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오페라 성악가 일화

프롤로그(2)

정준극 2010. 10. 21. 07:57

시작하면서(프롤로그) - 2

 

[캬풀 스타일의 이발]

19세기말 프랑스 툴루스 출신의 테너 조셉 빅토르 캬풀(Joseph Victor Capoul: 1839-1924)은 너무나 인기가 높아서 심지어는 그의 이발 스타일까지 a la Capoul(알 라 캬풀: 캬풀 스타일) 이라고 하여 너도나도 선호했다. 어느날 캬풀이 이발소에 갔을 때 이발사가 '어떻게 해 드릴까요?'라고 묻자 캬풀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여 짐짓 겸손하게 '알 라 캬풀'로 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러자 이발사는 캬풀의 머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닌데요. 선생님은 캬풀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아요. 알 라 레츠케(a la Reszke)로 해야 할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장 드 레츠케(Jean de Reszke) 역시 당대의 위대한 테너였다.

 

조셉 빅토르 카풀. 서정적인 아름다운 음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비벌리 실스의 실버 드레스]

어떤 프리마 돈나라는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지르고 위협하고 모욕을 주고 집어 던지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야 권위가 올라가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비벌스 실스(Beverly Sills: 1929-2007)는 좀 달랐다. 말로 해서 안들으면 행동을 보여주었다. 어느 해에 실스는 라 스칼라에서 로시니의 요페라 L'Assedio di Corinto(고린도 공성)에 출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인 파미라(Pamira) 역은 오래전부터 레나타 스코토(Renata Scotto)가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임신을 하는 바람에 비벌리 실스가 대신 맡게 되었다. 실스는 스코토의 역할을 물려 받았을 뿐만 아니라 스코토가 사용하려던 의상도 물려 받았다. 파미라의 의상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황금색이었다. 하지만 실스는 황금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실스는 은색을 좋아하였다. 실스는 의상을 담당하는 여직원에게 황금색 의상을 개조하여서 은색의 의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의상담당자는 '씨 씨'하면서 걱정말라고 대답했다. 얼마후 피아노 리허설이 있게 되었다. 실스는 자기가 요구한 의상이 준비되었는지 알아보았지만 우선 의상담당자부터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피아노 리허설이 지연되었다. 한참 후에 겨우 의상담당자를 찾았다. 하지만 의상은 아무런 변함이 없이 황금색 그대로였다. 다시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씨 씨'라면서 당장이라도 고칠것 처럼 대답하였다. 얼마후 이번에는 진짜 드레스 리허설이 있게 되었다. 실스가 의상실에 가서 파미라의 의상을 찾아보니 역시 황금색 의상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실스는 황금색 의상을 들고 무대로 걸어 들어가서 의상담당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가 오자 실스는 아줌마에게 가위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실스는 가위로 그 자리에서 황금색 의상을 반으로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의상담당 아줌마에게 미소를 띠면서 '이제 은색 의상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의상담당 아줌마가 밤을 새워서 은색 의상을 만들었음을 물론이다. 때로는 과감한 극약처방도 필요하다.

 

 비벌리 실스

 

[질리-예리차 전쟁]

서로 앙숙인 성악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대에서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무대 뒤에서는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있다. 엔리코 카루소와 제랄딘 화라(Geraldine Farrar)가 그렇다. 메트로에서 또 다른 앙숙 세트가 있다. 베냐미노 질리와 마리아 예리차이다. 어느 때 조르다노의 페도라(Fedora)를 공연할 때의 일이다. 대본에 의하면 질리가 예리차를 거부하면서 밀쳐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질리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예리차를 너무 세차게 밀어내는 바람에 예리차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케스트라 피트로 떨어질뻔 하다가 겨우 일어서서 죽을 힘을 다하여 나머지 장면의 노래를 모두 마쳤다. 무대 뒤로 돌아온 예리차는 질리에게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서 성질을 부렸다. 질리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변명하였다. 예리차는 남편 포퍼 남작(Baron von Popper)에게 어서 질리에 결투를 신청하라고 다그쳤다. 포퍼 남작은 예리차가 출연하는 날에는 항상 무대 뒤에서 지키고 있었다. 질리와 포퍼남작의 결투는 사람들이 말려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의 해프닝은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질리가 의도적으로 예리차를 세차게 밀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질리가 적극적으로 해명함으로서 일단락 되었지만 분을 참지 못한 예리차는 메트로 감독인 가티 카사짜(Gatti Casazza)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질리와 함께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베냐미노 질리. 라 조콘다에서. 1914년

 

가티 카사짜는 '말도 안된다. 그러면 곤란하다'면서 며칠 후에는 두 사람이 토스카에 함께 나오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리차로서도 이미 계약된 공연이어서 어쩔수가 없었다. 드디어 토스카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아무 탈 없이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예리차는 질리와 함께 무대인사를 하기 싫다고 하면서 혼자 나가서 무대인사를 하였다. 예리차가 무대 뒤로 들어갔지만 청중들은 단 한번의 무대인사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예리차와 질리의 이름을 소리쳤다. 질리는 이미 집으로 가버린 후였다. 한참후에 예리차가 다시 등장하였다. 질리와 함께가 아니라 지휘자 주세페 밤보세크(Giuseppe Bamboschek)의 팔에 기대어 나타났다. 그러면서 청중들에게 '질리는 나에게 상냥하지 않다'(Gigli not nice to me)라고 말했다. 영어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용인즉 '질리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뜻이었다. 그러기를 토스카가 공연되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메트로 감독인 가티는 그저 '쓰레기 같으니라구!'라고 중얼거리면서 두 사람 모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마리아 예리차 

 

[헨델과 디바]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의 프란체스카 쿠조니(Francesca Cuzzoni: 1696-1778)은 18세기 초반 전유럽을 풍미하였던 프리마 돈나였다. 그의 아름다운 음성은 천상의 소리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성깔 하나만은 대단했다. 한마디로 자기의 재능과 인기를 믿고 안하무인이었으며 특히 작곡가들을 우습게 여기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어느날 헨델이 당대의 쿠쪼니를 위해 아리아를 작곡하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쿠쪼니는 런던에서 헨델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헨델의 새로운 아리아에 대하여 까탈스럽게 굴었다. 그래서 마치 아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쿠쪼니는 헨델에게 '나는 노래를 부르려면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지금 이 방은 공기가 신선하지 못하니 노래를 부르지 못하겠다는 의미였다. 헨델도 성미 하나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었다. 쿠쪼니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난 헨델은 '그래요?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당신을 항상 악마처럼 생각했오. 하지만 이제 내가 더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하 하오. 나야 말로 악마의 왕자요. 자,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구요? 좋아요! 내가 신선한 공기를 드리리다'라면서 갑자기 쿠쪼니를 번쩍 안아 들고 창문으로 가서 밖으로 내던질 기세였다. 창문 밖에는 더 신선한 공기기 있으니 밖으로 던져버리겠다는 뜻에서였다. 깜짝 놀란 쿠쪼니는 '잠깐! 이제 됐어요. 이 방안에도 신선한 공기는 충분해요!'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쿠쪼니는 헨델이 새로 작곡한 아리아를 정말 훌륭하게 불렀다. 그런데 한마디 더 한다면, 헨델의 영어는 아직도 독일어 악센트가 강하게 묻어 있는 것이어서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했다. 헨델이 쿠쪼니 내뱉은 말을 듣는 대로 표현하자면 I alvays knew you vere a fery tevil. But I shal now let you know zat I am Beelzeup, ze prince of de tevils! you vant fresh air! I giff you some fresh air!'였다.

 

프란체스카 쿠쪼니 

 

[메리 앤 페이튼의 청구서]

베버의 오페라 '오베론'의 세계 초연에서 하룬 알 라시드의 딸 레이자(Reiza)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소프라노 메리 앤 페이튼(Mary Ann Paton: 1802-1864)은 어느날 졸부(파르브뉘: Parvenu)가 된 어떤 부부의 파티에 초청을 받았다. 파티가 한창일때 졸부 부부는 메리 앤 테이튼에게 갑자기 노래 한 곡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메리 앤 페이튼은 당황하여 '나는 노래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참가만 하려고 온 것이니 양해하여 달라'고 말했으나 졸부 부부는 막무가내며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자기 집의 파티에 유명한 메리 앤 페이튼이 참석하여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면 손님들이 모두 부러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메리 앤 페이튼이 노래부르기를 계속 사양하자 여주인은 '이를 어쩌나! 손님들에게 모두 당신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발표했는데...'라면서 다시한번 제발 노래를 불러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메리 앤 페이튼은 '성악가가 노래를 부른다고 발표되었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지요. 노래를 부를수 밖에 없군요!'(When a singer is announced, a singer must perform.)라면서 피아노 앞에 다가가서 직접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두들 무척 감격해 하였다. 메리 앤 페이튼은 앙코르까지 받아 두어 곡을 더 불렀다. 파티를 주과한  졸부 부부는 입이 찢어질만큼 기분이 좋았다. 유명한 메리 앤 페이튼이 자기 집의 파티에 와서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으니 우쭐할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졸부 부부는 메리 앤 페이튼이 보낸 청구서 한장을 받고 깜짝 놀랐다. 출연료 50 파운드를 지불하라는 청구서였다. 당시에 50파운드라면 대단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청구서 말미에는 '성악가가 노래를 부른다고 발표되었으면 주최 측은 반드시 출연료를 지불해야 합니다'(When a singer is announced, an impresaria must pay.)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으로 런던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메리 앤 페이튼

 

[가장 위대한 사람은?]

극장평론가인 제임스 아게이트(James Agate)가 음악평론가인 네빌 카르두스(Neville Cardus)에게 '오늘날 누가 가장 훌륭한 여배우인지 세 사람만 꼽아보시라'고 말했다. 카르두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페기 애쉬크로프트(Peggy Ashcroft)와 에디트 에반스(Edith Evans)는 세 사람 중에 포함될수 있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훌륭한 사람은 로테 레만(Lotte Lehmann)이 아닐수 없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게이트는 '아니, 성악가가 아니라 여배우 말입니다.'라고 재차 물었다. 카르두스는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여배우(Actress)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페기 애쉬크로프트와 에드트 에반스는 모두 영국의 뛰어난 성격 여배우였다. 로테 레만은 이들보다 뛰어난 연기자였다.

 

 

로테 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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