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3구 리징

[참고자료] 지휘자 겸 작곡가 펠릭스 오토 데쏘프(Felix Otto Dessoff)

정준극 2010. 10. 7. 23:12

[참고자료]

지휘자 겸 작곡가 펠릭스 오토 데쏘프(Felix Otto Dessoff)

 

펠릭스 오토 데쏘프

 

비엔나의 23구 리징에는 데쏘프가쎄라는 길이 있다. 독일의 지휘자 겸 작곡가인 펠릭스 오토 데쏘프를 기념하여서 붙인 이르이다. 데쏘프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저으로 유명한 비엔나 필하모닉을 창설한 주역 중의 한사람이라는데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데쏘프는 작곡가로서 두개의 바이올린, 비올라, 두개의 첼로를 위한 현악4중주곡을 비롯하여 몇편의 가곡을 작곡했고 합창곡집을 발간하였다. 역시 음악가인 데쏘프의 딸 마르가레테는 데쏘프와 함께 뉴욕을 방문했을 때 데쏘프합창단을 창단한바 있다. 비록 마르가레테는 세상을 떠났지만 데쏘프 합창단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데쏘프가 창설을 주도한 빈필이 쇤브룬 궁전의 정원에서 여름음악회를 열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음악회를 보러 왔다.

 

데쏘프는 1835년 오스트리아제국 시절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서 당대의 이그나즈 모셀레스(Ignaz Moscheles)로부터는 피아노를, 모리츠 하우프트만(Moritz Hauptmann)과 율리우스 이츠(Julius Rietz)로부터는 작곡을 배웠다. 그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 것은 지휘자로서였다. 데쏘프는 19세의 젊은 나이에 비엔나 궁정오페라(현재의 슈타츠오퍼)의 객원지휘자가 되어 비엔나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그는 지휘자로서 약 20년을 활동했다. 그러다가 1875년 지휘자의 직분을 떠나 비엔나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데쏘프는 브람스와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데쏘프는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 여러 편의 초연을 지휘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휘는 1876년 브람스의 저 유명한 교향곡 제1번의 초연을 지휘한 것이었다. 데쏘프는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몇몇 작품을 작곡하였으나 지휘자로서 활동하는 바람에 작곡은 크게 신경쓰지 못하였다. 아마 데쏘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현악4중주 F 장조일 것이다. 데쏘프는 이 작품을 브람스에게 헌정하였다. 데쏘프는 또한 두개의 바이올린과 1개의 비올라 2개의 첼로를 위한 현악4중주를 작곡하였으며 여러 편의 가곡과 합창곡을 작곡했다. 그는 훗날 잠시 프랑크푸르트오페라하우스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를 지낸 일도 있다. 데쏘프는 189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7세였다.

 

데쏘프의 딸인 엠마 마르가레테 그레첸 데쏘프는 1874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1944년 스위스의 로카르노(Locarno)에서 세상을 떠난 여류음악인이었다. 마르가레테는 여섯 살 때에 프랑크푸르트오페라하우스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프랑크푸르트로 왔다. 마르가레테는 프랑크푸르트의 호흐박사음악원(Dr Hoch's Konservtorium)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러나 어떤 오페라 소프라노로부터 성악을 공부하면서 잘못되어 목소리를 아주 버리게 되었다. 만일 마르가레테가 성악가가 되었다면 아마 훌륭한 합창지휘자는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성악을 포기한 마르가레테는 호흐박사음악원의 합창지휘자가 되었다. 이어 마르가레테는 '데쏘프여성합창단'을 조직하여 1907년 호흐박사음악원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당시만해도 여성합창단이 활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여성합창단을 조직하여 연주회를 가진 마르가레테의 이름은 순식간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어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바흐동호회합창단을 지휘했으며 1918년에는 독일 최초의 마드디갈 앙상블을 조직하여 지휘했다.

 

마가레테 데쏘프

 

한편, 뉴욕에서는 1905년에 유럽스타일의 음악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아래 음악예술원(Institute of Musical Art)가 문을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대학인 줄리아드음악학교의 전신이었다. 뉴욕의 음악예술원은 프랑크푸르트의 호흐박사음악원과 교류를 갖게 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마르가레테는 뉴욕 음악예술원으로부터 합창 지휘를 맡아 달라는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르가레테는 뉴욕에서 마드리갈합창단을 설립하였다. 이어 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인 1920년대에 여러 합창단을 조직하여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마르가레테는 1924년에 아데스디여성합창단(Adesdi Chorus of Women's Voices)를 설립하였고 1929년에는 뉴욕아카펠라싱거스(New York A Cappella Singers)를 조직하였다. 1930년 이 두 합창단이 합하여서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데쏘프합창단'(Dessoff Choirs)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쏘프합창단

 

마르가레테 데쏘프는 1936년 미국에서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합창단 업무에서 은퇴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치의 독일로 돌아가서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마르가레테는 스위스로 건너가서 로카르노라는 마을에서 살다가 1944년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르가레테 데쏘프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데쏘프합창단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데쏘프합창단은 수많은 연주회를 가지는 중에 최근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합창을 맡아 녹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