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오페라 성악가 일화

프롤로그(3)

정준극 2010. 10. 22. 04:46

시작하면서(프롤로그) - 3

 

[스칼라의 코끼리]

가티(Gatti)가 라 스칼라의 시즌을 책임지고 있을 때 도니제티의 Linda di Chamounix(린다 디 샤무니)를 공연하게 되었다. 전설적인 로지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1876-1945)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오페라 '린다 디 샤무니'는 내용이 평범한 편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상당부분을 커트하고 공연케 되었다. 대신 막간에 발레를 공연하여 즐거움을 주기로 했다. 발레는 Amor(아모르)라는 제목이었다. 바바로싸를 물리친 역사적으로 유명한 '레냐뇨 전투'에 대한 스토리였다. 발레의 어떤 장면은 대규모 전투장면으로서 현실감을 주기 위해 말과 소, 그리고 코끼리 한마리를 등장시키기로 했다. 코끼리는 다른 도시의 동물원에서 빌려오기로 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여 밤중에 기차로 옮겨왔다. 기차에서 내린 코끼리는 라 스칼라까지 걸어서 가야했다. 일부러 대로를 피하고 골목길로 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떤 자동차 한대가 불을 비추며 나타나자 놀란 코끼리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달려왔다. 경찰서장 쯤 되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어서 코끼리를 체포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라 스칼라에서 나온 직원이 '무슨 소리요? 이 코끼리는 라 스칼라의 출연자란 말이요!'라고 대답했다. 잠시후 코끼리는 얌전해 졌고 경찰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갔다. 그날밤 파푸스(코끼리의 이름)가 출연한 '아모르'는 대성공이었다. 관중들은 파푸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튿날 신문은 '린다 디 샤무니'에서는 파푸스가 가장 훌륭한 연기자였다. 로지나 스토르키오 다음으로!'라고 대서특필하였다.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프리마 돈나인 로지나 스토르키오를 따라갈 존재는 없었다. 아무튼 이후 파푸스는 여러번 라 스칼라의 무대에 등장하여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위대한 라 스칼라의 명성!

  

 

라 스칼라의 프리마 돈나 로지나 스토르키아 

 

베니스 출신으로 밀라노에서 활동했던 로지나 스토르키아는 역사적으로 1904년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 세계초연되었을 때 타이틀 롤인 초초상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로서 유명하다. 로지나 스토르키아는 이밖에도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 초연에서 미미(1897), 역시 레온카발로의 '차라'(Zara) 초연에서 타이틀 롤(1900), 조르다노의 '시베리아' 초연에서 스테파나(1903), 마스카니의 '로돌레타' 초연에서 타이틀 롤(1918)을 맡아 음악사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다.

 

[도로시 파커의 오페라 사랑]

유명한 시인 겸 극작가 겸 평론가인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는 오페라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파커는 헐리우드에서 '스타의 탄생'(A Star in Born)의 각본을 써서 아카데미 상을 받는 등 많은 활동을 한 당대의 예술가였다. 파커는 오페라를 애호하였지만 그렇다고 디바처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수는 없어서 항상 아쉽게 생각했다. 파커는 뉴욕에 있으면서 메트로에도 자주 찾아갔다. 메트로의 어떤 수위는 파커가 유명한 소프라노인줄 알고 줄곧 인사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파커는 자주 메트로를 방문하여 당대의 디바들과 교분을 가졌다. 그때쯤해서 메트로에서는 마리아 예리차가 스펙터클한 데뷔를 하였고 제랄딘 화라가 역시 스펙터클한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뉴욕의 신문들은 연일 마리아 예리차와 제랄딘 화라의 얘기로 쉴틈이 없었다. 맨하튼의 공기는 소프라노로 충만할 정도였다. 어느날 파커는 뉴욕 언론계의 유명한 평론가인 알렉산더 울코트(Alexander Woollcott)와 함께 무개마차를 타고 메트로 부근을 가고 있었다. 일단의 군중들이 예리차와 화라의 사진이 들어 있는 피켓들을 들고 메트로쪽으로 바삐 가고 있었다. 아마 예리차의 즐거운 데뷔와 화라의 용감한 은퇴를 가념하는 무슨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본 파커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을 생각했고 디바들이 커튼 콜을 받는 장면을 연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마차에서 일어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으로 키스를 보내기 시작했다. 파커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디바라고 착각한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파커와 울코트를 알아보고 박수를 보내자 파커는 더욱 용감해 져서 '다시 돌아올께요. 그때는 카르멘을 부르겠어요. 여러분들을 위해서!'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마치 화라가 고별 무대에 선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오페라 사랑도 이쯤되면 가관이 아닐수 없다. 착각은 자유! 하지만 사랑스러운 착각!

 

도로시 파커.  

 

[아로요의 등장]

루돌르 빙(Rudolf Bing)이 메트의 총감독으로 있을 때 인종차별 문제를 서서히 제쳐나가기 시작하여 흑인이나 다른 소수민족 출신들도 메트의 무대에 데뷔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흑인 데뷔자는 댄서인 쟈넷 콜린스(Janet Collins)였다. 이후 마리안 앤더슨이 뛰어난 음성으로 메트의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레온타인 프라이스가 뒤를 이었다. 아직도 인종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던 때에 프라이스의 메트 등장은 대단한 센세이션이었다. 한편, 그때만해도 메트의 출연자 전용 출입문으로 흑인이 드나든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얼마후 마르니타 아로요(Martina Arroyo: 1937-)가 메트에 합류하였다. '돈 카를로스'에서 천상의 음성을 들려주었던 아로요는 그야말로 빛나는 별과 같다는 찬사를 받았다. 어느날 아로요가 메트의 출연자 전용문을 통해서 들어가려고 할때에 수위는 얼른 문을 열어주면서 '안녕하세요. 미쓰 프라이스'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웃는 얼굴에 어찌 무안을 주랴! 아로요는 그저 '저는 또 다른 프라이스랍니다'라고 말하고 웃으면서 들어갔다. 그로부터 메트의 직원들 사이에는 프라이스와 아로요를 구분하는 공부가 시작되었다. 때로는 얼굴을 붉히는 것보다 웃음으로 대하는 것이 더욱 존경을 받는다.

 

마르티나 아로요 

 

[레코드의 뒷면]

조앤 해몬드(Joan Hammond: 1912-1996)라고 하면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오스트랄리아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스트랄리아의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는 소프라노이다. 그는 뛰어난 골프 선수로서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조앤 해몬드는 여러 음반을 내놓았다. 그래서 무대보다는 오히려 음반으로서 사람들과 친숙하게 되었다. 조앤 해몬드의 음반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 중에서 라우레타의 아리아인 O mio babbino caro(오 사랑하는 아버지)를 담은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78회전의 SP였지만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였다. 이 레코드의 뒷면에는 토스카의 Vissi d'arte, vissi d'amor가 담겨 있었다. 어느날 조앤 해몬드가 코벤트 가든에서 토스카의 Vissi d'arte를 부르자 청중들은 레코드로만 듣던 그의 음성을 직접 듣자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청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앵코르를 연호하였다. 조앤 해몬드는 앵코르의 요청에 부응해야 했다. 당연히 Vissi d'arte를 다시한번 부르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청중들은 O mio babbino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레코드의 뒷면에 실려 있는 곡이므로 당연히 판을 뒤집어서 연주할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레코드의 대단한 위력!

  

조앤 해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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