎄):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232-28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이 지역에 넓은 포도원을 소유하고 포도주를 생산하였다. 프로부스가쎄 6번지(예전의 헤렌가쎄 12번지)는 한때 베토벤이 살면서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테스타멘트)을 쓴 집이다.

 

프로부가쎄 6번지. 한때 베토벤이 살던 집으로 현재는 베토벤기념관(프로부스하우스)이다. 베토벤이 살던 당시의 집이 아니며 새로 보수한 것이다.

 

- Püchlgasse(퓌흘가쎄): 교사로서 되블링구 장학관을 지낸 안톤 퓌흘(1852-1914)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Pyrkergasse(피르커가쎄): 성직자이며 시인인 요한 라디슬라우스 피르커(1772-1847)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릴리엔펠트(Lilienfeld) 수도원장, 집스(Zips) 주교, 에를라우/에거(Erlau/Eger) 대주교였으며 베니스 총대주교(Patriarch von Venedig)를 역임했다. 문인으로서 그는 주로 역사드라마를 썼다. 그의 작품은 종교적인 열정과 애국적인 사상을 혼합한 것이다.

 

성직자이며 문인인 요한 라디슬라우스 피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