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오페라 성악가 일화

프롤로그(1)

정준극 2010. 10. 20. 21:17

시작하면서(프롤로그) - 1

 

오페라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수집하여 소개코자 한다. 오페라와 오페라 작곡가들과 오페라 성악가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하 하는 목적에서이다. 그들이 어떤 기이한 행동을 했는지, 어떤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웃기는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 보았다. 이곳 저곳에서 자료를 수집하느라고 시간을 좀 빼앗겼지만 그런대로 노력을 다한 자료들이었다. 부디 심심할 때에 읽어서 지루함이나 벗게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프리마 돈나]

멕시코를 여행하던 어떤 소프라노가 산적들에게 붙잡혔다. 별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대신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산적두목은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산적두목은 붙잡혀 온 여자가 '나는 프리마 돈나이다'라고 소리치자 이 여자가 정말로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일것 같으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소프라노는 어떻게 증명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두목은 오페라 아리아를 들어보면 알수 있느니 한 번 불러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프라노는 '아니, 무어라구요? 아리아를 부르라구요? 말도 안돼요! 이런 쓰레기 같은 산적들 앞에서 아리아를 부르라구요? 그건 그렇다 치고, 조명도 없고, 의상도 없고, 칸막이 좌석에는 돈 많은 귀족들도 없고, 아래층 구석에는 말많은 평론가들도 없고, 커튼 콜을 위한 커튼도 없고, 게다가 오페라가 끝나면 출연료를 가져다 줄 기획사 대표도 없고...죽어도 못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들은 산적두목은 '와, 과연 진짜 프리마 돈나이다!'라며 풀어주라고 지시했다.

 

[우아한 디바] - 릴리 레만

바이로이트 축제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도유망한 젊은 신인 릴리안 노르디카(Lilian Nordica)는 오페라의 단역을 맡아 출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는데 릴리 레만(Lilli Lehmann)과 맞부딛히게 되었다. 릴리 레만이라고 하면 1876년 바이로이트의 오픈 때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그날 저녁 무대에서는 브륀힐데를 맡을 소프라노였다. 신인 릴리안 노르디카는 유명한 릴리 레만을 만나자 '레만 여사님, 언제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요..'라며 존경하는 의미에서 정중하게 말했다. 레만은여자의 직감으로서  노르디카가 자기의 라이벌이 될 것을 느꼈다. 레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노르디카에게 '이번 시즌에는 제자들을 받지 않아요'라고 우아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재미있는 에피소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당시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레만의 그 오만하면서도 노르디카를 얕잡아 보는 듯한 모습을 보고 '와, 대단하다. 어떻게 한마디로 노르디카를 저렇게 무시할수 있을까?'라며 입을 모았다고 한다.

 

마담 릴리 레만

 

[버는 돈이 다르다] - 심스 리브스

유명한 테너 심스 리브스(Sims Reeves)가 기차역에서 갈아 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포터가 리브스를 알아보고 인사를 드린후 '선생님은 돈을 참 많이 버시죠? 저는 힘들게 일하는데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삽니다. 아마 선생님 수입의 몇 십분의 일 밖에 되지 않을꺼예요. 그렇지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리브스가 포터에게 '젊은이는 도대체 얼마를 버는가?'라고 물었다. 포터는'1주일에 18 실링 밖에 벌지 못합니다. 1년 내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들은 리브스는 느닷없이 자세를 바로 잡더니 성악가들이 발성연습을 하는 스타일로 '도 미 솔 도'라고 음정에 따라 딱 네마디만 소리를 내었다. 리브스는 '여보게! 들었나? 지금 내가 지른 소리가 자네 1년치 벌이라네!' - 리브스는 평생 다른 영국이나 미국 성악가들처럼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고치지 않았다. 그대로 심스 리브스를 고수했다. 하지만 비록 이름이 영국식이었지만 일단 노래를 부르면 이탈리아 본고장의 테너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였다.

 

심스 리브스 

 

[바보가 된 판첼리]

이탈리아의 테너 주세페 판첼리(Giuseppe Fanxelli)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라 스칼라 초연에서 라다메스 장군을 창조한 인물이다. '아이다'의 초연 이후 판첼리는 일약 사회저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테너 치고는 좀 무식한 편이었다. 어느날 영국의 리버풀 필하모닉 협회를 방문했을 때 만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방명록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쓰면서 주세페라는 이름은 빼먹고 판첼리라는 이름만 겨우 썼다. 그나마 판첼리의 경우에도 Fancelli 라고 써야 하는데 c 와 l을 빼먹고 Faneli 라고 썼다. 잠시후 판첼리는 자기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무안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판첼리는 자기의 무식함을 모면하기 위해 Faneli 라고 쓴 옆에다가 '최고의 테너'라는 뜻의 Primo tenore assoluto라고 적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최고의 테너라고 치켜 세운 것부터가 상식이하였지만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이 위대한 테너를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잉크병을 잘못 건드려서 잉크가 흘러 끝 글자인 assoluto의 oluto라고 쓴 것을 지어버렸다. 그리하여 세기의 테너 주세페 판첼리가 방명록에 쓴 글은 Faneli Primo tenore ass 였다. 번역하면 '최고 바보 테너 파넬리'였다. 판첼리는 이렇듯 조금 무식하기도 했고 무대에서의 연기도 신통치 않았지만 하이 C 음 하나만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그래서 그의 무식이 사면을 받았던 것 같다.

 

'아이다'의 라 스칼라 초연 당시 라다메스 장군 역할을 맡은 주세페 판첼리를 스케치한 그림

 

[제대로 부를 때까지 앙코르]

비엔나 출신의 영화배우 발터 슬레자크(Walter Slezak: 1902-1983)이라고 하면 워낙 입담이 좋아서 그와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그가 전하는 오페라 '팔리아치'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 어느때 그는 나폴리에서 '팔리아치'를 관람하게 되었다.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다른 오페라와는 달이 막이 오르기 전에 어릿광대 토니오가 무대 앞에 나와서 '자, 이제부터 비극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니 잘 보아 주세요..' 운운하는 프롤로그가 있다. 어떤 테너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이날 공연에서도 토니오가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앞에 나와서 무어라고 말하는데 관중들은 테너가 도대체 우물우물하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궁금해 하였다. 프롤로그가 끝나자 관중들은 박수 대신에 야유를 보냈다.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치며 '도대체 무슨 말을 중얼거린 것이냐?'며 오히려 궁금해 했다. 그러자 토니오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왜들 휘파람을 불고 떠들며 난리들인가?'(Aspettate il tenore!)라고 말하더니 이어 '조금 있으면 진짜 테너를 들을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들어갔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도 진짜 대사인줄 알았다고 한다. 잠시후 소프라노가 등장하였다. 네다(Nedda)였다. 아리아를 부르고 나자 별로 감동적인 것도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관중들은 '앙코르'를 외쳐댔다. 특히 천정에서 가까운 갤러리의 관중들이 더 극성스러웠다. 소프라노는 기가 살아난듯 다시 아리아를 불렀다. 먼저 부른 것보다 오히려 더 못부른것 같은데 관중들은 앞서보다 더 강력하게 '앙코르'를 소리쳤다. 소프라노가 또 다시 아리아를 불렀다. 더 못했다. 그런데도 아리아가 끝나자 또 다시 앙코르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일어나더니 '제대로 부를 때까지 계속 앙코르야!'라고 소리쳤다. 관중들은 그제야 자기들의 뜻이 표현된 것으로 알고 환호하였다. 별난 앙코르도 다 있었다.

 

비엔나 출신의 영화배우 발터 슬레자크 

 

[주디타 파스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었다. 자기 딸이 노래를 아주 잘하는줄로 믿는 어떤 아버지가 어느날 저녁의 상류사회 파티에서 딸이 노래를 부를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아버지는 잘만하면 딸이 오페라 소프라노로서 성공의 길을 걸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따라 아버지는 감기가 심하여서 딸과 함게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가 딸과 함께 갔다. 아버지는 집에서 어서 두 사람이 돌아와 어땠는지 보고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얼마후 어머니와 딸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도대체 어땠냐? 잘했냐? 사람들이 난리들이지?'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나 원 참 그 사람들도...아니, 우리 딸을 그 유명한 당대의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 1797-1865)와 같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딸이 노래를 부르자 마자 '파스타, 파스타'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라고 신이 나서 설명했다. 어머니도 들은 풍월은 있어서 이탈리아의 세계적 소프라노인 주디타 파스타의 이름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딸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글세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파스타, 파스타'라고 소리를 쳐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람들은 딸을 향하여 '바스타(Basta)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연주회에서 '바스타!'라고 소리치는 것은 '집어 쳐라!' '꺼져라!'라는 뜻이다. 공연히 애꿎은 주디타 파스타만이 오해를 받았다. 그나저나 그 어머니에 그 딸!

 

20세기에는 칼라스만이 그와 비교될수 있다는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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